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 vs 고려아연, 美선 ‘고가 인수’ 韓선 ‘헐값 매각’…이어지는 상호 저격전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6.01.07 17:13

美 항소법원, 고려아연 측 ‘이그니오 조사 중단’ 요청 기각…영풍, 증거 확보 ‘파란불’
장형진 영풍 고문, ‘MBK 경영협력계약’ 제출 법원 명령에 불복…‘콜옵션’ 의혹 증폭

영풍·고려아연 CI

▲영풍·고려아연 CI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영풍·MBK파트너스(이하 MBK) 연합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분쟁이 해를 넘겨서도 격화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윤범 회장 주도로 이루어진 '이그니오 홀딩스' 인수와 관련해 영풍이 제기한 증거 조사가 탄력을 받게 된 반면, 국내에서는 영풍과 MBK가 체결한 경영협력계약서 공개를 두고 장형진 고문이 법원 명령에 불복하면서 '이중 잣대' 논란과 함께 배임 의혹 공방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美 법원 “이그니오 투자 의혹 조사 계속하라"…고려아연 지연 전략 제동

7일 영풍에 따르면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은 미 동부 현지시각으로 지난 1월 6일,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페달포인트)이 제기한 '증거 제출 명령 집행 정지 요청(Motion for Stay Pending Appeal)'을 기각했다.


이번 결정은 영풍이 제기한 이그니오 투자 의혹 관련 증거수집 절차를 항소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멈춰달라는 페달포인트 측의 요구를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영풍은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중단 없이 미국 내에서 이그니오 인수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게 됐다.



앞서 1심인 뉴욕 남부지방법원은 영풍의 증거수집 신청이 한국에서 진행 중인 주주 대표 소송 등 법적 절차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자료 확보의 필요성과 정당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증거 제출 명령을 내린 바 있다. 항소법원 역시 이러한 하급심의 판단을 전제로 페달포인트 측의 집행 정지 신청이 이를 뒤집을 만큼의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통상 항소를 이유로 증거 수집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매우 엄격한 요건이 요구되는데,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중단 요청이 기각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영풍 측은 이번 결정으로 페달포인트 측이 시도해 온 '절차 지연 전략'에 사실상 제동이 걸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영풍이 문제 삼고 있는 '이그니오'는 2021년 설립된 미국의 신생 전자 폐기물 재활용 기업이다. 영풍 측 주장에 따르면 이그니오는 설립 초기부터 자본 잠식 상태였고 인수 당시 매출 규모가 수십억 원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윤범 회장 측은 이 회사를 초기 자본금 대비 최대 100배에 달하는 약 5800억 원을 투입해 인수했다.


영풍은 이 과정에서 이사회의 선관주의 의무 위반 및 회사 손실 초래 가능성을 제기하며 주주 대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번 미국 법원의 결정으로 영풍은 △이그니오 투자 당시의 의사 결정 과정 △구체적인 자금 흐름 △밸류에이션(가치 평가) 산정 근거 등 핵심 자료를 확보해 고가 인수 의혹을 본격적으로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영풍 관계자는 “미국 항소법원의 기각 결정은 영풍의 증거 수집 요청이 합리적이고 정당하다는 점을 재확인해 준 것"이라며 “국내외 모든 법적 절차에 성실히 임해 사실관계를 투명하게 밝히고 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강조했다.


고려아연 “장형진 고문, 'MBK 계약서' 공개 거부, 항고…커지는 '헐값 거래' 의혹"

미국에서 영풍이 '투명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며 승기를 잡은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영풍과 장형진 고문이 MBK와 맺은 경영 협력 계약서의 실체를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불복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측에 따르면 장형진 영풍 고문은 최근 법원의 '문서 제출 명령'에 불복해 즉시 항고를 제기했다. 앞서 KZ정밀(옛 영풍정밀)은 영풍과 장 고문 등을 상대로 주주대표 소송을 제기하면서 지난해 9월 영풍 측이 MBK 계열사인 한국기업투자홀딩스와 체결한 경영 협력 계약을 제출하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법원은 이를 인용했지만, 장 고문 측이 이에 반발하며 법적 다툼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구체적인 계약 내용의 공개는 당분간 미뤄지게 됐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을 MBK에 넘기는 조건과 관련된 '콜옵션' 조항이다. 시장과 언론에서는 영풍이 고려아연 주식 일부를 MBK에 넘길 때 MBK가 특정 가격으로 이를 매수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보장해 줬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KZ정밀 측은 이 콜옵션의 행사 가격이 공개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만약 행사 가격이 시세보다 현저히 낮게 설정되어 있다면, 영풍이라는 회사의 핵심 자산인 고려아연 지분을 헐값에 넘기는 셈이 되어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논리다. KZ정밀은 이를 근거로 약 9300억 원 규모의 주주 대표 손해 배상 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특히 영풍이 최근 3년 연속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현금 창출력이 저하된 상황에서 매년 1000억 원 안팎의 배당금을 안겨주는 고려아연 지분은 회사 생존에 필수적인 재원이다. 이러한 알짜 자산을 특정 사모펀드(MBK)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넘기는 약정을 맺었다면 이는 영풍 이사진과 장 고문에게 심각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안이 된다.


'투명성' 외치면서 '비공개' 고수?… 3월 주총 앞두고 명분 싸움 치열

업계에서는 법원 결정대로 경영 협력 계약 내용이 공개될 경우 영풍과 MBK가 내세워 온 적대적 M&A의 명분인 '주주가치 제고' 논리가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콜옵션 가격 등 세부 계약 조건에 따라 이번 분쟁의 성격이 '경영 정상화'가 아닌 '특정 세력의 이익 챙기기'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는 3월 예정된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에서 영풍·MBK 연합의 도덕성과 법적 정당성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영풍과 MBK 측이 파장을 우려해 계약서 공개를 끝까지 거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문서 송달을 거부할 경우 법원이 취할 수 있는 강제 수단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어 이를 이용해 시간을 끌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다만 MBK 측은 과거 불거진 의혹에 대해 일부 해명한 바 있다. 지난 2024년 10월 자료를 통해 MBK는 “콜옵션 행사 가격은 고려아연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합의된 고정 가격"이라며 “공개 매수가가 오른다고 해서 콜옵션 행사 가격이 낮아진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제출 명령까지 불복하며 계약서를 숨기는 태도는 오히려 시장의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영풍·MBK의 경영협력계약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의혹이나 불필요한 논란이 있다면, 계약 내용을 직접 공개하고 설명하는 것이 가장 명확한 해법"이라며 “반대로 공개를 계속 거부할 경우 의혹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미국에서는 '고가 인수' 의혹을, 한국에서는 '헐값 매각' 의혹을 서로 겨누며 진행 중인 이번 쌍방 법적 공방은 다가올 주주총회 표 대결을 앞두고 양측의 치명적인 약점을 파고드는 '폭로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박규빈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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