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마찰의 실종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6.05.06 10:58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우리 사회에서 마찰(摩擦)은 대개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람 간의 마찰은 불편한 요소이고 피곤한 요소이다. 기관 간의 마찰도 다르지 않다. 불편하고 피곤하다. 심지어 괴롭기도 하다. 그런데 마찰이 없다면 어떻게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밀고 당김이 있어야만 균형점이 찾아진다.


예를 들어보자. 사업자와 규제자를 보자. 사업자는 어떻게 하면 값싸게 잘 만들지가 관심사이다. 반면에 규제자는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만들지, 사회에 악영향을 기치지 않을지가 관심사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의 관심사는 상충된다. 여기서 규제자가 일방적으로 승리한다면 가장 안전한 사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업자가 이기면 가장 경제적인 사업이 될 것이다. 이 둘이 마찰을 일으킨 결과 균형점이 잡힌다면 그 지점은 최적의 안전성과 최적의 경제성을 가지는 작품이 될 것이다. 바로 이 균형이 국민에게는 가장 좋은 상태가 된다. 이 균형을, 당사자간 마찰을 거치지 않고, 정치인이 잡는다면 대부분 마찰의 결과로 나타날 균형점과는 다른 지점으로 귀결될 것이다.


마찰을 일으키지 않은 상태는 사업자나 규제자에게 편안한 상태가 된다. 마찰의 결과 균형점을 찾는 과정은 사업자나 규제자 모두에게 불편하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에게는 가장 좋은 상태가 된다. 문제는 이 둘이 편안한 선택을 하는 경우이다. 규제자가 사업자가 하고자 하는 대로 내버려 둔다거나 사업자가 규제자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 저항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된다. 악의적 편안함이다. 그러는 동안 국민과 국가는 희생되는 것이다.



마찰이 실종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국민에게도 국가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최근 국회는 여야가 크게 불균형하고 있다. 마찰이 있을 수 없다. 일방의 생각대로 일방적으로 진행된다. 그것이 당사자에게는 가장 좋은 상태가 되겠지만 국민에게는 그리 바람직한 상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공청회를 가봐도 별 이견이 없다. 반대의견이 없다. 발표 듣고 나면 그만이다. 반대의견이 없다면 공청회를 개최할 이유가 없다. 공청회 없이 진행해도 동일한 결과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구성하는 여러 가지 위원회도 마찬가지이다. 반대의견을 개진할 인사를 집어넣지 않는다. 마찰이 없다. 조용하고 일방적이고 만장일치로 진행된다. 그럴거면 위원회를 왜 만들었나? 다른 생각들을 들어보고 정책의 그늘이나 이행에 문제가 생길 것을 미리 살펴보려는 것 아닌가?


회의 결과가 만장일치라는 얘기는 회의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수기만 모였다는 것이 아닌가? 학생이 공부를 마치고 문제집을 풀어봤을 때 모든 문제를 다 맞췄다면 문제집을 푼 시간은 100% 시간낭비이다. 문제집을 푸는 이유는 공부한 것 가운데 잘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다. 틀리거나 애매한 문제가 나와야지 자신이 확실히 모르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문제를 다 맞았다는 것은 모르거나 애매한 부분을 찾는데 실패했다는 뜻이 된다.


만장일치의 완벽한 회의록, 기안자에서 최종결재권자까지 한 번도 수정되지 않고 서명된 문서는 문서를 보지 않고 결재를 했거나 마지막에 문서를 다시 작성해서 그렇게 짜맞춘 것일 뿐이다. 기안자에서 결재권자까지 누가 어떤 수정을 했는지를 완벽히 은폐한 서류일 뿐이다.


위원구성의 면면을 보면 그 위원회가 어떤 결론으로 끌고갈 요량으로 구성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위원회라는 형식요건은 갖추었지만 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는 내용적 당위성은 저버린 것이다. 담당자가 일을 쉽게 풀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독재를 잘 도와줄 분들만 모신 것이다. 반대의견을 자주 내면 위원이라는 감투가 떨어진다. 그럼 전문가들은 간사의 눈치를 보고 대세를 보고 총기를 감춘다. 뻔히 문제점이 보여도 보이지 않는 척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런데 그게 국민에겐 좋은 게 아니다.


이제는 위원회를 구성한 담당자가 왜 그런 성향의 위원들로만 위원회를 구성했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물론 이 또한 기안자에서 결재권자까지 누가 어떤 위원을 추천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도록 서류를 꾸밀 수 있으니까 잡아낼 수 없을 것이다. 지식과 요령은 사람을 착하게 만들고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의 도구일 뿐이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우리를 더 교활하게 만들고 우리에게 마찰을 피할 방법을 찾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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