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I 침체에 체질전환 승부수
글로벌 팹리스 수주가 방아쇠
500억 투자에도 재무부담 여전
라피스 지분 매각 가능성 변수
유상증자는 주주에게 강제된 선택이다. 참여하면 돈이 묶이고, 외면하면 지분은 희석된다. 본지는 그 선택 앞에 선 투자자를 위해, 기업이 내세우는 논리보다 숫자가 말하는 현실을 먼저 짚는다. [편집자주]
▲사진=제미나이
반도체 후공정(OSAT) 전문기업 LB세미콘이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섰다.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중심 사업 구조에서 시스템온칩(SoC)·전력관리반도체(PMIC)·전력반도체 등 Non-DDI 중심으로 체질을 전환하기 위한 승부수다. 중국발 공급망 재편 여파로 주력인 DDI 후공정 사업의 수익성이 흔들리자 성장성이 높은 신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번 투자 배경에는 글로벌 탑티어 팹리스와의 공급 계약 체결이 있다. 회사는 이를 계기로 Non-DDI 양산 체제를 구축하고 추가 고객사 확보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LB세미콘은 이번 유상증자와 관련해 지분 27.24%를 보유한 최대주주 엘비(LB)·특수관계인이 배정 물량 전량을 청약할 계획이라며 책임경영 의지를 강조했다. 다만 시장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한다. 지분 12.89%를 보유한 또 다른 최대주주급 주주인 일본 'LAPIS Semiconductor(라피스반도체)'는 기존 보유 주식에 대한 보호예수 의무가 없다. 언제든 지분 매각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책임경영을 내세운 최대주주 측과 달리, 외국인 주요 주주의 잠재적 엑시트 가능성은 여전히 '잠재 매도 물량(오버행)' 리스크로 남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DDI 위기 속 Non-DDI 승부수…글로벌 팹리스 수주가 투자 방아쇠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LB세미콘은 지난 15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보통주 1200만주를 새로 발행하며 예정 발행가는 주당 4150원(20일 마감가 5360원)이다. 모집총액은 약 498억원으로 할인율은 20%, 증자비율은 20.66%다. 대표 주관사는 KB증권이 맡았다. 신주배정기준일은 내달 19일, 구주주 청약은 오는 7월 29~30일, 납입일은 8월 6일이다.
이번 유증의 핵심은 DDI 중심 사업 구조에서 Non-DDI로의 체질 전환을 위한 투자 재원 마련이다. 조달 자금 498억원 가운데 300억원은 Non-DDI 범핑·백엔드 공정 설비투자에 투입된다. 스퍼터(Sputter)·노광장비(Exposure Stepper)·도금장비(Plating) 등 Non-DDI 범핑 핵심 장비를 추가 도입해 생산능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나머지 198억원은 운영자금으로 활용된다. 기존 DDI 물동 증가 대응과 함께 Non-DDI 신규 고객사 양산 일정에 맞춘 원재료 선행 매입에 쓰일 예정이다. 범핑 공정 핵심 소재인 타깃(Target)과 도금용액은 공정 가동 전 일정 수준의 재고 확보가 필요한 만큼, 사실상 Non-DDI 전환을 위한 사전 준비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다.
이번 투자의 직접적인 계기는 글로벌 탑티어 팹리스 기업과의 공급 계약 체결이다. LB세미콘은 증권신고서를 통해 “최근 글로벌 탑티어 팹리스 기업과 Non-DDI 범핑·테스트 서비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다만 고객사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LB세미콘은 장비 발주부터 입고·설치·공정 안정화까지 통상 6~10개월 이상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 지금 투자를 집행해야 내년 하반기 양산 일정에 맞출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신규 설비는 오는 4분기부터 내년 4분기까지 순차적으로 입고될 예정이며, 300억원 규모 설비투자도 내년 말까지 집행을 완료할 계획이다. 본격적인 매출 반영 시점은 2028년 상반기로 예상된다.
