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강·사과의 벽…끝나지 않은 계엄의 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024년 12월 2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는 동안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안에 투표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 사태가 1년을 맞았다. 국회의 해제 결의로 위기는 종료됐지만 충격은 깊은 사회적 균열을 남겼고,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정치 대립과 민주주의 회복 과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번 '비상계엄 1년' 기획은 지난 1년의 변화와 남은 과제를 짚는다. ①편에서는 민주당의 내란 청산 작업과 협치 실종 논란을, ②편에서는 국민의힘의 책임론·사과 공방을, ③편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12월 3일 특별담화 메시지와 향후 통합 과제를 전망한다.
12·3 비상계엄 사태 1년이 다가오지만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여전히 '계엄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돼 탈당까지 한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결별 없이 1년을 보내면서 계엄 책임론은 당내 최대 난제가 됐다. 그사이 친윤 주류 구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 대선 후보에서 당 대표에 이르기까지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당내에서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중도 확장'을 위해서는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결별과 내란 사태에 대한 인정·대국민 사과가 필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큰 반향은 없는 상태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장동혁 대표는 다음날 발표할 취임 100일 메시지를 고민 중이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윤 전 대통령과의 결별,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인정과 사과 여부다. 장 대표는 지난달 30일 강원 춘천 '민생회복 법치수호 국민대회'에서 “국민께 많은 실망을 드렸다"고 말했으나, 계엄 사태에 대한 직접 사과나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국힘 의원들의 '회피 본능'은 지난달 24일 의원총회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외부 시각으로는 계엄 1년을 앞두고 당이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처리할지 논의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관련 안건은 의제에조차 올리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밤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제의 첫 단추는 계엄 선포 당시부터 어긋났다. 계엄이 선포됐다 6시간 만에 해제되는 과정에서 정치지형은 일거에 뒤집혔다.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안이 3시간 만에 통과되자 민주당은 즉각 탄핵 절차에 돌입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질서 있는 퇴진' 요구를 거부하며 정국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윤 전 대통령은 당시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습니까?"라며 반발했고, 당 지도부는 계엄 사태와 선을 긋는 데 실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경험한 중진들은 “두 번째 탄핵 정국"이라며 '총력 결집'을 주장했다. 초·재선 74명이 전체 68%를 차지한 구조 속에서 중진의 기류는 쉽게 주류가 됐다.
결국 '친한동훈계' 국민의힘 의원 18명이 탄핵안 가결에 협조하면서 계엄 11일 만에 탄핵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대선 국면에서도 '계엄·탄핵' 논란은 전면에 섰다. 당원들은 올해 6월 경선에서 '탄핵 반대'를 외친 김문수 후보를 선택하며 강경노선에 힘을 실었다. 이후 8월 전당대회에서는 장동혁 대표까지 뽑히며 반탄파가 완전히 힘을 얻었다. 현재 지도부·실무조직·공천기구 요직은 대부분 반탄파가 차지했다. 당내에서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주장하는 일부 의원들은 비주류로 분류되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오른쪽)와 추경호 원내대표가 2024년 12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당내에서는 “계엄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중도를 설득할 수 없다"는 자성론이 공개적으로 분출하고 있다. 신호탄은 민주당과 접전이 예상되는 광역단체장들이 쏘아 올렸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을 해야 한다. 국민의힘의 변신은 거기서 시작된다"고 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달 23일 “국민에게 분명히 잘못됐고 미안한 일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수도권 격전지 의원들 사이에서는 “계엄 사과는 필수"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총선은 한참 남았지만 당장 6개월 뒤 지방선거를 앞둔 예비 출마자들은 영남 의원들과 포지션이 달라 힘들어하고 있다"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지도부 침묵 속에 개인 사과도 이어지고 있다. 탄핵에 찬성했던 안철수·진종오 의원은 SNS에 각각 자성 메시지를 냈다. 안 의원은 “작년 12월 3일 이후 시민의 삶이 무너졌다"며 “정치가 혐오와 분노를 재생산하느라 바빴고, 저 또한 부족했다. 죄송하고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반면 당 주류와 강성 지지층은 “사과는 끝났다"며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김민수 최고위원은 “왜 계속 졌던 방식을 또 하라는가. 민주당에 사과를 요구한 적이 있는가"라고 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6시간짜리 계엄이었다"며 “이재명 정권이 1년 내내 내란몰이를 하고 있다. 굴복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월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기에 추경호 의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와 관련해 강경론이 더 힘을 얻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영장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계엄을 털어내지 못하면 지방선거도, 이후 총선도 버겁다는 현실론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의원 구속 가능성은 높지 않다. 내란 공모 의도를 입증할 근거가 검찰에 없다. 관심법 수준의 판정은 법원에서 쉽지 않다"면서도 “별개로 계엄 사과는 불가피하다. 계엄의 강을 건너지 못하면 당은 다음 단계로 못 간다. 1년을 맞아 정리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