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대한민국 가구 중 절반이 아파트에 산다. 아파토피아는 우리가 왜 아파트에 집착하는 지 알아 보기 위해 서울의 인기 있는 주요 아파트단지들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다. 또 아파트와 관련한 주요 이슈나 현안을 분석·해설해주고 전문가나 화제의 인물을 만나 직접 얘기도 들어 본다. <5> '일생을 바치는' 아파트 재건축
▲대한민국 대장 재건축 아파트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전경. 삼성물산 건설부문
서울 아파트의 재건축은 '로또 당첨'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새로운 부의 창출원으로 대접받는다. 조합원은 물론 일반 분양 물량에 당첨될 경우에도 엄청난 이득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서울 전역의 낡은 아파트·저층 주거지역에서 재건축·재정비 사업이 꾸준히 추진디는 이유다. 특히 분양가 상한제 적용 구역에서 새 아파트를 분양할 경우 수십억원의 차익도 기대돼 일반 분양시 수십만명이 몰리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그러나 아파트 재건축·재정비 사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서울 시내 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기 위해 서울시와 정부가 안전진단 관련 규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등 꾸준히 장려하고 있지만 사업 인허가를 받더라도 최소 10년은 잡아야 한다. 또 주민들간 이해 관계가 맞지 않아 분란이 일어나면 수십년이 걸리는 사례도 흔하다. 복마전이라고 불릴 정도다. 서울 아파트 재건축의 요지경 속으로 들어가보자.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기본 '한 세대' 세월 소요되는 대한민국 아파트 재건축
대한민국에서 평당 가격이 가장 비싼 아파트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다. 2023년 완공된 래미안 원베일리는 1978년에 입주한 신반포 3차 아파트 등을 재건축했다. 45년만에 재건축이 완료된 것이다.
원베일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아파트 시장을 주도하는 단지는 재건축 단지가 대부분이다. 원베일리 인근의 반포주공 아파트 재건축 단지들인 래미안 퍼스티지와 반포자이는 2000년대 후반 3세대 신축 아파트의 시작을 알린 아파트다.
래미안 퍼스티지는 반포주공 2단지를 재건축 했고, 반포자이는 반포주공 3단지를 재건축 했다. 반포주공 2단지와 3단지도 1978년에 입주해 재건축이 완료되기까지 31년이 걸렸다. 반포주공 아파트 중 가장 규모가 큰 1단지는 1973년에 입주했고, 5007세대 규모의 '디에이치 클래스트'로 재건축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디에이치 클래스트는 2027년 11월 입주 예정으로 재건축이 완료되기까지 무려 54년이 걸렸다.
이처럼 우리나라 아파트들은 재건축을 마치기까지 빨라도 최소 30년이 시간이 기본적으로 소요되고, 40년에서 5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야 재건축을 마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또 재건축을 추진한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잠실주공5단지나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처럼 여전히 재건축이 언제 완료될 것인지 가약이 없는 단지들도 있다.
아파트 재건축에 이렇게 오래 세월이 걸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재건축을 위한 제반 행정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우선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택지조성사업이 완료된 아파트는 입주한지 20년이 지나야 재건축 기본 연한을 채우게 된다.
또 재건축을 추진하려면 지자체로부터 정비구역으로 지정을 받아야 한다. 재건축을 위한 첫 공식적인 단계로, 정비구역으로 지정을 받으면 법적으로 재건축 추진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관청의 행정 절차엔 보통 1~2년 정도가 걸린다.
이후에는 재건축 조합을 설립해야 한다. 조합은 실질적으로 재건축 사업을 관리하는 시행자다. 그러나 조합이 결성됐다고 해서 해당 단지의 재건축을 조합이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
조합은 토지와 건물 소유자들의 동의를 일정 비율 이상 얻어야 설립 인가가 난다. 재건축은 75% 이상 주민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바로 이 시점에서 재건축이 하염없이 늦어진다. 같은 단지 내에서도 아예 재건축을 반대하는 주민들도 존재한다. 각자 이해 관계가 다르고, 아예 하지 말자는 이들도 많기 때문에 설득하고 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예컨대 보통 고령자들의 경우 자신이 살아있을 때 재건축이 될지 여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대부분 현직에서 은퇴한 경우가 많아 매달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현금 수입이 적다. 이런 상황의 고령자들은 특히 요즘 재건축 공사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최소 수천~수억원대에 이르는 분담금을 낼 여력이 안 되기에 재건축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만년 재건축 후보 단지'인 대치동 은마 아파트는 2010년 재건축 조합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한 후 13년이 지난 2023년에야 설립 인가를 받았다. 재건축에 큰 의지가 없는 조합원들이 많아 75% 동의율을 채우지 못했고, 1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겨우 동의율을 채우는데 성공했다.
▲만년 재건축 '최대어' 후보로 불리는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 내 모습. 임진영 기자
겨우 조합이 설립되도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는 일이 남아 있다. 재건축 계획을 단지가 소재한 지자체로부터 승인받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재건축 건축 설계와 재건축 시공을 맡을 건설사를 조합이 선정한다.
