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젠틀몬스터·올리브영 들어선 자리, 원래는 수제화 관련업체·공장부지
거대 자본은 ‘획일성’ 경계해야
용적률 400% 건물들에 성수 벽돌 건물이 밀려나고 있다. 성수는 이제 감각적인 카페와 디자이너브랜드들과 예술가들의 거리를 넘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거대 자본이 들어오면서 관광지로서 소비·문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무신사·젠틀몬스터·올리브영 이런 규모 있는 기업들이 성수에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과거·현재·미래가 성수에서 어우러진다고 봤다. 문화적 가치를 보고 온 것이다. 그러나 거대 자본이 들어오는 순간 공간의 결은 바뀔 수밖에 없다. 성수의 향방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신구의 조화에 있다.
성수는 1960년대부터 준공업지구였다. 1970~1980년대는 수제화와 인쇄업같은 전통 제조업이 강세였지만 1990년대에 들어 IMF위기를 맞았다.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으로 산업구조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온 것도 침체의 원인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울시는 도시의 폐공장을 문화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저렴한 임대료로 젊은 예술가와 창업가들을 모았다.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성수는 개성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공간으로 발돋움했다. 벽돌의 골조를 살리면서 카페와 전시공간으로 리모델링한 '대림창고'가 주목받으면서 성수 특유의 레트로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각인됐다.
대림창고는 1970년대 쓰이던 정미소이자 물류창고였다. 2016년 리모델링을 하면서 건물의 투박한 외관과 산업시설의 흔적은 보존하되 내부는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그대로 드러난 콘크리트 벽면, 높은 천장, 대형 유리창이 핵심이었다. 이는 성수 도시재생에 있어 여러 기회를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대림창고 갤러리 카페 전경. (사진=송윤주기자)
2020년대 이후에는 IT·R&D 기업들과 패션브랜드가 한데 모인 융합의 공간이 됐다. 미래 전략분야의 혁신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기 위한 창업허브와 국내외 패션·뷰티 브랜드들이 공격적으로 들어왔다.
◇ 무신사·젠틀몬스터·올리브영 400% 용적률 빌딩이 들어서기 전에는
2023년부터 무신사·젠틀몬스터·올리브영이 높은 빌딩을 올려 성수를 거점으로 삼았다. 높은 빌딩이 들어서기 전 부지에는 공통적으로 성수 수제화 거리 시절 업체들이 있었다.
무신사 스탠다드 성수점은 건축물대장에 따르면 용적률이 478.79%다. 2023년 6월에 사용 승인된 지하 4층, 지상 10층 건물이다. 1,2층만 무신사 스탠다드로 개방하고 나머지는 사무실이다.
2021년 8월에 무신사 빌딩이 착공되기 전 2021년 2월에는 2층짜리 건물인 남일상사가 있었다. 대스키(피할)·하리(가죽이나 천을 접착제로 붙임)·갑보(신발 윗부분 안쪽에 덧대는 보강재)는 모두 가죽 가공 및 신발 부자재와 관련된 용어들이다.
▲좌측 사진은 31일 무신사 스탠다드 성수점, 우측 사진은 2021년 2월 같은 부지의 네이버 로드뷰 모습 (사진=송윤주기자)
젠틀몬스터와 템버린즈, 누데이크가 함께 있는 아이아이컴바인드 사옥은 건축물대장에 따르면 용적률이 421.47%다. 2025년 6월에 사용 승인됐고 지하는 5층까지, 지상으론 14층까지 있다.
2019년 5월에 아이아이컴바인드 빌딩이 착공되기 전 2019년 2월에는 2층짜리 건물인 컴퓨터 그레딩·제화 철형 전문 업체가 있었다. 컴퓨터 그레딩(Computer Grading)은 신발을 만들 때 기본 사이즈 패턴을 만들고, 사이즈별로 비율에 맞게 확대 축소하는 작업이다. 제화철형은 가죽이나 원단을 신발 도안 모양대로 한 번에 찍어내는 강철 칼날 틀을 말한다.
▲좌측 사진은 31일 아이아이컴바인드 사옥, 우측 사진은 2019년 2월 같은 부지의 네이버 로드뷰 모습 (사진=송윤주기자)
올리브영 N 성수는 건축물 대장에 따르면 용적률이 472.98%다. 2024년 2월 29일에 사용 승인돼 지하 5층, 지상 10층까지 있다. 원래 올리브영 자리에는 2021년 4월까지 소규모 제조공장이 있었다.
