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최근 RE100 산단 이전 논란과 더불어 이번 정부의 핵심 구상인 에너지고속도로 역시 덩달아 자주 언급되고 있다. 주로 지산지소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에너지고속도로를 짓기 보다는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에 RE100 산단 등 더 많은 생산시설을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산지소와 지역균형발전의 필요성은 필자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다. 다만 이런 논의에서 에너지고속도로가 단순한 '송전망 확대 사업'으로 비춰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상승하는 현 시점에서 에너지고속도로의 의미는 훨씬 본질적이다. 재생에너지의 높은 변동성과 간헐성 때문에 재생에너지는 특정 지역에 고립될 때보다 오히려 전국 단위에서 실시간으로 순환될 때 더 비용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 단순히 재생에너지 생산량이 연간 몇 GW인지를 따지는 '설비 용량'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 시점에서의 가장 큰 병목은 재생에너지와 연결된 계통이 이를 얼마나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여부이다.
정부는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상향하며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2035년 37%로 제시했고,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 역시 2024년 누적 34GW에서 2035년 140GW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현재 많은 지역에서 계통 미비로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의 계통 접속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조치는 전력망 증축과 계통 안정화 투자이다. 재생에너지는 지역 편재성과 기후 의존성으로 인해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가 빈번한데, 전력은 순간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으면 계통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이 구조적 긴장을 해소하지 못하면 잦은 출력제어는 불가피하다.
제주도는 이러한 현실을 가장 먼저 경험한 지역이다. 제주에서는 이미 2023년에 재생에너지 설비 비중이 전체 전력 설비의 40%를 넘어섰고, 일부 기간에는 전력 공급의 60% 이상을 재생에너지가 담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높은 재생에너지 비중의 부작용으로 출력제어가 빈번히 발생했다. 실제로 제주도의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는 2021년 61회, 2022년 132회, 2023년 181회로 해마다 급증했고, 2024년에도 83회의 출력제어가 발생했다. 계통 및 유연성 자원 보강 속도가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그러나 이 흐름은 2024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급변했다. 완도–동제주 간 제3해저연계선 HVDC가 본격 운영에 들어가면서, 2025년 이후 현 시점까지 제주도의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는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제3연계선은 총 98km 구간으로 제주와 육지를 연결하는데, 앞선 두 연계선과는 달리 양방향 실시간 송전을 가능하게 했다.
HVDC 개통 전에는 제주에서 육지로 송전할 수 있는 전력이 시간당 30MW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완도–동제주 HVDC가 가동된 이후에는 이 용량이 180MW까지 확대되었다. 남는 전력을 즉시 외부로 보내고, 필요 시 다시 받아오는 구조가 마련되면서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가 해소된 것이다. 동시에 제주도에만 시범적으로 도입된 재생에너지 가격입찰과 실시간 도매시장 역시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출력제어가 한번도 일어나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HVDC로 충분히 연결되지 않은 육지 계통에서는 출력제어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육지 출력제어는 2023년 2회, 2024년 83회로 급증했고, 2025년에는 데이터가 공개된 5월까지 이미 90회가 발생했다. 특히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출력제어가 집중된 현상에서 육지의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 속도를 계통과 유연성 자원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재생에너지를 특정 지역에서 모두 소비하겠다는 급진적인 지산지소 접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비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호남권 내 RE100 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지역 내 소비로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변동성과 계절성을 고려하면, 대규모 잉여 전력이 발생하는 시점에 지역 수요만으로 이를 흡수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재생에너지는 고립된 소비가 아닌 전국 단위 순환을 전제로 설계돼야 하고 결국 에너지고속도로는 바로 이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비용 효율적인 인프라이다. 제주도에서의 실증을 통해 검증된 선택지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