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교착, 말라가는 석유…글로벌 경기 덮친다 [이슈+]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6.04.27 12:19

이미 시작된 원유 수요 붕괴
실물경제로 번지는 충격

브렌트유 현물가격 전고점 돌파 가능성
트럼프 “이란 해상 봉쇄 효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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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조선(사진=로이터/연합)

전 세계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운항 제한이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원유 수요 붕괴가 임박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주요국들은 비축유를 활용하고 높은 가격을 감수하며 공급을 확보하는 등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의 대치가 장기화할 경우 원유 소비 축소가 전방위로 확산되며 수요 침체와 이에 따른 경기 둔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7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원자재 거래업체 트라피구라의 사드 라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열린 FT 원자재 글로벌 서밋에서 “수요 감소는 가격 지표에 잘 드러나지 않는 영역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유 공급이 줄어든 만큼 수요가 강제로 줄어들면서 시장이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 “이미 시작됐고 사태가 장기화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며 “현재는 중대한 변곡점에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 2월 28일 이란을 공습한 이후 지금까지 약 10억 배럴 규모의 원유 공급 손실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이는 전쟁 초기 각국 정부가 방출했던 비축유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현재까지는 비축유 방출로 유가 상승이 일정 부분 억제되고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9주째 이어지면서 아시아 석유화학 산업 등 일부 분야에서 시작된 수요 감소가 전 세계 일상 소비 영역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FEG의 쿠네이트 카조글루 에너지 전환 책임자는 “아직 뚜렷한 위기가 보이지 않고 단순히 기름값 상승 정도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수요 파괴는 이미 시작됐고 파도처럼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시아가 먼저 영향을 받았고, 아프리카가 뒤따르며, 유럽 역시 연료 부족과 가격 상승을 체감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디젤, 항공유 등을 포함한 '중간 유분' 시장이 가장 민감한 영역으로 꼽힌다. 유럽에서는 이달 디젤 가격이 배럴당 200달러를 넘어 2022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며, 인도에서는 디젤 배급제 도입 가능성과 가격 급등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맥쿼리 그룹의 비카스 드위베디 전략가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상황이 몇 주 더 이어지면 디젤 공급 확보 문제에 대한 공식 발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디젤은 물류를 움직이는 경제의 핵심인 만큼, 이 부문이 흔들리면 모든 사람이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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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이티드항공 여객기(사진=AFP/연합)

항공 산업 역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아시아 항공사들이 노선 축소에 나선 데 이어 독일 루프트한자는 오는 10월까지 단거리 노선 약 2만편 운항을 취소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스칸디나비아항공(SAS)이 이달에만 약 1000편을 취소했고 네덜란드 KLM도 내달 유럽 노선 160편을 운항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 역시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올해 운항 규모를 기존 계획 대비 약 5% 줄이겠다고 밝혔다. 또 미국 휘발유 평균 가격이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서자 소비가 전년 대비 약 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글로벌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분석했다. 이 은행은 “최근 한 달 반 동안의 가격 상승이 미국 소비자의 연료 수요 감소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종전을 위한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난항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통해 세계 경제에 유가 급등이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이란 해상 봉쇄라는 강경 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주말 예정됐던 미국과 이란의 2차 종전 협상은 결국 불발됐다. 이란은 미국이 해상 봉쇄를 해제하지 않을 경우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막대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린 대치 속에서 양측이 서로 더 오래 버티기를 기대하며 평화도 전쟁도 아닌 어색한 교착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효과적"이라며 “그들은 더 이상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협상 방식에 대해서는 “사람들(미국 협상 대표단)을 18시간이나 여행하게 해서 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전화로 진행하겠다. 그들이 원하면 우리에게 전화하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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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로이터/연합)

여기에 협상 타결의 변수로 꼽혀온 이스라엘과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휴전도 무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26일 레바논을 공습해 14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했으며, 헤즈볼라도 이스라엘군을 겨냥한 공격을 감행해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


원자재 트레이딩업체 건보르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될 경우 다음 달 원유 공급 손실 규모가 하루 500만 배럴에 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는 전 세계 공급의 약 5%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수록 수요와 경제활동이 유가 상승을 통해 억제되는 방향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FGE는 봉쇄가 12주 지속될 경우 브렌트유 현물 가격이 배럴당 154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극단적인 경우 시장 균형을 맞추기 위해 유가가 배럴당 25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건보르의 프레데릭 라세르 리서치 총괄은 “3개월 내 해협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이는 거시경제 문제로 확산돼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톨 그룹의 러셀 하디 최고경영자(CEO) 역시 “각국이 비축유에 의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결국 수요를 제한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경기 침체라는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 악시오스에 따르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우선 개방한 뒤 핵 협상을 이어가는 제안을 미국에 전달했다. 양측이 해상 통제를 해제하고 휴전 연장을 선언한 뒤 핵 협상을 이어가자는 구상이다. 해당 제안은 파키스탄을 통해 전달됐지만 미국이 실제로 검토할 가능성은 불확실하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박성준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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