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기차 수요 절벽’ 현실화... 車 업계, ‘하이브리드’ 돌파구
조선업 호황에도 우는 철강…‘환경 규제 1년 연기’에 ‘빨간불’
“2026년 회복은 기저 효과”... 건설업, ‘L자형 장기 침체’ 경고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이 한국철강협회가 주최한 '글로벌 전환기 철강 산업의 대응 방안' 세미나에서 기조 연설을 하는 모습. 사진=박규빈 기자
글로벌 경제 질서 재편 속에서 한국 주력 산업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는 경고가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산업 정책의 귀환 속에서 '일본형 공동화'를 우려하는 한편, 철강 수요의 핵심인 자동차, 조선, 건설 산업 전반에 걸쳐 구조적 위기가 닥쳤다고 진단했다. 특히 '전기차 수요 절벽', '환경 규제 지연', 'L자형 장기 침체' 등 각 산업의 성장 동력이 꺾이면서 막연한 낙관론을 버리고 냉철한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4일 한국철강협회 주최로 '글로벌 전환기 철강 산업의 대응 방안'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글로벌 경제 질서 재편에 따른 국내 주력 산업의 위기를 진단하고,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다양한 분석이 제시됐다.
귄남훈 “산업 정책의 귀환... '일본형 공동화' 대비해야"
기조연설에 나선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현재 글로벌 경제가 '산업 정책의 시대'로 귀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2010년대 이후 각국이 발표한 신규 정책 중 25%가 산업 정책"이라며 , “한국도 국제 질서 변화에 맞춰 보다 적극적으로 산업 정책적 접근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언급했다.
권 원장은 최근의 대미 투자 협상 배경에 대해, 미국의 IRA·칩스법 등 막대한 보조금 정책은 재정 적자로 지속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이런 리포트'를 인용하며, 최근 한국(3,500억 달러)과 일본(5,500억 달러)의 투자가 “미국의 산업 정책 재원을 동맹국으로부터 마련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권 원장은 이러한 대규모 해외 투자가 '산업 공동화'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1980년대 일본이 해외 투자 급증 후 2000년대 들어 국내 투자가 급감했다"며 , “그 결과 상품수지는 적자로 돌아서고 해외 투자 수익에 의존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국내 고용과 임금 정체가 발생했다며, 한국 역시 이러한 '일본형' 미래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권 원장은 현재 한국 산업이 “수출 비중 하락, 기업 역동성 저하, 총요소생산성 하락 등 '정신을 꽉 차려야 하는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의 '백화점식' 정책을 지양하고 , 성장을 이끄는 '소수 선도 기업' 중심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철강 시장, '맹목적 낙관론' 경계... 韓 내수 4500만 톤 정체
▲공문기 포스코 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이 한국철강협회 주최 '글로벌 전환기 철강 산업의 대응 방안' 세미나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박규빈 기자
이어진 세션에서 공문기 포스코 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업계의 '맹목적 낙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 연구위원은 2026년 국내 철강 내수 시장이 4,500만 톤 수준에서 정체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07년 이후 처음 5,000만 톤이 무너진 2024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 그는 “건설 경기 침체에 따른 구조적 하락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세계철강협회(WSA)의 2026년 글로벌 전망치가 “상당히 낙관적인 쪽으로 편향돼 있다"고 비판했다. 공 연구위원은 업계가 타파해야 할 '신화'로 다음을 제시했다.
그는 “중국의 인프라 투자가 1% 하락하는 등 , 정책 부양 효과가 부동산 부진을 상쇄하지 못하고 있다"며 “인도를 제외하면 , 아세안이나 중동 등은 리스크가 커 '이머징 마켓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 수출 1억 톤은 '뉴 노멀'이 됐다"며 , “현재의 낮은 가격에서도 원가 경쟁력으로 이윤을 내고 있다"며 “일본의 수요 감소 트렌드를 그대로 따라갈 것이라는 '평행 이론'은 '자기 충족적 예언'의 오류일 수 있다"며 , “AI와 디지털 혁명이 다른 궤적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산업, '전기차 수요 절벽' 속 하이브리드 부상
▲박광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이 한국철강협회 주최 '글로벌 전환기 철강 산업의 대응 방안' 세미나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박규빈 기자
자동차 산업 세션에서 박광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2026년 미국 자동차 시장의 역성장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2025년의 판매 호조는 관세 인상과 전기차 세액공제 종료를 앞둔 '가수요'에 기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025년 10월 미국 전기차 판매가 전년 동월 대비 50% 이상 급감했다"며, '수요 절벽'이 시작됐음을 시사했다.
