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했던 외국인, 6월부터 대규모 '셀온→바이코리아' 전환
상법 개정·AI 초호황·조방원 수출까지…3대 모멘텀 겹쳤다
환율 불안에도 유입 지속…“업황이 금리를 압도하는 시장"
내년 금리인하·AI 버블 완화·정책 모멘텀이 추가 상승 재료
▲코스피와 코스닥이 급락한 2024년 12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종가가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충격으로 2300선까지 무너졌던 코스피가 1년 만에 4000선을 바라보고 있다. 정치 리스크로 외국인과 개인이 일제히 빠져나갔던 시장은 새정부를 맞이한 지난 6월을 기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또 새 정부 출범 이후엔 외국인 자금이 폭발적으로 유입되며 구조적 반등이 본격화됐다. 상법 개정과 반도체·조선·방산·원전 등 실적 모멘텀, 대외 환경 안정이 맞물리며 'K-리레이팅' 기대는 더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증시는 연초만 해도 '밸류업' 정책 기대 속에 3000선 돌파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각종 악재가 겹치며 하락폭을 키웠다. 결국 코스피는 연간 10% 가까운 낙폭으로 한 해를 마쳤고, 연초 900선을 오갔던 코스닥도 70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결정적인 분기점은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오후 10시 30분경 비상계엄을 발표하자, 시장은 바로 충격에 빠졌다. 코스피는 2500.10(12월 3일)에서 2360.58(12월 9일)까지 4거래일 연속 급락하며 연중 최저점을 기록했다. 상반기 내내 순매수하던 외국인은 급격히 매도세로 돌아섰고, 개인도 5조원 넘게 순매도하며 '셀코리아'가 가속화됐다.
상황은 올해 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외국인은 1~4월 내내 매도 우위를 유지하며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총 18조원 넘게 빠져나갔다. 1월 코스피 9352억원, 코스닥 5092억원 순매도를 시작으로 2월에는 코스피 3조7026억원, 코스닥 4211억원 순매도 등이 이어졌다. 3·4월에도 코스피 1조6665억원, 9조3552억원 순매도, 코스닥 4970억원, 7875억원 순매도로 '탈한국' 흐름이 뚜렷했다. 개인도 5조원 넘게 순매도하며 투자심리 위축이 장기화됐다.
그러나 분위기는 5월부터 급반전했다.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1조1656억원, 코스닥에서 1001억원을 순매수하며 5개월 만에 매수로 전환했다. 결정적 변화는 새 정부 출범 직후인 6월이었다. 6월 첫째 주에만 외국인은 코스피 2조1676억원, 코스닥 2967억원 등 총 2조4644억원을 사들이며 시장 방향성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후 6~11월까지 외국인 누적 순매수는 6조원을 넘기며, 작년 비상계엄 직후 매도 규모를 사실상 상쇄했다.
수급 변화의 중심에는 업황 개선과 정책 기대가 있었다. 반도체 시황 반등과 조선·방산·원전(조방원) 산업의 수주 모멘텀, 상법 개정으로 촉발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임원 충실의무가 '회사'에서 '모든 주주'로 확대됐고, 최대주주의 감사위원 선임 의결권이 3%로 제한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민감했던 지배구조 리스크가 완화됐다. 법안 통과 직후 코스피가 하루 만에 2% 넘게 뛰는 등 정책 기대가 시장 전반의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만들었다.
코스피는 이러한 수급·정책 변화 속에 지수 자체도 빠르게 회복세에 진입했다. 코스피는 지난해 12월 종가 기준 2400선 초반이었다. 하지만 1년 만인 이달 첫 거래일에는 3920.37까지 상승하며 1년 동안 57% 급등했다. 같은 기간 코스닥도 678.19에서 922.38까지 36% 상승했다. 특히 지난 10월 27일에는 코스피가 장중 3999.79에서 출발해 4042.83에 마감하며 사상 처음 개장·종가 모두 4000선을 넘어서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이어진 조정 국면은 'AI 버블론'과 미국 통화정책 경계심이 맞물린 탓이다. 달러 단기 유동성 경색과 연준 금리인하 지연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11월 들어 변동성이 확대된 바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12월 이후 반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연준의 양적긴축(QT) 속도 조절, 비트코인·반도체 등 위험자산의 낙폭 축소, 고용지표 둔화 등이 금리인하 가능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 컨센서스는 이달 FOMC 기준금리 인하 확률을 약 85%로 반영하고 있다.
AI 생태계 변화도 주요 변수다. 특히 '텐서 처리 장치(TPU)'의 효율성 개선은 대형 IT 기업의 서비스 비용을 크게 낮출 전망이다. GPU 대비 절반 수준까지 하락한 서버 비용은 구글 등 빅테크의 검색·유튜브·클라우드 매출 구조에 직접적으로 이익을 줄 수 있다. 업계에서는 AI 버블 우려가 완화될 경우, 기술주 전반의 밸류에이션 부담이 다시 낮아질 거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코스닥의 경우 최근 정책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 아직 구체적 계획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금융당국이 코스닥 투자 활성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심리는 개선됐다. 하지만 실제 정책 발표까지는 논의 단계라는 점에서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연기금 비중 확대나 벤처펀드 세제 혜택 등이 포함될 경우 코스피·코스닥 간 수급 분화가 더 뚜렷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환율 불안에도 외국인 매수가 이어진다'는 점을 올해 증시의 특징으로 꼽는다. 과거와 달리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데도 외국인이 순매수를 지속한 것은 업황이 금리를 압도하는 구조적 장세라는 해석에서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사상 최고가 경신 과정에서 환율이 동시에 급등한 것은 대미 투자펀드 수요가 몰린 영향"이라며 “한국·미국 간 투자 패키지가 구체화될 경우 AI·전력·조선 등 미국 현지 인프라가 필요한 기업들이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