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신 C2S 컨설팅 대표
▲최승신 C2S 컨설팅 대표
정부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위원회를 열고 99개 송전선로와 변전소 구축 사업을 국가기간 전력망으로 지정하는 '패스트 트랙'을 지정했다. 송전망은 전력공급을 위한 필수 인프라지만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기피시설로 분류되면서 건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이런 송전망 건설 지연이 탄소중립 목표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전력망 특별법을 제정하고 지난 9월 26일 시행했다. 전력망 특별법이 시행되면 국무총리 주재 전력망위원회가 지정한 전력망에 대해선 정부가 직접 지역주민과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지자체별로 받아야 하는 각종 인·허가를 일괄 처리하게 된다. 이는 재생에너지 송전망을 늘리기 위해 바이든 정부에서도 고려했던 방식이다.
그러나 민주당 셸던 화이트하우스 상원의원과 일리노이주의 마이크 퀴글리 하원의원은 아예 주요 송전선로 경로 승인 권한을 FERC라는 단일 연방기관에 부여하는 법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는 주와 지방정부 의사결정권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지만 그만큼 송전설 건설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아예 정부가 미리 송전선 건설 위치를 파악하고 승인 절차부터 시작하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미국 트럼프 2기 정부는 발전소와 송전망 건설 속도를 높이기 위한 패스트 트랙인 '스피드 투 파워'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지만 잘 살펴보면 한국과는 다른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에너지부가 7월 발표한 '전력망 신뢰성과 보안 평가'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전력 공급원을 계속 폐쇄하고 추가 기저 용량(firm capacity)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2030년까지 광역 정전사고가 100배 이상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미국 제조업 회복과 AI 경쟁은 24시간 안정적이고 저렴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석탄과 가스 같은 기저부하 폐쇄를 강요했던 과거 행정부의 위험한 에너지 감축 정책을 계속하면 안 된다고 기술했다. 또한 에너지부가 원자력규제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첨단 원자로 분야 시범 프로젝트를 승인하는 절차로 10년 이상 걸리는 원전 분야 일정 단축을 위해 '3년 이내 임계 도달'을 목표로 하는 '패스트 트랙'을 실행하고 있다.
캐나다의 변신은 좀 더 극적이다. 마크 카니 총리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키티맷 소재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시설 확장 승인을 패스트 트랙에 올려놓았다. 카니는 이 프로젝트가 캐나다를 에너지 초강대국으로 만드는데 직접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 선언했다. 사실 그는 유엔 기후 특사로 활동하며 은행·투자자·보험사 연합체인 '글래스고 탄소중립 금융연합(GFANZ)'을 공동 설립했던 넷제로 전사였다. 하지만 캐나다 총리 취임 후 전임 트뤼도가 실시했던 탄소세, 전기화 의무 정책을 폐지했고 산하단체 넷제로뱅킹얼라이언스는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탈퇴한 후 10월 공식 운영을 중단했다. 또한 SMR, 핵심 광물을 위한 광산개발도 패스트 트랙에 올려놓았다.
영국 보수당은 정권 재탈환 시 기후변화법 폐기를 선언했는데 2050년 넷제로 달성을 법적 구속력 있는 목표로 설정했던 당으로서는 극적인 변화다. 케미 바데녹 보수당 대표는 탄소중립 정책이 경제를 파산시키고 있으며 제조업과 수많은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독일 메르츠 총리와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5월 공급망법 폐기를 요구했으며 폰데어라이엔이 소속되어있는 정당 그룹 유럽 국민당 대표 만프레드 베버 또한 내연기관차 금지 폐지를 비롯해 탄소중립 정책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영국, 독일, 프랑스는 모두 에너지 위기 후 급등한 에너지 비용과 제조업 경쟁력 상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현재 넷제로 폐기를 선언한 극우 정당이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갈수록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필자는 지난해 '에너지 위기 이후 EU, 미국 탄소중립 동향과 향후 전망'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탄소중립 백래시 현상이 확산될 것이라 언급한 바 있다.
한국과 서구 주요 국가의 에너지 정책의 방향성은 다소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이 차이가 어떤 결론으로 흘러갈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