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 구글·아마존 등장…오픈AI·엔비디아 독주 흔들
오픈AI ‘대리 투자처’ 日 소프트뱅크 주가 38% 폭락
AI 산업 방향 하드웨어로 이동…이수페타시스 등 수혜
SK하이닉스 공매도 급감…“기존 주도주 추가 상승 여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오픈AI의 챗GPT 출시 이후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촉발된 '인공지능(AI) 트레이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새로운 경쟁자들의 등장으로 오픈AI와 엔비디아가 주도했던 시장 구도에 균열이 감지되고 있어서다. 특히 AI 산업의 무게 중심이 거대언어모델(LLM) 학습서 비용 효율성과 하드웨어 경쟁으로 이동하면서 시장에서는 새로운 수혜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픽텟자산운용의 앤디 웡 다자산 투자 총괄은 “현재 시장에서는 'LLM 시장을 오픈AI만 주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새로운 내러티브와 패러다임을 반영하고 있다"며 “이런 변화를 소화한 뒤 리스크 프리미엄을 새롭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AI 산업에 지각변동은 구글이 지난달 차세대 AI 모델인 제미나이3를 공개하면서 가속화됐다. 구글의 자체 칩인 텐서처리장치(TPU)로 개발된 제미나이3가 최강 모델로 여겨졌던 챗GPT 5.1보다 뛰어나다는 평가가 잇따르면서다. 여기에 아마존이 지난 2일 전력 효율성을 끌어올린 자체 칩 트레이니엄3를 공개하면서 오픈AI·엔비디아 중심으로 이어졌던 AI 트레이드가 분산됐다.
구글과 아마존의 등장은 '주문형 반도체'(ASIC)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는 점에서 시장 판도를 흔드는 '게임 체인저'로 평가된다. AI 훈련에 고가의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더 이상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저렴한 칩만으로도 고성능의 AI 모델 개발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AI 산업 전반의 비용이 절감될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
쿼드자산운용의 한상균 최고투자책임자(CIO)는 “LLM이 범용화된다면 비용이 더 저렴한 쪽이 승자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6개월이 엔비디아와 오픈AI를 중심으로 형성된 거품이 어떻게 터질지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비상장 기업인 오픈AI의 대리 투자처로 여겨졌던 일본 소프트뱅크 주가는 지난달에만 38% 가량 폭락해 25년 만에 최악의 월간 낙폭을 기록했다. 엔비디아의 주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인 TSMC는 4% 가량 하락했고 메모리 공급업체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4% 넘게 빠졌다.
대신 투자자들은 AI 산업 흐름 변화에 따른 새로운 수혜주에 주목하고 있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과 협업 중인 대만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미디어텍 주가는 지난 한 주에만 22% 가까이 오르면서 2002년 이후 최대 주간 상승폭을 기록했다. 알파벳에 인쇄회로기판(PCB)을 공급하는 한국 코스피 상장사 이수페타시스 주가도 같은 기간 18% 올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매출의 22%를 알파벳에서, 11%를 아마존에서 얻고 있는 중국 광트랜시버 제조업체 중지이노라이트 주가 역시 지난주 11% 상승해 신고가를 기록했다.
블룸버그는 “이 같은 움직임은 어떤 브랜드가 최종 승리자로 떠오르든, 미국의 어떤 빅테크(거대 기술기업)가 공급망의 정점에 오르든 상관없이 아시아 공급업체들이 수혜를 입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블랙록의 에곤 바브렉 신흥국 주식투자 총괄은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서버, 테스트 환경,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메모리카드, 냉각 시스템 등을 포함해 글로벌 하드웨어 생산의 약 90%가 대만, 한국, 일본, 태국, 심지어 중국 본토에서 생산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기존 AI 붐을 이끌어온 주도주들의 추가 상승 여력이 여전히 충분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TSMC는 최첨단 칩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주요 기업들의 위탁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TSMC 주가는 3년 연속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며 시가총액은 이미 1조달러를 넘어섰다.
글로벌 투자은행 맥쿼리에 따르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AI에 필수적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SK하이닉스의 경우 주가가 올 들어 세 배 이상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주가 하락 베팅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S&P글로벌 자료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유통주식 대비 공매도 잔고 비율은 5월 초 3% 이상에서 현재 0.6%로 낮아졌다.
JP모건 프라이빗뱅크의 티모시 펑 아시아 주식 전략 총괄은 “AI 테마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기술 투자자들의 핵심 관심사"라며 “AI 공급망 전반에 걸쳐 기회가 변화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물리적 인프라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