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인리스 표면 세정용 불산 가능성 커
부식성 강해 노출 시 호흡기·피부 큰 손상
2012년 구미 대형화학사고 원인물질
▲포스코 포항제철소 (사진=연합뉴스)
5일 오전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작업자들이 유해 가스를 흡입해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북경찰청과 포스코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쯤 포항시 남구 동촌동 포스코 포항제철소 스테인리스 압연부 소둔·산세 공정 구역에서 포스코DX 하도급 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설비수리 준비 작업을 하던 중 유해성분 가스에 노출됐다.
이 사고로 근로자 4명이 호흡곤란과 흉통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이 가운데 근로자 A(54)씨가 이송 중 숨졌다. 나머지 3명은 30대 근로자로 일부 화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사고 발생 약 2시간 뒤인 오전 11시14분에야 소방당국에 사고 사실을 신고했다. 출동한 119특수대응단 등 소방인력은 공장 내 한 배관에서 유해 가스가 누출된 것을 확인하고 배관 연결 및 흡착포를 이용한 제거작업을 진행했으며, 낮 12시48분쯤 잔류가스가 제거된 것을 확인했다.
소방당국은 “누출된 물질은 불산(HF) 또는 질산(HNO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당시 작업 절차와 보호구 착용 여부 등 안전조치 이행 상태를 조사 중이며, 고용노동부는 해당 라인에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사고가 난 소둔·산세 공정은 스테인리스 강판을 열처리하고 표면을 세정하는 과정이다. 소둔(Annealing)은 압연된 스테인리스강을 고온으로 가열했다가 천천히 식혀 내부 응력을 제거하고 조직을 안정시키는 과정이다. 산세(Pickling) 공정은 소둔 과정에서 생긴 표면 산화막(흑피)을 산 용액으로 제거하는 과정이다.
스테인리스 표면의 산화막을 제거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산세 방식은 '불산(HF)+질산(HNO₃) 혼산' 사용 공정이다. 불산과 질산은 부식성이 강해 반도체 생산 공정 등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되고 있다. 반면 염산(HCl)은 탄소강 산세에 주로 쓰이며, 스테인리스 산세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에서도 호흡기 통증, 조직 손상(화학 화상), 이송 중 급속 악화에 의한 사망 등이 나타나 불산 중독 반응의 전형적인 과정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질산 가스는 지연성 폐 손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염산은 표피 자극과 부식 반응이 더 뚜렷하다.
불산은 피부와 호흡기를 통해 체내로 들어가면 혈중 칼슘을 급격히 소모시키며, 심장 부정맥·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화상이 크지 않더라도 단시간 내 생명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 특징이다.
김정수 환경안전보건연구소장은 “현재까지 알려진 사고 정황으로 볼 때 불산 누출로 인한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2012년 구미 불산사고 사례에서 보듯이 인체에 위험한 불산을 취급할 때는 특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미 불산누출사고는 2012년 9월27일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화학제품 제조업체에서 발생한 대형 유독가스(불산) 누출 사고로, 5명이 사망하고 소방관 등 18명이 부상한 사고다. 휴브글로벌 공장 탱크로리에서 불산 20톤이 누출되면서 인근 주민과 노동자 등 2000여 명이 건강검진을 받았다. 당시 사고로 기업이 180억원 피해를 입었고, 가축 4000여마리를 살처분하는 등 500억원대 경제적 피해도 발생했다.
한편,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는 지난 3월에도 설비수리 중 근로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어, 공정 안전관리와 하도급 작업 구조에 대한 추가 점검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