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화물선, 선박 공급 3% 늘지만 물동량은 0.9% 증가 그쳐
유조선, 러·우 전쟁 등 지정학적 요인에 호황 지속…‘강세’
컨선, 美 관세 전쟁 직격탄…수요 둔화·공급 과잉 ‘이중고’
2025년 해운 시장은 선종별로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유조선은 지정학적 리스크 반사이익으로 역대급 호황을 누린 반면, 건화물선과 컨테이너선은 공급 과잉과 글로벌 무역 갈등의 파고 속에 변동성을 키웠다. 다가오는 2026년 역시 대규모 신조 선박 인도로 인한 '공급 압박'이 거셀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홍해 사태와 미국의 관세 정책 등 '지정학적 변수'가 시장의 향방을 결정할 핵심 키가 될 것으로 보인다.
29일 한국해양진흥공사(KOBC)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5 KOBC 연간 해운시황보고서'를 발표했다.
건화물선, 공급이 수요 앞지른다…'수프라막스' 약진 눈길
▲연도별 BDI 평균, 최저/최고치 편차.자료=발틱 해운 거래소·한국해양진흥공사 제공
2025년 건화물선 시장은 팬데믹 이후의 급등기를 지나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수급 불균형이 심화된 한 해였다. 2025년 발틱 운임 지수(BDI) 평균은 1678포인트(12월 19일 기준)를 기록하며 전년 1755 포인트 대비 소폭 하락했다.
2026년 전망도 밝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건화물선 선대(공급) 증가율은 3.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물동량(수요) 증가율은 0.9%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지난 2년간 발주된 파나막스·수프라막스 등 중소형 선박이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인도되면서 공급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철광석은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철강 수요는 약세이나, 브라질과 서아프리카 등 원거리 수입 비중이 늘어나면서 톤-마일(Ton-mile, 화물 중량×이동 거리)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석탄은 중국과 인도가 에너지 자급 정책을 강화하면서 2026년 글로벌 석탄 물동량은 전년 대비 1.9% 감소한 12억8000만 톤에 그칠 전망이다.
곡물의 경우 남미의 대두·옥수수 생산 확대와 미국의 수출 증가로 2026년 물동량은 2.4% 증가하며 견조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 권역별 곡물 수출량 추이. 자료=클락슨 리서치 제공
특이점은 선형별 운임 역전 현상이다. 2025년에는 중형선인 수프라막스의 운임이 대형선인 파나막스를 앞지르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석탄 비중이 높은 파나막스가 구조적 약세를 보인 반면, 곡물·마이너 화물 수요가 탄탄한 수프라막스가 강세를 보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유조선, 지정학적 리스크가 만든 '슈퍼 사이클'
▲2025년 원유선 종합 지수(BDTI) 변동 및 최근 5년 계절적 추이. 자료=발틱 해운 거래소·한국해양진흥공사 제공
유조선 시장은 2025년 그야말로 '황금기'를 보냈다. 중동-중국 항로(TD3C)의 일일 평균 수익(TCE)은 약 5만8000달러를 기록해 2024년 3만5000달러 대비 급등했다.
이러한 강세의 배경에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 부족'이 있다. 러시아와 이란 제재로 인해 정상 영업이 가능한 선박이 줄어든 데다, 제재 대상 원유를 실어나르는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이 전체 선대의 15~20%를 차지하며 시장 공급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에 홍해 사태로 인한 희망봉 우회 항로 이용이 고착화되면서 운항 거리가 늘어난 점도 운임 상승을 견인했다.
2026년 유조선 시장 역시 강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OPEC+의 증산 가능성과 중국·OECD 국가들의 전략비축유(SPR) 재고 확충 움직임이 물동량 증가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2026년 원유선 공급은 전년 대비 2.8%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나, 최근 몇 년간 신조 인도가 극히 적었던 탓에 여전히 공급이 타이트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다만 러-우 전쟁 종식이나 홍해 항로 정상화 등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될 경우, 톤-마일 수요가 급감하며 운임이 하락할 리스크도 상존한다.
컨테이너선, 美 관세 전쟁의 직격탄…“공급 과잉 공포 온다"
▲컨테이너선 선대 증감 추이. 자료=클락슨 리서치·알파라이너 제공
컨테이너선 시장은 2025년 내내 롤러코스터를 탔다.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 지수(SCFI)는 연초 2505포인트로 시작해 9월 1115포인트까지 떨어지는 등 급등락을 반복했다.
시장을 뒤흔든 핵심 요인은 미국의 '관세 전쟁'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상 예고에 따른 널뛰기식 수요 변화가 시장 불확실성을 키웠다. 특히 북미 항로 운임이 연초 대비 60% 가까이 폭락하는 등 타격을 입었다.
2026년 컨테이너선 시장은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2023년부터 매년 200만 TEU 이상의 신조 선박이 쏟아져 나와 역대급 공급 과잉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2026년에도 선대 공급 증가율(3.5%)이 수요 증가율(2.1%)을 웃돌며 수급 불균형이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의 관세 정책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2026년 북미 항로 물동량은 0.1% 역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로 인해 중국발 미국향 물동량은 감소하는 반면, 베트남·태국 등 동남아시아발 물동량은 급증하는 '글로벌 무역 구도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해진공 보고서는 “2026년은 대규모 신조 인도에 따른 공급 압박이 지속되는 가운데 수에즈 운하 통행 재개 여부와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 향방이 시장을 좌우할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컨테이너선 시장에서는 운임 하락에도 불구하고 용선료는 상승하는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홍해 우회 항로 유지를 위해 선사들이 선박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해양진흥공사 관계자는 “2026년은 경제 성장 둔화와 공급 과잉이라는 구조적 어려움 속에서 지정학적 변수에 따라 시황이 급변할 수 있다"며 “선사들은 유연한 선대 운영과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