▲좌측 사진은 31일 올리브영 N 성수 건물, 우측 사진은 2021년 4월 같은 부지의 네이버 로드뷰 모습 (사진=송윤주기자)
◇ 신구의 조화…'획일성' 경계해야
성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답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낮은 벽돌 빌라'였다. 성수를 방문한 사람들에게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무신사를 방문한 A씨는 성수의 매력에 대해 “성수의 낮은 건물들이 좋다"며 “특히 벽돌건물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B씨는 "원래 반지하는 꺼려지기 마련인데, 성수에서 통유리로 터놓은 반지하는 매력적“이라며 인근 빌라 건물을 리모델링한 한 카페를 추천했다.
새로 지어지는 매끈한 빌딩이 기존의 성수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경계해야 할 것은 '획일성'이다.
올리브영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 C씨는 “볼거리가 많아서 좋다"면서도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한 장 올려야 한다면 카페 골목에서 찍은 사진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명동에 있는 올리브영도 이미 다녀왔다는 이유에서다.
31일 평일 저녁 성수에는 절반 이상이 관광 온 외국인이었다. 일본 여행가서 꼭 들려야 할 곳으로 유니클로와 돈키호테가 꼽히는 것처럼 한국에서는 무신사와 올리브영이 언급된다. 사랑받는 지금은 괜찮지만 앞으로 이것이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지역의 개성은 결국 개인들에게서 나온다. 성수 인근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카페 창업을 위한 임대료가 평당 100만원이 넘어간다. 권리금도 2억원에서 7억원까지 뛰어 이제는 개인이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자연스럽게 상권은 기업 중심으로 재편된다.
◇ 브루클린도 이미 비슷한 고민 중
성수를 '한국의 브루클린'이라고 한다. 붉은 벽돌 공장을 리모델링한 건물들만이 이유는 아니다. 예술가들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과 스타트업·IT 기반 기업이 유입됐다는 사실도 공통적이다.
브루클린 항은 뉴욕항과 더불어 잘 나가는 항구였다. 미국 최고의 소비시장 중 하나인 맨하탄에 가장 빨리 물자를 공급할 수 있었던 곳이 브루클린 공장이었다.
옛날 항구 시절 뉴욕은 창고가 많았다. 항구가 빠지면서 그 빈 창고 공간이 럭셔리 로프트나 사무공간이 됐다.
점차 브루클린 항에 화물선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지역이 쇠락하자 브루클린도 뉴욕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공장이 꼭 브루클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지자 공장부지가 빈 채로 남게 됐다.
브루클린의 빈 공장 부지와 창고에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맨해튼 소호지역의 렌트비가 비싸지면서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 그린포인트, 덤보 등지로 이동한 것이다.
예술가들이 먼저 자리잡자 부자들도 그 예술을 즐기러 브루클린에 모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투트리(Two Trees) 부동산개발업체가 이런 빈 공장 부지들을 사들여 고급 레지던스로 바꾼다. 이곳에 주로 이사오는 사람들은 테크업계 종사자들이다. 맨하탄과 가깝기 때문에 벤처투자를 받기 용이하고, 큰 옛날 공장이 많아 벤처 사무실을 얻기도 용이한 것이다.
브루클린은 우리보다 앞서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온 곳이다. 뉴욕의 건축·도시 연구단체 아키텍처럴 리그 오브 뉴욕(The Architectural League of New York)이 운영하는 도시 전문지는 브루클린을 두고 한때 도시의 랜드마크였던 빨간색·흰색 체크무늬의 가스 탱크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유리 타워가 차지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젠트리피케이션의 전형으로 자리 잡은 윌리엄스버그는 살인적인 주택 가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치솟는 주택 가격의 원인으로 우후죽순 발생하는 고가 럭셔리 개발을 짚는다. 결국 핵심은 '건축적 맥락'이라는 진단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건축평론가인 저스틴 데이비슨(Justin Davidson)은 고층 유리건물이 들어선 브루클린 시내에 대해 “밀레니얼 시대의 건축적 평범함의 상징이 됐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19세기 붉은 벽돌창고를 재활성화하려는 시도는 미약하다"고 덧붙였다.
성동구청은 성수동 전역에 대해 붉은 벽돌 집수리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2023년 1월부터 2026년 12월까지 신청을 받고있으며 건축물을 건축하거나 대수선할 때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한다. 현재 11.9억원에 대해 보조금 지원 결정이 이뤄졌고 실제 지급된 것은 10.5억원이다.
구청 관계자는 “붉은 벽돌 건축물을 지역 건축 자산으로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관계자는 “고층건물에 대해서는 따로 정책이 없고 상권 활성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측면도 있다" 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