박 연구원은 이러한 '전기차 캐즘'의 돌파구로 하이브리드를 지목했다. 그는 “하이브리드가 현대차·기아의 수익성 1위 차종인 반면, 전기차는 수익성이 가장 안 좋다"고 평가하며 , “전기차 세액공제 종료가 오히려 고수익성 하이브리드 판매를 늘려 실적에 긍정적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장기적으로 차량 교체 주기가 길어지면서 자동차 산업의 철강 수요 감소는 불가피하다"며, 철강업계의 신사업 진출 등 전략적 고민을 주문했다.
조선업계, 새 먹거리 찾지만... 환경규제 연기로 '철강 수요'엔 빨간불
▲엄경아 신영증권 조선 분야 연구위원이 한국철강협회 주최 '글로벌 전환기 철강 산업의 대응 방안' 세미나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박규빈 기자
조선업 세션에서는 '차원이 다른' 장기 호황 사이클에도 불구, 이것이 철강재의 '양적 성장'으로 이어질지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이 나왔다.
엄경아 신영증권 조선 분야 연구위원은 국내 조선업계가 “대형사들의 몸집 키우기와 중견사들의 구조조정으로 양분화"됐다고 전했다. K조선, 대한조선 등 중견사들이 수주 확대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HJ중공업 등 일부는 신조선 대신 미국 군함 MRO 사업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들 업체가 MRO에 집중할 경우 “신규 후판 수요는 사실상 발생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방산(군함 건조) 분야 역시 “철강이 많이 들어가는 산업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군함은 건조 시간보다 테스트 기간이 2년 이상 소요될 정도로 길어, 철강재의 양적 소모를 이끌기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오히려 철강업계에 더 큰 악재로 환경 규제 지연을 꼽았다. 2025년 10월 국제해사기구(IMO)에서 확정될 예정이던 '넷제로 프레임워크' 논의가 “미국의 보복 위협과 사우디의 주도로 1년 전격 연기"됐다.
이 규제안은 2028년부터 노후 선박 교체를 유도할 **'핵심적인 발주 동력'**이었으나, 이 논의가 지연되면서 선주들이 **“관망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졌다고 발표자는 분석했다. 그는 2028년 조선소 증설 물량이 즉각 채워지지 않을 수 있다며, “물리적인 재료를 대는 철강 업계에서는 조금 중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건설 산업, 'L자형' 장기 침체 우려... “2026년 반등 체감 어려워"
마지막 세션의 박정우 연구원은 건설 산업이 'L자형'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외환 위기(V자 반등)나 금융 위기(U자형) 때보다 심각한 상황이라는 진단이다.
박 연구원은 2026년 건설 투자가 플러스(+) 2% 내외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한국은행 등의 +3~4%대 전망은 “오직 2025년의 극심한 부진에 따른 '기저 효과'에 기댄 것"이라며, 이는 업계가 '회복'으로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건설 경기가 “BSI 52, 한계 기업 비중 22.6% 등 '지표상 최악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가장 큰 문제로는 시장의 70~80%를 차지하는 민간 부문의 침체와, “수도권과 지방 간의 극심한 양극화"를 지목했다.
박 연구원은 “건설향 봉형강 수요가 주거용 착공과 밀접하다"고 설명하며, 2025년 최저점 이후 2026년에도 소폭 회복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철강업계가 'K자형'으로 분화되는 지역별 양극화에 맞춰 판매 및 재고 관리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