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도심 복합개발 조례입법 예고 '간선도로' 접도 요건 두고 찬반 정면충돌
마감 직전 3일간 전체 의견 66.3% 쏠림, 이름만 바꾼 '복사판' 의견 수백 건 점령
서울시 “숫자 안 세, 찬·반 아닌 타당성 본다" 입장 속 시스템 허점 논란
▲서울 중구 서울시청 전경. '도심 복합개발 지원 조례 시행규칙(안)' 입법예고를 둘러싸고 게시판에 3800여 건의 의견이 쏟아진 가운데, 특정 시점에 유사 문구가 반복 제출되는 등 '조직적 여론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서울시청 홈페이지
서울시가 입법예고 게시판에 도입한 '1분당 1회 의견 게시' 제한이 접도(도로 경계선에서 일정 거리에 지정된 토지 이용 제한 구역) 요건 지정을 반대하는 조직적 반복 게시 앞에서 사실상 무력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경제신문이 '도심복합개발 조례 시행규칙안' 입법예고 게시판을 취재한 결과, 동일 문구의 반복 게시와 특정 시간대 집중 등록 등 비정상적 패턴이 확인됐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건수는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왜곡된 여론이 정책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4일 본지가 지난달 26일 마감된 서울시 입법예고 게시판에 등록된 접도 요건 지정 게시글 3870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같은 달 5일 부터 시작된 의견 제출은 특정 시점에 비정상적으로 집중되는 '기형적 폭증' 양상을 보였다. 전체의 66.3%에 해당하는 2566건이 마감 직전 단 3일(23~25일)에 몰렸다. 특히 마지막 날인 25일 하루에만 1425건이 쏟아졌다. 이는 입법예고 초기 18일 동안 누적된 의견(1304건)을 단 하루 만에 뛰어넘는 수치로, 일반적인 민원 흐름을 벗어난 '집중 투입' 정황으로 해석된다.
입법예고 기간 동안 여론 흐름은 시점별로 뚜렷하게 갈렸다. 초기 단계인 3월 5일부터 22일까지는 누적 1304건이 접수되며 비교적 완만한 흐름을 보였고, 이 기간에는 접도 요건 완화나 수정 요구 등 반대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마감이 임박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마감 전날인 24일에는 하루에만 601건이 쏟아지며 반대 측의 장문 제목 게시물이 집중적으로 올라오는 양상이 나타났고, 이어 마감 당일인 25일에는 1425건이 몰리며 정점을 찍었다. 특히 이날은 전체 의견의 36.8%가 한꺼번에 등록되면서, 짧은 찬성·반대 구호 형태의 게시글이 대량 반복되는 방식으로 게시판이 사실상 점령된 모습이었다.
40자 장문 제목 수백 건 무한 반복… 1인이 100건 올려도 서울시 보안 '무방비'
가장 뚜렷한 특징은 게시글 제목의 반복성이다. 작성자 명의는 매번 달라지지만 “서울시 시행규칙(안) 제4조 제2호 가목은 상위법의 취지와 범위를 벗어나…" 또는 “도심복합개발의 핵심 목적은 양질의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데 있습니다"와 같은 40자 이상의 장문 제목이 연속된 게시글 구간을 점유하는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완전히 동일한 문구 기준으로도 최대 100건 안팎의 반복 게시가 확인됐으며, 유사 문구까지 포함하면 특정 의견군이 수백 건 단위로 집중 제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작성자 명의로는 수십 건에서 많게는 100건에 가까운 게시가 연속 등록되며 여론 비중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양상도 포착됐다.
▲서울시 입법예고 의견 등록을 위한 '비회원 인증' 화면. 24시간 내 최대 10회, 1분당 1회로 제한된 인증 구조를 두고 반복 제출 및 조직적 참여를 충분히 차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 홈페이지 캡쳐.
게시판 구조 역시 이 같은 현상을 가능하게 한 배경으로 지목된다. 본지가 확인한 '비회원 인증' 절차에 따르면, 이용자는 최초 인증 이후 24시간 내 최대 10회, 1분당 1회 게시 제한만 적용받는다. 표면적으로는 중복 제출 방지 장치지만, IT 전문가들은 오히려 조직적 제출을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계정 단위 제한만 존재할 뿐, 다수 명의를 활용한 분산 제출이나 자동화 시도를 구조적으로 차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특정 시간대에 장문 제목 게시물이 짧은 간격으로 쏟아진 현상은 여러 명의를 순차적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명의 돌려쓰기' 방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특히 자동 입력을 차단하는 보안문자(CAPTCHA) 장치조차 적용되지 않아, 시스템이 자동화 공격에 취약한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 입법예고 게시판에 지난달 24일 동일·유사 문구의 의견이 여러 명의로 반복 게시되는 가운데, 단일 작성자로 추정되는 연속 게시글이 중간에 섞여 올라온 모습. 서울시청 홈페이지
해당 게시판에 수일 간 최대한 많은 의견글을 올렸다는 복수의 현장 주민이 느끼는 바도 역시 비슷하다. 기계적 프로그램을 동원한 것으로 의심되는 데이터 패턴이 지속해서 포착됐다는 것이다.
