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고층화·광화문 ‘받들어총’·한강 ‘서울링’ 등 초대형 사업 잇따라 추진
시 “도시 경쟁력 강화” 주장하지만…“경관 훼손·예산 낭비 우려” 반발 거세
“정치 아닌 도시가 중심돼야”…지방선거 앞둔 ‘성과행정’ 논란도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시가 최근 세운상가 고층화, 광화문광장 조형물, 한강 '서울링' 등 초대형 도시 프로젝트를 잇달아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시는 '도시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문화단체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도시 경관 파괴와 예산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며 '치적 쌓기 행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우선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예산 중 하나인 종묘 앞 고층 빌딩 재건축 허가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6일 대법원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시를 상대로 제기한 '서울시 문화재보호 조례 일부개정안 무효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이 나오면서 불거졌다. 이 개정안은 문화재 주변 '보존지역(외곽 100m)' 밖이라도 영향을 미칠 경우 인허가를 재검토하도록 한 조항을 삭제한 것으로, 대법원은 “보존지역 밖 개발은 지자체 재량에 속한다"며 시의 손을 들어줬다.
종묘 인근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장기간 고층 개발이 막혀 논란이 된 세운상가 4구역 재개발 사업이 본격 추진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시는 지난달 30일 세운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을 고시하며, 최고 높이를 기존 71.9m에서 141.9m로 완화했다. 시는 “도심의 정체를 풀고 청계천~남산으로 이어지는 보행축을 조성하겠다"며 “역사성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핵심은 종묘에서 남산 쪽을 바라 볼 때 왼쪽이 고층 빌딩으로 인해 사실상 가려진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유산청이 “유네스코 권고 절차를 무시한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1995년 종묘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유네스코는 '인근 고층 인허가를 제한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민간 전문가들도 비판하고 있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종묘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축은 서울의 정신적 경관"이라며 “시뮬레이션상으로는 괜찮다 해도, 실제 종묘 앞에 서서 보면 시야가 완전히 가려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왕릉 주변 고층 개발 논란과 같은 문제"라며 “당장은 경제성이 있어 보여도 한 번 훼손된 경관은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도시를 바꾸는 일은 단 한 세대의 정치인이나 건축가의 업적으로 남길 일이 아니다"며 “개발이 불가피하더라도 역사성과 시야축은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화문광장에서도 상징물 설치를 둘러싼 찬반이 거세다. 시는 세종대왕 동상 좌측 상부에 '감사의 정원'을 조성하고, 6·25 참전 22개국을 기리는 조형물 '감사의 빛 22'(일명 '받들어총')을 내년 말까지 설치할 계획이다. 참전국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국가 상징공간에 새겨 세계가 한국전쟁의 희생을 잊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시는 “광화문은 국가의 중심이자 대한민국의 역사와 헌신을 상징하는 공간"이라며 “세종대왕 동상과 조화를 이루는 형태로 설계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글학회·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 70여 개 단체는 “군사적 상징물이 광화문의 정체성과 어긋난다"고 반발한다. 이들은 이달 초 기자회견을 열고 “세종대왕 뒤편에서 빛기둥이 솟는 형태는 세종의 상징성을 약화시키고, 광화문을 군사적 이미지로 바꿀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한글과 민주주의의 공간인 광화문에 전쟁 기념 조형물을 세우는 건 취지에 맞지 않다"며 “용산 전쟁기념관 등 참전 의미를 직접 기릴 수 있는 장소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 공감대나 공론화 절차 없이 추진됐다는 점도 지적한다.
시가 상암 하늘공원 일대에 추진 중인 '서울링'(지름 180m 무스포크 대관람차)도 논란이다. 2023년 발표 당시 사업비는 4000억 원 규모였지만, 구조 확장과 설계 변경으로 총사업비가 1조 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시는 전액 민간투자 방식으로 추진돼 세금 부담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업계 안팎에서는 “운영 적자가 발생할 경우 결국 보조금 등 공공 재정이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일각에서는 “명분은 관광 랜드마크지만, 수익 구조가 취약해 2007년 한강 수상버스 사업처럼 실패로 끝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500억원이 투입돼 이달 초 정식 운행이 재개된 한강버스 사업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예상보다 속도가 느려 시가 공언했던 잠실-마곡간 대중교통 역할을 할 수 없는데다 매년 수십억원의 적자를 상업시설 임대료 등으로 겨우 메우는 등 사업성이 부족한 게 결정타다.
한 건축업계 관계자는 “지금의 개발 흐름은 도시가 아니라 정치가 중심에 서 있는 것 같다"며 “정치 일정에 맞춰 도시를 재단하려는 행정은 결국 시민의 공간을 왜곡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의 역사성과 공간 질서를 한 세대의 치적으로 남기려는 시도는 위험하다"며 “지자체가 권한을 가졌다면 오히려 신중하고 절제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도 “세운상가·서울링·광화문 프로젝트 모두 상징성에만 초점을 맞춰 있다"며 “도시 경쟁력은 조형물 같은 외형이 아니라 산업·생활·문화가 밀도 있게 연결되는 구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정책이 시민의 생활 편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상징도 결국 공허한 장식에 불과하다"며 “진정한 경쟁력은 보여지는 건축물이 아니라 그 안을 채우는 콘텐츠에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