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꺼낸 신규 원전 여론조사…“누구도 결과 수용 안 할 듯”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6.01.14 14:46

기후부, 갤럽·리얼미터 3000명 조사로 신규원전 판단
공론조사 아닌 ‘여론청취’ 성격…절차적 정당성 논란
에너지믹스 토론회 참여·파급력도 제한적
“이런 방식이면 찬반 어느 쪽도 결과 수용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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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7일 국회에서 열린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2차 정책토론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이번 주 전국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신규 원전 건설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정부는 이 조사 결과와 최근 진행된 '에너지믹스 토론회' 의견 수렴 내용을 종합해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 원전 건설 여부를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책 결정의 근거로 삼기에는 의견 수렴 과정이 지나치게 허술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신규 원전이라는 고도의 사회적 갈등 사안을 다루면서도, 충분한 숙의와 대표성을 갖춘 공론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런 방식으로 도출된 결과는 찬성·반대 어느 쪽에서도 쉽게 수용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앞서 열린 에너지믹스 토론회는 방청 규모가 크지 않았고, 온라인 중계 역시 유튜브 조회 수가 3000~5000회 수준에 그쳤다. 참여 범위와 사회적 파급력이 제한된 상태에서 이뤄진 의견 수렴을 두고, 이를 곧바로 전력기본계획과 같은 국가 중장기 계획에 연결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공론조사인가, 여론청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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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에너지환경부가 신규 원전 건설 여부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지난 12월 30일과 1월 7일 실시한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정책토론회가 14일 현재 조회수 4700회(1차), 3400회(2차)를 기록했다.

논란의 핵심은 이번 절차가 '공론조사'인지, 아니면 단순한 '여론청취'인지에 있다. 두 방식은 모두 시민 의견을 수렴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절차의 성격과 정책적 의미는 크게 다르다.


공론조사는 무작위로 선정된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 제공과 토론 과정을 거친 뒤 형성한 판단을 측정하는 숙의 민주주의적 제도다. 인구 구성의 대표성을 고려한 표본 설계, 찬반 논거의 균형 있는 제공, 소그룹 토론과 전문가 질의응답 등이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이 과정에서 토론 전·후 의견 변화까지 분석해, 충분히 숙고한 시민 판단을 정책 결정의 직접적인 근거로 활용한다.



반면 여론청취는 설문조사, 공청회, 간담회, 온라인 의견 수렴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민 의견을 폭넓게 듣는 행정 절차다. 참여는 대체로 자발적이며, 대표성과 숙의 과정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여론청취 결과는 정책 판단의 참고 자료로 활용될 뿐, 그 자체가 강한 정책 정당성을 갖기는 어렵다.


이번 신규 원전 여론조사는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공론조사보다는 여론청취에 가까운 성격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단순 찬반을 묻는 설문 결과를,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친 사회적 합의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보다 중요한 건 수용 가능성"

문제는 절차의 성격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은 채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려 할 경우, 오히려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쟁점이 큰 원전 정책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공론의 결론'처럼 제시하면, 반대 진영에서는 “형식적 조사"라고 반발하고, 찬성 진영 역시 “정권이 바뀌면 뒤집힐 결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정책 전문가들은 “공론조사를 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면, 차라리 여론청취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정책 판단의 참고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솔직한 접근"이라며 “공론화라는 표현을 쓰려면 그에 걸맞은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결국 신규 원전 건설 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찬반 숫자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를 사회가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느냐다. 충분한 정보 제공과 숙의 없는 여론조사는 정책 결정을 뒷받침하기보다, 향후 갈등의 씨앗만 남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번 신규 원전 건설 여론조사를 한국갤럽과 리얼미터에 각각 의뢰해, 총 3000명(갤럽 1500명·리얼미터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본 규모만 놓고 보면 일반적인 여론조사 기준에서는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표본 수의 많고 적음이 곧바로 공론화의 정당성을 담보해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여론조사 방식으로 찬반을 묻는 것과, 충분한 정보 제공과 토론을 거친 시민 판단을 도출하는 공론조사는 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신규 원전 건설처럼 기술적·경제적·사회적 쟁점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안의 경우, 1500명씩 나눠 진행된 두 개의 여론조사 결과를 단순 합산해 정책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은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에너지 정책 전문가는 “갤럽이든 리얼미터든 조사기관의 신뢰도와는 별개로, 이번 조사는 숙의 과정이 배제된 '여론청취'에 가깝다"며 “이런 방식으로 나온 결과를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하겠다고 하면, 찬성·반대 어느 쪽에서도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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