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최근 행정부는 국회의 힘을 빌려 엉성한 안전법을 손쉽게 통과시키기 위해 청부입법을 남발하고 있다. 지난 9월 재발의된 건설안전특별법도 국토교통부의 청부입법이라는 점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심각한 건 함량 미달의 법이 걸러지지 않고 졸속으로 통과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특별법의 왕국이라 할 만큼 형사특별법이 기형적으로 많이 제정돼 있어 법체계가 뒤틀려져 있다. 건설안전특별법도 가뜩이나 난마처럼 꼬여 있는 건설안전관계법을 더욱 착종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예측 가능성과 준수 가능성에서 심각한 결함이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으로 혼란이 극심한 마당에 건설안전특별법까지 제정된다면 건설현장은 발만 동동 구르는 상태에 빠질 것 같다. 대형건설사는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도 재해 예방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중소건설사는 안전조치에 아예 체념하는 방향으로 대응하지 않을까 싶다.
건설안전특별법안은 겉으로는 건설공사 참여자별로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업계를 살리기 위한 법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내세우는 명분과 달리 조악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첫째,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과 중복되거나 상충되는 내용이 상당수 규정돼 있다. 안전관리조직, 안전관리, 안전교육 등에 있어 내용적으로 중복되는 것도 문제일 뿐만 아니라, 법 간에 의무주체가 상이하게 규정돼 있어 충돌이 심한 상태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길이 없다. 무책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복점검, 자의적 법집행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둘째, 강한 형벌이 수반되는데도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는 규정이 수두룩하다. 예컨대 “안전관리", “적정한 기간과 비용", “안전관리 역량"과 같이 전문가조차도 애매하고 모호하여 판단하기 어려운 개념이 다수 있다. 이런 법이 수범자에게 행위규범으로 기능할 리 없는 만큼 재해 예방은 기대난망이다. 죄형법정주의는 불명확한 형벌규정을 통해 무너진다는 점에서 이런 규정들은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셋째, 안전원리와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 예컨대 하청 근로자의 재해 예방을 위해 원청에게만 안전관리조직의 구축, 안전교육 등의 의무를 강제하고 있다. 하청 근로자의 재해 예방을 위한 기본적 안전조치 의무를 하청 근로자와 근로관계에 있는 하청에겐 부과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재해 예방에 실효성이 있을 리 만무하다.
넷째, 발주자의 책임을 실현할 수단과 구조가 턱없이 부족하다. 안전자문사, 감리자와의 책임관계가 모호해 발주자는 사실상 책임에서 비켜나 있고 감리자가 책임을 떠안는 폐습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안전자문사와 감리자의 역할이 중복되기도 한다. 공사규모, 사업자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발주자에게 의무를 부과하여 이행의 현실성에도 문제가 있다. 법안이 졸속으로 입안되었다는 점을 방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섯째, 처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동일한 사항에 대하여 형벌, 영업정지 또는 과징금, 과태료를 이중적으로 제재하는 규정조차 발견된다. 가히 '기승전-처벌'이라 할 만한다. 실효적인 예방기준을 만드는 일은 등한시하고 안이하게 처벌을 최우선으로 삼는 제재만능주의에 함몰돼 있다.
재해를 줄이려면 '묻지마' 규제를 쏟아내는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 안전원리를 훼손하고 실효성을 무너뜨리는 입법은 금물이다. 아무리 규제와 제재를 강화하더라도 실효성이 없으면 재해를 줄이기는커녕 되레 조장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일명 '김용균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를 경험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안전을 얼마나 더 망가뜨려야 깨달을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우를 재차 범하는 일이 없기를 간곡히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