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캐나다 이어 멕시코까지 관세 들고나와
멕시코는 5위 철강 수출국…강판재가 85%
韓, 관세 감면 적용·슬라브 대상 제외에 안도
USMCA 검토 앞두고 강경책 낼까 ‘좌불안석’
美 현지 제철소 확보로 북미시장 전략 박차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11일(현지 시각) 멕시코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국립궁전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멕시코가 지난주 자국과 자유무역협정 미체결국을 대상으로 최대 50% 관세 부과를 발표하자 철강업계가 화들짝 놀랐다. 중간재 수입에 적용하는 관세 감면 제도로 멕시코발(發) 관세 파고를 극복할 수 있지만, 하나의 경제 권역으로 묶이는 미국과 캐나다가 철강 관세 장벽을 높여 철강시장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내년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 정기 공동 검토를 앞두고 멕시코가 미국 주도의 중국 견제 움직임에 동참하기 위해 무역장벽을 미국·캐나다 수준에 맞출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한국 철강사들이 미국 현지에 제철소를 확보하는 사업을 북미 철강시장 전략의 하나로 힘을 실을 전망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멕시코 상·하원이 내년 1월 1일부터 USMCA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나머지 국가들을 대상으로 철강을 포함한 전략품목에 관세 5~50%를 적용하는 일반수출입세법(LIGIE) 개정안을 의결했다.
고율 관세 부과 소식으로 철강업계의 근심이 생긴 이유는 멕시코가 한국의 주요 철강제품 수출 국가 중 한곳이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1~10월 한국의 대(對)멕시코 철강제품 무역수지는 15억2974만달러 흑자를 보였다. 멕시코 입장에서는 한국이 무역적자를 초래하는 국가 중 하나라 관세 부과 명분이 충분하다.
한국이 멕시코에 수출하는 제품의 대부분은 산업용 강판재다. 수출 금액은 15억4614만달러로 미국, 일본, 중국, 인도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멕시코로 향하는 철강제품 중 85.4%를 열연·냉연강판, 아연도금강판 등 강판류가 차지했다. 강판은 자동차와 전자제품 제조, 건축, 선박 건조 등에 주로 쓰여 대체로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꼽힌다.
멕시코에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한국 주력 제조업의 생산 기지가 있다. 품질 등의 문제로 이들 공장에 쓸 철강 제품을 한국 철강사들에게서 조달한다.
철강업계는 당장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재를 포함한 중간재가 산업 진흥 프로그램(PROSEC)과 제조업 수출진흥 프로그램(IMMEX) 같은 관세 감면 제도의 적용 대상이기 때문이다. PROSEC는 전자와 자동차 등 24개 분야 공정투입용 수입 장비·부품에 0~10% 저율관세를 부여하는 제도다. IMMEX는 해외수출용 수입 원자재·설비에 대해 관세 납부를 임시 유예하고, 수출되면 관세를 면제한다.
멕시코로 향하는 철강 수출품 대부분에 PROSEC와 IMMEX를 적용해왔기 때문에 실제로 관세가 인상되더라도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이에 더해 강판·강대 등의 압연 소재로 쓰이는 철강 슬라브가 LIGIE 개정안에 따른 관세 인상 대상에서 빠졌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멕시코가 운영하는 PROSEC와 IMMEX 같은 관세감면제도의 적용 범위에 한국이 수출하는 철강 품목 대부분이 들어간다"며 “멕시코 정부가 FTA 미체결 국가를 대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한국 철강사들이 입을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변수는 내년 7월 시작하는 USMCA 정기 검토 작업이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3국은 기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원산지 요건을 강화하고 노동·환경 관련 조항을 새로 추가해 USMCA를 2020년 7월 발효하고, 시행 6년차와 12년차에 공동 검토하기로 했다. 3국이 사실상 하나의 경제권처럼 자유로운 무역 활동을 하자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서로 무역 관련 규제를 두고 손발을 맞춰야 한다.
문제는 한국의 철강제품 수출 1위와 12위인 미국과 캐나다가 철강 시장의 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난 4월 모든 철강 수입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6월에는 관세율을 50%로 높였다. 자동차와 반도체 등 다른 제조업 품목과 달리, 철강은 협상을 통해 관세율을 낮출 여지가 전혀 안 보였다.
캐나다는 지난달 USMCA 체결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 대해 철강제품의 저율관세 수입할당량(TRQ)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FTA 체결국가는 100%에서 75%로, 비체결 국가는 50%에서 20%로 감축한다. 철로 만든 파생제품에도 25%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결국 멕시코의 낮은 철강 무역 장벽이 유지될 것으로 장담할 수 없다는 시각이 나온다. 이번 관세 인상 발표가 PROSEC와 IMMEX에 영향을 미칠지도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철강 보호무역 기조가 뚜렷해지면서 관세 정책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철강시장을 놓칠 수 없는 만큼 한국 철강사들이 현지 생산 거점을 확보하는데도 힘을 실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미권역 중 한 곳에 쇳물을 붓는 단계부터 최종 제품 생산까지 공정을 갖춘 일관제철소를 확보하면 관세 장벽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2029년 가동을 목표로 연산 270만톤 규모로 전기로 제철소를 건립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포스코는 현대제철 루이지애나주 제철소 사업에 지분 투자 형식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이에 더해 포스코는 미국 내에서 자동차용 강판 생산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 미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의 지분을 일부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세아제강지주는 9년 전 미국 현지 강관 제조사를 인수해 지금까지 강관 제품을 현지 생산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