한 서울 주민은 “(게시판에 글을 올리려고) 들어가 보면 순식간에 같은 문장이 이름만 바뀐 채 줄줄이 올라온다"며 “사람이 직접 쓴 정상적인 의견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우리는 단톡방에 뿌린 글을 통해 들어온 주민이 직접 인증해서 몇십 개 올리는데 상대는 밤사이 수백, 수천 건을 올린다"며 “사람이 직접 쓴 글이라고 절대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에 해당 사안을 직접 문의했다는 한 주민은 “AI 등을 활용해 매크로성 게시글을 걸러달라고 요청했지만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수일간 이어진 게시판 여론전에 깊은 피로감을 호소했다.
“확장 불가 뚝방길인데 20m 접도하라니"… 현실 외면한 규칙이 조작 부추겨
이 같은 '화력전'의 본질에는 시행규칙안의 핵심 쟁점인 '접도 요건'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5일 도심 복합개발 조례 시행규칙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난해 시행된 도심복합개발법에 따라 공공뿐 아니라 신탁사·리츠 등 민간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 핵심이다.
대상지는 성장거점형과 주거중심형으로 나뉘며, 모두 5000㎡ 이상 부지를 기준으로 지정된다. 이번 시행규칙안의 쟁점은 '접도 요건'으로, 성장거점형은 20m 이상 간선도로 등 2면 이상 도로 접도를 요구하고, 주거중심형도 면적에 따라 15~20m 간선도로와 폭 6m 이상 도로로 둘러싸인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논란의 발단은 주거중심형에 놓여있다. 반대 측은 “이면도로가 대부분 6~12m 수준인 현실을 고려하면 사실상 사업을 막겠다는 것과 같다"고 반발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는 “최대 700% 용적률이 적용되는 고밀 개발인 만큼 교통 혼잡과 안전 문제를 고려한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설명한다.
▲서울시 '도심 복합개발 지원 조례 시행규칙(입법예고안)' 중 논란이 된 접도 요건 조항. 개발 면적에 따라 15~20m 이상의 간선도로에 접하도록 규정돼 있어 현실성과 형평성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
실제로 에너지경제신문이 도심복합개발 대상지인 삼전동 현장을 직접 확인한 결과, 접도 요건을 둘러싼 논쟁이 현장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A투자신탁 등이 참여하는 약 6000세대 규모의 대단지가 북측 백제고분로(20m 이상)나 서측 삼전로(6차선) 같은 간선도로와 직접 연결되지 않고, 폭 4~12m 수준의 협소한 생활도로와 일방통행로로만 진출입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본지가 입수한 설명 자료 문건에 따르면 대상지는 남측으로 삼전로2길(4차선·약 12m)과 접하고 있다. 그러나 본지가 직접 확인한 현장의 도로는 탄천을 따라 형성된 뚝방도로로 한쪽은 하천, 다른 한쪽은 제방과 인접 구조물로 막혀 있어 물리적으로 확장 여지가 사실상 없는 상태였다.
도로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제방을 훼손하거나 하천 구간을 침범해야 하는 구조여서, 현실적으로 확장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곧바로 체감됐다.
▲삼전동 민간 도심복합개발 대상지 남측에 위치한 삼전로2길(4차선·약 12m) 구간과 탄천 제방 일대 모습(아래). 도면상 해당 구간을 확장해도 병목현상을 피하기 어렵다고 명시된 가운데, 현장 역시 하천과 제방으로 막혀 있어 물리적 도로 확장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로 확인된다. 사진=장혜원 기자
이를 두고 반대 측은 “기준을 충족할 수 없는 지역까지 접도를 일괄 적용하면 정비사업 자체가 좌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찬성 측 의견도 맞선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터를 잡고 살아왔다는 주민은 “협소한 생활도로에 거대 단지가 들어서면 인근 교통은 완전히 마비될 것"이라며 “이번 시행규칙안은 투기 세력에 의한 난개발을 막는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시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입법예고는 찬반을 묻는 절차가 아니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의견이 1건이든 1만건이든 중요한 것은 개수가 아니라 내용이며, 동일한 취지의 의견은 하나로 묶어 판단한다"며 “매크로 의심 정황이 있는 게시글의 반복 제출 여부와 관계없이 정책 결정은 공공 목적과 타당성을 기준으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입법예고는 투표가 아니기 때문에 찬반 숫자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지 않는다"며 “온라인 게시판은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한 창구일 뿐, 최종 판단은 법적 기준과 정책 목적에 따라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사안은 단순한 민원 폭주를 넘어, 디지털 의견 수렴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와 여론 왜곡 가능성이라는 문제를 동시에 드러냈다는 평가다. 게시판은 열려 있지만, 그 안에서 형성된 '민의'가 과연 얼마나 실제 시민 의사를 반영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