AI가 교관·가상 조종사 역할…관제훈련 패러다임 혁신
XR로 360도 몰입, 18.3m LED월 ‘리얼 관제탑’ 효과
SW 개발 국내 중소기업 한정 ‘K-관제 기술주권’ 확보
                                         
  ▲인천광역시 중구 운서동 소재 인천국제공항공사 본사 전경. 사진=박규빈 기자
인천국제공항공사(IIAC, 이하 인국공)가 인공 지능(AI)과 확장 현실(XR) 기술을 접목한 차세대 항공 교통 관제 시뮬레이터 구축에 나선다.
30일 본지 취재 결과 인국공은 최근 'AI 기반 항공 교통 관제 시뮬레이터 구축 사업'을 발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총 사업비는 부가 가치세를 포함해 23억3484만원으로, 이 중 소프트웨어(SW) 사업 예산은 약 9억 3091만원이다.
이는 계약일로부터 10개월 안에 시스템 구축부터 국토교통부의 최고 등급인 '가'급 모의 관제 장비 인증 획득까지 마쳐야 하는 고난도 프로젝트다. 또힌 항공교통관제사의 훈련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관제탑에서 본 전경을 포함, 인천·김포·제주국제공항 등 실제 관제 상황과 거의 동일한 환경을 구현하는 최첨단 시뮬레이터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인국공은 이번 사업 발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구현을 목표로 하면서도 사업자를 국내 중소기업으로 한정해 대한민국 항공 안전 기술 주권을 확보하고 글로벌 강소기업을 육성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전략이다. 또한,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관제사 훈련의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바뀌어 항공안전 수준이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한다.
사업의 주요 수행 과제에는 △비행장(TWR)·접근(APP)·항로(ACC) 등 항공교통관제 전 분야 훈련 시뮬레이터 소프트웨어 설계·개발 △서버·워크 스테이션·디스플레이 등 시뮬레이터 구동용 하드웨어 인프라 장비 구축 △항공교통관제 전문 교육기관 지정·모의 관제장비 지정 기준 및 검사 요령에 적합한 시뮬레이터 구축·인증 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항공교육원 관계자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맞춤형 훈련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본 사업의 추진 목적"이라고 말했다.
'음성 인식 정확도 90%' AI 관제사의 탄생
 
  ▲'AI 기반 항공 교통 관제 시뮬레이터 구축 사업'에 따른 모의 실습장 기본 배치 예시안. 사진=인천국제공항공사 항공교육원 제공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기술 혁신은 AI를 통해 '스스로 훈련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공사는 관제사의 음성 지시를 90% 이상 정확도로 인식해 자동으로 항공기를 움직이는 AI 음성 인식 기능(SFR-038)을 요구했다. 이는 통상 기술 평가에 사용되는 단어 오류율(WER) 10% 이하에 해당하는 수치로, 현재 상용 기술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관제 통신은 △극심한 무선 잡음 △다양한 국적 조종사들의 억양 △빠른 발화 속도 △전문 용어 등이 집약된 분야로 음성 인식 기술에 가장 불리한 환경으로 꼽힌다. 최신 연구에서도 특정 조건 하에 WER 6~9% 수준을 달성하는 것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만큼 인국공의 목표 달성은 상당한 기술력을 요구한다.
이 기능이 구현되면 훈련 때마다 가상 조종사 역할을 맡을 다수의 보조 인력이 필요했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관제사 혼자서도 훈련이 가능한 '1인 훈련 모드'가 가능해져 훈련 효율성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단순 음성을 인식 이상으로 AI가 훈련 교관의 역할까지 일부 수행할 수 있다. 훈련이 끝나면 AI가 관제사의 관제 행위를 자동으로 분석해 '관제 지시 복창(Readback) 오류'나 '항공기 간 충돌 위험 발생 횟수' 등을 정량적으로 평가해 점수화하는 기능(SFR-041)도 포함됐다. 이는 교관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했던 기존 평가 방식을 객관적인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시도다.
VR을 넘어 XR로…360도 완벽 몰입형 훈련 환경 구축
 
  ▲항공 교통 관제 시뮬레이터 하드웨어 구성안. 사진=인천국제공항공사 항공교육원 제공
훈련의 몰입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XR 기술 도입도 이번 사업의 핵심이다.
인국공은 당초 제시했던 VR이 아닌 현실과 가상을 융합하는 XR 기술로 요구 사항을 상향 조정했다. 이는 훈련생이 실제 물리적 콘솔을 조작하며 그 위에 디지털 비행 정보를 겹쳐 보거나 가상 항공기를 현실 공간에 투영하는 등 한 차원 높은 상호 작용을 구현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를 위해 비행장 관제 시뮬레이터에는 너비 18.3m, 높이 2.3m에 달하는 초대형 플렉시블 LED 월 1대가 설치돼 시야각 225도를 지원한다. 훈련생은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 인천공항 활주로의 끝과 끝을 실제처럼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XR 전용 고성능 PC와 VR 기기를 통해 360도 시야각을 제공해 기존 스크린 기반 시뮬레이터의 시야각 한계를 극복하고 실제 관제탑에 있는 듯한 궁극의 현장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공룡 대신 '국내 강소기업'…K-산업정책의 실험
특히 주목할 점은 '중소 소프트웨어사업자의 사업 참여 지원 지침'에 입각해 23억 원이 넘는 대규모 첨단 기술 프로젝트의 입찰 자격을 국내 중소기업으로 한정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시인 이 지침은 정부 발주 사업에서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내용과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각종 지원 사항을 규정한다.
이는 탈레스(Thales)·레이시온(Raytheon) 등 글로벌 방산·항공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항공 시뮬레이션 시장에서 국내 기업에게 파격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조치다. 관련 분야의 기술 주권을 확보하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국가 대표급 강소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 차원의 산업 육성 정책 기조가 반영됐다는 게 업계 평가다.
인국공은 이를 통해 국내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고 국가 핵심 인프라 기술의 자립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기존의 훈련 방식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I가 훈련 교관·가상 조종사 역할을 일부 대체하고,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자동 평가까지 가능해져 훈련의 효율성과 질을 동시에 높일 수 있어서다. 때문에 인국공의 혁신 시도가 대한민국 항공 안전 수준을 한 단계 제고할 전환점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