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법원 ‘절차·법령 위반’ 판단에 남산 곤돌라 사업 제동
기존 케이블카 수십년 독점 구조엔 손 못 대
2008년 면허 변경 때 조건 부여 기회 놓쳐
“우회 말고 정면 해소했어야” 책임론
▲서울 남산케이블카 사진=연합뉴스
남산케이블카의 독점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되던 남산 곤돌라 사업이 법원 1심 판결로 제동이 걸리면서 사업·행정 주체인 서울시의 무능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누가봐도 절차·법령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추진하다 역풍을 맞은 케이스라는 지적이 높다. 특히 2008년에도 시는 남산케이블카의 면허를 갱신해주면서 협상을 통해 이익 환수·허가기간 제한 등의 조항을 넣을 수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 준 것으로 확인됐다. 두 건 모두 몰랐다면 심각한 무능이고 알고도 이런 행정을 했다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시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는 지난 19일 남산케이블카 운영사인 한국삭도공업측이 남산 곤돌라 사업 추진을 위해 시가 결정한 도시관리계획 변경에 대해 절차와 법령을 위반했다며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시가 남산 곤돌라를 만들기 위해 12m 이상의 기둥을 설치하려고 현재 불가능한 도시자연공원구역인 해당 지점을 법령상 가능한 도시계획시설공원으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공원녹지법상 해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서울시의 도시관리계획) 결정은 쟁점구역을 도시자연공원구역에서 해제하는 등의 내용인데도 공원녹지법 시행령 제25조 제1항 제3호의 기준이 충족되지 못해 위법하다"고 밝혔다.
해당 조문을 보면, 도시자연공원구역을 변경 또는 해제할 때는 녹지가 훼손돼 자연환경의 보전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여가ㆍ휴식공간의 기능을 상실한 지역이어야 한다. 시의 남산곤돌라 설치를 위한 도시자연공원구역 변경의 경우 이 두 가지 경우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시는 판결 직후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다. 시는 “도시관리계획 결정 과정에서 서울시가 준수한 절차적 정당성과 법률상 요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판단"이라며 “항소심에서 남산 곤돌라 사업의 정책적 필요성과 공익성을 적극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법원은 이미 지난해 10월 한국삭도공업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고, 항고심에서도 유지되면서 현재 곤돌라 설치 사업은 1년 넘게 중단된 상태다.
시는 2023년 6월 '지속 가능한 남산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남산 곤돌라 재추진을 공식화했다. 2009년, 2015년에도 각각 시도됐지만 환경 파괴 우려 등으로 중단됐었다. 시는 지난해 착공을 거쳐 2027년 완공을 목표로, 명동역 인근에서 남산 정상부를 잇는 총연장 약 832m 규모 곤돌라를 추진해왔다. 교통약자 접근성 개선과 남산 공공성 회복을 명분으로 기존 민간 케이블카 중심 구조를 보완하고, 노약자·장애인 등 이동약자의 남산 이용 편의를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곤돌라 사업의 공익성이나 기존 민간 케이블카의 독점 구조 자체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도시관리계획 변경 과정의 절차·법령 위반 여부만을 본 판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법원은 도시자연공원구역에서 12m를 초과하는 지주 설치가 불가능한 현행 법 체계에서 이를 용도 변경으로 우회하려 한 서울시의 방식이 법령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본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양희철 변호사(법무법인 명륜)도 “이번 판결은 독점의 정당성이나 중복 사업자 선정 가능성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공원녹지법상 해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절차적 하자에 대한 판단"이라며 “기존 케이블카의 장기 독점 문제는 본안 판단에서 다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문제는 법령·절차를 모를 리가 없거나 최소한 법률 자문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시 공무원들이 이같은 엉터리 행정으로 남산 곤돌라 사업이 지체돼 남산케이블카 운영 한국삭도공업의 '독점' 체제가 더 길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행정 절차나 법령을 모르고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정말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도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민간 독점 업체 입장에서 좋은 일만 하게 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시는 과거에도 민간 케이블카의 장기 독점 구조를 손볼 수 있는 제도적 기회를 스스로 놓친 적이 있다. 한국삭도공업은 2008년 노후화된 시설 개보수를 이유로 케이블과 캐빈을 교체하면서 시에 삭도 면허 변경 허가를 신청했다. 1962년 영업 개시 이후 사업 기간 제한이나 이익 환수, 공공기여 조건을 부과해 독점 논란을 해소할 수 있었던 사실상 유일한 계기였다.
법·제도도 충분했다. 당시 삭도 면허는 유효기간이 없어 한 번 부여되면 사실상 무기한 사업 운영이 가능했다. 그러나 2005년 법령 개정으로 지방자치단체는 면허 변경 허가 과정에서 이용자 안전, 편의 증진, 환경 보전 등을 이유로 필요한 조건을 붙일 수 있는 권한을 이미 확보한 상태였다. 마침 중앙정부가 갖고 있던 삭도 면허 권한도 1999년 이후 지자체로 이관돼 있었다.
그럼에도 시는 2008년 면허 변경 당시 별도의 조건을 부과하지 않은 채 허가를 내줬고, 이후 남산 케이블카 사업은 사업 기간 제한이나 수익 환수 장치 없이 유지됐다. 이로 인해 민간 사업자의 장기 독점 구조가 10여년 더 이어졌고, 시는 뒤늦게 곤돌라라는 대체 수단을 통해 우회적으로 문제를 풀려다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린 상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시가 남산곤돌라를 정상 추진하려면 공원녹지법 시행을 개정해 도시자연공원구역 내에서도 12m를 초과하는 지주 설치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에도 환경 훼손 최소화, 교통약자 접근성 확보, 장기 독점 구조에 대한 실질적 통제 방안 마련 등의 과제가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