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히트펌프 확대의 조건: 어디까지 가능한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6.03.25 10:58

김재민 (사)지역경제녹색얼라이언스 대표

김재민 (사)지역경제녹색얼라이언스 대표

▲김재민 (사)지역경제녹색얼라이언스 대표

정부는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 대를 보급해 약 518만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도시가스 및 기름 보일러를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공기열 히트펌프의 재생에너지 인정, 설치비 최대 70% 보조, 전기요금 체계 개편, 청정열공급의무화 제도 등을 통해 보급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이다. 건물 부문 열에너지 탈탄소화를 위한 핵심 정책으로 평가된다.


히트펌프의 가장 큰 장점은 높은 효율이다. 동일한 에너지로 더 많은 열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에너지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난방 시장에서의 실제 경쟁력은 효율 자체보다 비용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현재 가스 난방의 열 기준 비용은 약 90원/kWh 수준이며, 히트펌프는 성능계수(COP) 2.5 기준 전기요금이 약 220원 이하일 때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COP 3 수준에서는 약 260원대까지 가능하지만, 이는 이상적인 조건에 가까우며 실제 운전에서는 계절과 부하 조건에 따라 효율이 낮아질 수 있다.


가스와 전기요금이 동시에 변동하는 경우에도 경쟁력은 단순히 “동반 상승" 여부로 결정되지 않는다. 핵심은 상대적인 인상폭이다. 전기요금 상승폭이 더 클 경우 히트펌프의 경제성은 약화될 수 있으며, 이는 보급 속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히트펌프 확대는 전력 시스템 측면의 변화를 수반한다. 기존에 가스가 담당하던 열 수요가 전력으로 이동하면서 전력망 부담이 증가하고, 재생에너지 연계, 피크 부하 관리, 송배전망 투자 확대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이러한 비용은 전기요금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히트펌프 보급이 확대될수록 전기요금 상승 요인이 강화되고, 이는 다시 경제성과 수용성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형성된다.


시장에서는 이미 히트펌프가 자발적으로 확산되는 영역이 나타나고 있다. 공공시설, 상업시설, 농업시설 등 비주거용 건물에서는 설치 공간 확보가 용이하고 중앙 제어 운영이 가능해 효율적인 운전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정책적 지원이 제한적이더라도 경제성과 편의성에 기반한 자발적 도입이 확대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흐름은 정책 설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술이 경쟁력을 갖는 환경에서는 시장이 스스로 선택한다. 반면 정책이 시장 조건을 넘어 특정 기술의 확산을 강하게 유도할 경우, 보조금, 요금 조정, 인프라 투자와 같은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재정 부담과 함께 수용성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기존 주거 건물로의 확대는 별도의 고려가 필요하다. 국내 주거는 가스 및 지역난방 인프라가 이미 구축된 구조로, 히트펌프 전환 시 기존 인프라와 신규 설비가 병존하는 중복 투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인프라 활용 효율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관찰된다. 유럽은 히트펌프 보급을 빠르게 확대해 왔으나, 최근에는 전기요금 상승과 비용 부담을 반영해 보조금 조정, 정책 속도 조절, 기술중립 접근 강화 등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보급 확대 과정에서 드러난 현실적 제약을 정책에 반영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 아직 보급 초기 단계에 있다. 따라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전기요금, 전력망, 기존 인프라와 같은 변수들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특히 전기요금은 히트펌프 경제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로, 일정 수준 이상 상승할 경우 보급 확대는 자연스럽게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히트펌프는 모든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범용 기술이라기보다, 일정한 조건에서 높은 효과를 보이는 기술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축 건물, 저온 난방 구조, 비주거용 시설에서는 경쟁력이 높지만, 기존 주거 건물 전반으로의 확대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히트펌프 보급 정책의 핵심은 단순한 확대가 아니라 적용 범위와 조건의 설정에 있다. 시장에서 이미 경쟁력이 확인된 영역을 중심으로 확산을 유도하고, 전기요금과 전력망, 기존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균형 있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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