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뒤흔든 메모리 공급난
퀄컴·닌텐도·로지텍 주가 폭락
삼성전자·SK하이닉스·샌디스크 고공행진
주가에 선반영?…“공급부족 연말까지 이어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사진=로이터/연합)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투자자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반도체를 활용해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 우려로 주가가 휘청이는 반면,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들의 주가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당분간 꺾일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블룸버그 글로벌 소비자 가전 지수'는 작년 9월 말부터 이날까지 13% 가까이 추락했다. 반면 삼성전자를 포함한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들로 구성된 '블룸버그 글로벌 메모리 지수'는 같은 기간 160% 급등했다.
메모리 수급 불균형의 여파는 글로벌 가전·IT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퀄컴은 메모리 공급 부족으로 스마트폰 생산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부각되자 주가는 지난 5일 8% 넘게 급락했다.
닌텐도 역시 주력 제품인 스위치2의 마진 압박 경고에 주가가 지난 4일 11% 가까이 폭락했다. 스위치2의 판매 호조로 매출은 크게 늘어났지만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 여파로 이익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닌텐도 주가는 메모리 공급난 우려로 지난해 12월 약 20% 급락했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이후 월간 기준 최대 낙폭이다.
PC 주변기기 제조업체 로지텍도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PC 수요 전망이 악화되면서 주가가 지난해 11월 고점 대비 30% 가량 폭락했다. 중국의 전기차·스마트폰 제조사인 BYD와 샤오미의 주가도 메모리 공급난 우려 속에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전자제품 제조업체들은 가격 인상에 나서거나, 제품 설계를 변경해 메모리 사용량을 줄이는 등 비용 부담을 완화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삭소의 차루 차나나 수석 투자전략가는 “이번 실적 시즌에서 메모리 가격 이슈는 단순한 배경 설명을 넘어 주요 뉴스로 부상했다"며 “메모리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 자체는 새로운 정보가 아닌 만큼 이미 주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공급 부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한 의문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년간 D램·낸드플래시 메모리 가격 상승률 추이(사진=블룸버그)
전문가들은 이번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과거의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을 벗어나 이른바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AI 인프라 운영 기업)들의 막대한 AI 투자 확대가 불을 지폈다는 설명이다. 미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 구축을 주도하면서 생산 설비가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집중되고, 그 결과 기존 범용 메모리 반도체 생산 능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 최종 제품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부진하지만, 범용 D램(DDR5) 현물 가격은 최근 몇 달 사이 600% 이상 급등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낸드플래시 메모리(512GB) 가격도 지난 1년간 570% 넘게 올랐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들의 주가는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해 9월 말 이후 150% 상승했다. 범용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주가도 이 기간 2배 가까이 뛰었고 일본 키옥시아, 대만 난야 테크놀로지 주가는 약 280% 급등했다. 낸드 메모리 업체의 선두주자 샌디스크 주가는 400% 이상 폭등했다.
시장에서는 메모리 공급난이 이들 주가에 얼마나 선반영됐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메모리 수급 불균형이 예상보다 장기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비비안 파이 펀드 매니저는 “현재 밸류에이션에는 메모리 공급 차질이 1~2분기 내 정상화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며 “하지만 시장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수급 불균형의) 지속 기간"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공급난은 연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GAM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지안 시 코르테시 펀드 매니저는 “통상 메모리 사이클은 3~4년 정도 지속됐다"며 “하지만 이번 사이클은 기간과 강도 면에서 이전 사이클을 이미 넘어섰고, 현재로서는 수요 둔화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