특히 재건축 설계는 새 아파트를 어떻게 지을 것인지 가장 큰 그림을 그리는 단계인만큼 각 조합원들의 의견이 엇갈릴 경우가 많다. 시공사를 선정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각 조합원들이 선호하는 건설사가 제각각이라 이 같은 의견을 한데 모으는 과정은 쉽지 않다. 또 시공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건설사 간 경쟁, 건설사가 제시한 재건축 제안 등을 조율하는 과정도 물리적인 시간이 소요된다. 사업시행계획 인가도 보통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사업시행계획을 인가받으면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이 단계는 조합원들에게 분양권을 배정하고, 재건축을 위한 분담금을 조정하는 단계다. 노후한 구축 아파트를 철거하기 위한 이주비와 재건축 공사 기간 동안 다른 곳에 거주하기 위한 비용도 관리처분계획을 통해 결정된다.
재건축 사업을 둘러싼 '개인의 욕망'…사업 추진 동력도, 시간을 잡아먹는 '암'이 되기도
재건축 사업은 결국 자신의 자산을 걸고 벌이는 사업이다. 그만큼 이해 관계 충돌이 극심하고 조율이 쉽지 않다. 조합원 모두가 좀 더 층과 동으로, 더 넓은 평수의 좋은 세대를, 비용을 덜 부담하면서 새 아파트로 받고 싶어한다. 조합은 관리처분계획을 통해 이 모든 조합원 개개인의 욕망을 조율해야 한다.
흔히 벌어지는 조합원 내분은 이 과정에서 많이 벌어진다. 자신이 받게 될 분양권이 마음에 들지 않는 조합원들끼리 뜻을 모아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조합을 상대로 해임 총회를 결의한다. 비대위와 조합이 서로 대립하는 과정에서 심하면 소송전까지 불사한다. 이렇게 내홍이 터져 법적 다툼이 진행되면 역시 길게는 10년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극복하고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아야 비로소 실질적인 재건축 공사가 진행된다. 그 첫 단계로 주민 이주 및 노후건물 철거가 진행된다. 보통 원주민 이주비(이사 비용) 지원을 받아 순차적으로 이주하지만, 일부 주민이 끝까지 안 나갈 경우 강제 철거 절차까지 진행되는 등 역시 변수가 많다.
이주 및 철거는 보통 6개월 정도가 소요되지만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1년여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설상가상 이사 일정 조율, 세입자 보상, 이주를 거부하는 일부 주민에 대한 문제가 발생해 소송까지 벌어지면 이 과정에서도 수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주와 철거를 마치면 비로소 재건축에 착공한다. 보통 2~3년간 공사를 진행하지만 이것도 유동적이다. 둔촌주공을 재건축한 우리나라 최대 규모 아파트인 '올림픽파크포레온'은 공사 도중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조합이 공사비에 이견이 생기면서 약 7개월간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처럼 최소 10년에서 수십년까지 족히 '한 세대'를 지나야 재건축이 완료되고, 조합원 개인이 내야하는 분담금도 수억원에 달할 정도로 리스크가 큰 것이 대한민국 아파트 재건축 사업이다.
그럼에도 재건축 연한이 20년을 넘긴 구축 아파트 주민 대부분이 재건축을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히 재건축이 구축에서 신축으로 탈바뀜하는 '삶의 질' 향상 뿐만이 아니라 확실한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포주공2단지를 재건축 한 서울 서초두 반포동 래미안 퍼스티지 단지 정문 문주 전경. 임진영 기자
래미안 원베일리는 지난 8월 17일 전용면적 84㎡(33평) 31층 매물이 71억5000만원에 팔리면서 '평당 2억 아파트 시대'의 신호탄을 쏜 단지다. 원베일리 인근의 래미안 퍼스티지와 반포자이는 2009년 완공 이후 2010년대 후반까지 10년여간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로 우리나라 아파트 시세를 리딩한 단지들이다.
10·15 부동산 대책, 재건축 시장 '직격타'…'쎈 놈'만 살아남는다
문제는 재건축 아파트 시장 전망이 최근 크게 어두워졌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은 리스크가 큰 사업이지만 그동안에는 시세 차익이 보장됐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10·15 부동산 대책'을 시행하면서 상당수 재건축 사업이 동력을 잃게 됐다.
이번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다. 해당 지역의 재건축 사업지는 조합설립 인가 이후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된다. 아울러 조합원으로 분양 자격을 얻었더라도 '10년 보유·5년 실거주' 요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등기 이전까지 매매가 불가능하다.
재건축은 사업이 추진되면서부터 재건축 이후 시세 차익에 대한 기대감에 집값이 급등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조합원들 상당수는 조합원 분양권을 타인에게 매매하는 경우가 흔하다. 재건축 사업의 동력은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번 대책을 통해서 재건축 조합 매물 거래가 거의 막히게 됐다. 재건축 사업이 추진되는 단지들도 상당수 사업 기간이 지체되거나 심할 경우 사업이 좌초되는 경우도 생길 전망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정부의 이번 부동산 대책으로 조합원 전매 금지, 조합운원 지위 양도 금지 등 강력한 재건축 규제가 시행되면서 재건축 사업의 청산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재건축 시장이 동력을 잃은 것이 사실"이라며 “서울 내 주요 지역의 재건축 사업지는 여전히 선호도가 높아 규제에도 타격이 없을 수 있겠지만 나머지 지역의 재건축 사업지는 원주민 조합원이나 외부 유입 투자자 모두 신중한 행보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