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개 국정과제 중 10개가 에너지, “책임 무거워”
연구성과 중심에서 산업 적용 기술개발로 운영기조 전환
태양광 모듈부터 ESS까지 패키지화로 내수·수출시장 선점
목표효율 35% 텐덤셀 태양광 개발 위해 4월 연구설비 도입
차세대 태양광·비가연 배터리로 기술 주도권 확보
▲이창근 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이 지난 22일 대전 본원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이원희 기자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향한 국민의 요구가 달라지고 있다. 논문과 연구 성과를 넘어 개발에 성공한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를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도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출연연 운영방식을 연구과제중심제도(PBS)에서 임무중심형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즉, 과도한 수주 경쟁과 단기 성과 위주의 연구를 막고, 기초·원천 기술 개발 및 국가 전략적 임무 수행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에너지 기술 분야의 최일선에 서 있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이창근 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은 지난 22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에기연 정관에 명시된 임무는 '기술개발 성과 확산을 통해 성장동력을 만들고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이제는 'K-Energy'를 실현해 실제 시장에서 돈이 되게 하고 수출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정부 기조에 맞춰 내놓은 해법은 '시장적기 진입과제'다. 출연연 기술은 종종 성숙도가 낮아 특히 대기업이 바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는 “논문 수준의 성과는 충분히 낼 수 있지만, 제품으로 만들면 병목 구간이 있다"며 “그 중간을 메워 성능을 보여주면 기업이 가져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에기연은 이 같은 취지로 시장적기 진입과제를 37개 운영했고, 1년 반 동안 8건의 기술이전과 1건의 창업 성과를 냈다. 지난해 7월에는 55억원 규모로 우주 태양전지 개발 기업 '플렉셀스페이스'에 차세대 우주용 이중접합 태양전지 기술 이전도 성사시켰다.
그러나 연구개발을 이어가기에는 산업 환경이 녹록지 않다. 태양광·풍력·배터리 등 에너지 전환의 핵심 품목이 중국산 저가 공세에 흔들리고 있다는 게 이 원장의 진단이다. 그는 “중국이 보조금 기반 저가 전략으로 시장을 장악하면서 우리 기업들은 팔아도 남지 않는 가격 구조에서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생에너지 국산 기술은 산업과 시장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며 “유럽·미국처럼 시장을 일정 부분 보호하는 장치 없이 국산화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가 'AI'와 '에너지 고속도로'를 핵심 아젠다로 내건 점은 에기연에 기회이자 과제다.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전력망,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산자원관리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원장은 이 과정에서 인버터·컨트롤러 등 핵심 설비가 해외 의존 구조로 굳어질 경우 에너지 안보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에너지 시스템은 소프트웨어로 연결돼 있고 운영 데이터가 외부로 넘어가면 안보 문제가 된다"며 “국내 기술로 부품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근 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이 지난 22일 대전 에기연 태양광기업공동활용연구센터에서 차세대 태양전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원희 기자
이 원장은 대전에 위치한 에기연 태양광기업공동활용연구센터를 직접 소개하며 차세대 태양전지인 텐덤셀 개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텐덤셀은 실리콘셀과 페로브스카이트셀을 이중으로 쌓아 발전효율을 극대화한 차세대 태양전지로, 목표 효율(35%)은 기존 실리콘셀(22%)의 약 1.6배에 달한다. 같은 면적에 텐덤셀을 설치할 경우 기존 실리콘셀보다 1.6배 많은 태양광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부지 확보가 어려운 우리나라에서는 제한된 면적에서 발전량을 최대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이 원장은 “텐덤셀 개발을 통해 중국과의 경쟁 속에서도 우리 기술과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양광기업공동활용연구센터는 오는 4월 텐덤셀을 보다 큰 규모로 연구할 수 있도록 추가 설비를 도입할 계획이다.
“연구기관 기술 실제 기술 이전 및 성과 확산으로 이어져야"
다음은 이 원장과의 일문일답
- PBS제도 전환에 따라 연구기관에 대한 기대가 어떻게 바뀌고 있나.
▲ 출연연 정관에 '에너지 기술개발 성과 확산을 통해 국가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라고 명확히 적혀 있다. 연구개발 자체는 출연연이 강점이 있다. 기술이전이나 성과 확산도 많이 해왔다. 그런데 이전된 기술이 기업 현장에서 실제로 돈이 되고 성장동력이 되었느냐는 질문 앞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이제는 그 지점이 성과의 핵심이 됐다.
- 왜 부족했다고 보는가.
▲ 국민의 눈높이가 바뀌었다. 출연연이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데 눈에 보이는 경제적 결과가 무엇이냐를 묻는다. 항공우주 분야는 발사체 같은 상징적 성과가 있다. 정보통신기술은 특정 기술이 수출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에너지 분야도 이제는 산업이 기술을 가져가서 상품화하고 수출까지 가는 구체적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 PBS는 과제가 파편화되기 쉽고, 출연연이 국가 임무 지향으로 큰 과제를 끌고 가기 어려운 구조였다. 전략연구사업은 예산을 올리는 대신 대형 과제로 묶어 목적과 임무 중심으로 성과를 내겠다는 방향이다.
- 연구기관의 기술이 기업으로 잘 안 넘어간다는 지적도 있다.
▲ 기술 성숙도 문제다. 논문 상으로는 아주 좋지만, 막상 제품으로 만들면 병목 구간이 생긴다. 실험실에서 가능했던 것이 생산·현장·안전·규격·유지보수 단계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다. 그걸 연구자가 다 알기 어렵고 그러면 대기업은 가져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다. 출연연에 '시장성 없는 기술'이 쌓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라 본다.
- 병목 구간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 시장 진입을 막는 중간 구간을 메워주는 게 과제다. 예산을 투입해 이 기술을 제품 수준으로 올려보자는 목표로 잡는다. 단순히 연구자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벤처캐피탈(VC), 액셀러레이터, 비즈니스 모델 전문가 등과 함께 평가·자문 체계를 붙였다. 그러면 연구자들도 시장 관점에서 보완점을 알게 되고 기업이 가져갈 만한 수준으로 올라간다.
- 실제 성과는 어느 정도였나.
▲ 지난해에 시장적기 진입과제를 37개 운영했고 1년 반 만에 8건 기술이전이 이뤄졌다. 그중 하나는 창업으로 이어졌다. 배터리 관련 분야였고 초기 기업가치 50억원을 달성했고 5억원의 외부 투자도 붙었다. 기술이전은 연구성과가 국민에게 가는 중요한 통로이고 연구자가 직접 나가 창업하는 것도 또 하나의 길이다.
▲이창근 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이 지난 22일 대전 에기연 본원에서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이원희 기자
“태양광·풍력·배터리 중국 저가 공세에 산업 위기, K-Energy로 돌파"
- K-Energy라는 개념에 대해서 소개해준다면.
▲ 에너지 기술을 상품으로 만들자는 뜻이다. 예를 들어 태양광은 모듈만이 아니라 인버터, 운영·제어, 저장장치(ESS), 계통 연계까지 패키지로 묶여야 한다. 풍력도 마찬가지다. 이 패키지가 기업이 가져갈 수준으로 완성돼 해외에 수출되면 그게 국민경제에 기여하는 'K-Energy'다. 이번 정부의 국정과제 123개 중 에너지 분야가 10개가 넘을 정도로 에너지 분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
▲ 태양광은 밸류체인이 한때 한국에도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보조금 기반으로 덤핑 수준의 가격을 만들면서 시장을 장악했다. 우리가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 구조가 됐다. 가격이 반의 반 수준까지 내려가면 기업은 버틸 수 없다. 결국 국내 기업들이 무너지고 밸류체인이 사라져갔다.
지금은 태양광의 핵심 부품인 셀 기술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 페로브스카이트셀을 이용한 텐덤셀 개발을 통해 중국과의 경쟁 속에서도 우리 기술과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 배터리 연구에서 에기연이 집중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 에기연은 대기업들이 아직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차세대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화재 위험이 없는 배터리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화재 문제로 ESS 보급이 한차례 멈춘 경험이 있다. 현재 물 기반 전해질을 사용하는 액상 배터리 등을 통해 근본적으로 불이 나지 않는 저장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 풍력 발전의 핵심 부품인 터빈은 초대형화 경쟁에서 밀린다는 우려가 나온다.
▲ 국내 기업도 8메가와트(MW), 10MW 터빈을 개발을 했지만 해외는 15~16MW, 중국은 18~20MW까지 간다. 개발은 했는데 시장에 못 들어가면 다음 세대 개발이 막힌다. 제품을 얼마나 팔았느냐가 다음 연구개발의 동력인데 팔리지 않으면 지속이 어렵다. 에기연은 현재 제주도에서 풍력연구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시장을 어느 정도 만들어주고 산업을 보호해줘야 한다.
- 재생 확대 과정에서 가동중단(출력제어) 문제도 크다.
▲ 햇빛과 바람이 좋을 때 전기가 넘치면 출력제어를 해야 한다. 출력제어를 줄이려면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하고 전력망도 깔아야 하며 무엇보다 수요·공급을 실시간으로 맞추는 분산자원관리 기술이 핵심이다. 지금은 사람이 직접 하는 단계인데 비효율을 줄이려면 결국 인공지능(AI) 기반 운영이 필요하다.
- 외국산 인버터·컨트롤러 같은 설비가 에너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재생에너지 시스템은 소프트웨어로 연결돼 있다. 운영 데이터가 외부로 넘어가거나 특정 업체가 컨트롤룸에서 돌아가는 설비를 원격으로 모니터링·제어할 수 있다면 그건 단순 산업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안보 이슈다. 국산 인버터, 그리드포밍 기술, 운영·제어 체계를 국내에서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 새 정부의 'AI' 아젠다와 에너지의 관계 속에 어떤 과제를 할 수 있나
▲ 두 갈래다. 하나는 '에너지를 위한 AI'로, 발전·산업·건물 분야의 효율을 최적화하고 자율운전으로 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AI를 위한 에너지'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돌아가고, GPU가 발생시키는 열을 냉각하는 데도 막대한 에너지가 든다. 전력 공급 안정성과 냉각 효율(PUE 개선) 기술 등 새로운 과제들이 나오고 있다.
AI 시대에서 시장적기 진입과제 같은 제도로 기술 성숙도를 끌어올리고 정책적으로는 국산 기술이 시장에서 숨 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에기연이 그 흐름을 만드는 연구원이 되겠다.
▲대전 에기연 태양광기업공동활용연구센터에서 연구 중인 태양광 원자재인 실리콘(왼쪽)과 완성품인 모듈의 모습. 사진= 이원희 기자
대담=윤병효 부장
정리=이원희 기자
□ 이창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 프로필
◇약력 △1959년생 △충북대학교 화학공학과 졸업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공학 석사 △미국 리하이대학교 화학공학 박사 △1985년 에기연 입사 △에기연 고효율청정에너지연구본부장 △에기연 기후변화연구본부장 △에기연 부원장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회장 △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운영위원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대의원 △한국화학공학회 산학이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