회사는 이번 투자를 기반으로 추가 고객 확보에도 나설 방침이다. 첫 글로벌 탑티어 고객사 납품 이력을 레퍼런스로 활용해 해외 고객사 확대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장치산업 특성상 Non-DDI 수주가 늘어날수록 감가상각비 등 고정비 부담이 낮아지는 구조인 만큼, 수주 확대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다만 현재 Non-DDI 비중은 아직 제한적이다. 올 1분기 기준 Non-DDI 테스트 매출 비중은 10.2%, 전력반도체는 4.4% 수준이다. 전체 매출의 70% 이상이 여전히 DDI 관련 공정에 집중돼 있어 실질적인 포트폴리오 전환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매출은 늘지만 적자 확대…“계속기업 전제 의문 가능성도"
재무 부담은 여전히 무겁다. 외형은 커지고 있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되는 흐름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최대주주의 오버행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챙겨봐야 할 변수가 한둘이 아니다.
LB세미콘의 매출은 2023년 4169억원에서 2024년 4509억원, 2025년 4798억원으로 소폭이나마 증가해왔다. 하지만 영업손실은 같은 기간 127억원, 188억원, 398억원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원가 구조다. 매출원가율은 2022년 82.6%에서 2023년 94.5%, 2024년 95.9%, 2025년 100.8%까지 상승했다. 지난해에는 매출원가가 매출액을 넘어서는 구조로 진입했다. 코로나19 특수 종료 이후 DDI 발주 감소로 가동률이 떨어졌고, 연간 약 900억원 수준의 감가상각비 등 고정비 부담은 유지된 영향이다. 장치산업 특성상 매출이 감소해도 고정비는 쉽게 줄지 않는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마진 역시 2022년 27.8%에서 지난해 11.7%로 60% 가까이 급감했다.
재무지표도 악화 흐름이 뚜렷하다.
이자보상배율은 2023년 -0.7배, 2024년 -1.0배, 2025년 -2.3배로 3년 연속 음수를 기록했다.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부채비율도 여전히 높다. 2021년 108.8%에서 2022년 101.3%로 낮아졌지만 이후 2023년 116.1%, 2024년 132.8%, 2025년 152.8%까지 올랐다. 올 1분기 146.7%로 소폭 낮아졌지만 여전히 100%를 웃돈다.
유동비율은 지난해 말 68.75%, 올 1분기 말 67.0%로 100%를 크게 밑돈다. 유동비율이 100% 미만이라는 것은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 부채가 1년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보다 많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당장 닥쳐오는 빚을 갚을 여력이 부족한 상태다.
실제로 올 1분기 말 기준 총차입금은 3187억원인데 이 중 유동성 차입금만 2352억원에 달한다. 유동성 차입금은 단기차입금과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장기차입금을 합산한 것으로, 사실상 1년 안에 상환해야 할 차입금 규모를 뜻한다. 반면 현금및현금성자산은 185억원, 단기예금을 포함해도 328억원 수준이다. 1년 안에 갚아야 할 돈이 2352억원인데 손에 쥔 현금은 328억원에 불과한 셈으로, 차입금 연장이 막히는 순간 유동성 위기로 직결될 수 있는 구조다.
LB세미콘 측은 1분기 말 기준 현금이 적어 보이는 것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고객사의 60일 결제 조건으로 인해 2월 말 결제분이 3월 말이 아닌 4월 초에 입금되면서 분기 말 현금이 일시적으로 줄어든 것이라는 부연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4월 초 입금분을 포함하면 실제 보유 현금은 600억원 이상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우려도 나온다. 재무건전성이 전반적으로 약화된 상황에서 영업환경 악화, 차입금 연장 실패, 유증 청약 부진 등이 겹칠 경우 계속기업 전제에 의문이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시각이다.
LB세미콘 관계자는 “차입금 연장의 경우 대부분 금융기관에서 연장이 이뤄지고 있으며, 영업흐름 현금으로 충분히 상환 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작년, 재작년과 비교해 영업환경이 훨씬 개선됐고 Non-DDI 설비투자가 진행될수록 영업 현금흐름은 개선되는 구조"라며 계속기업 우려를 일축했다. 아울러 유증 청약 부진 우려에 대해서는 “총액 인수 방식이기 때문에 실권주에 대한 회사 부담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추가 오버행 우려도 존재한다. LB세미콘의 최대주주는 지분 12.89%를 보유한 일본 라피스반도체다. 기존 보유 주식에 대한 보호예수 의무가 없어 언제든 시장 매각이 가능한 상황이다. 최대주주가 보유 지분을 시장에 내놓을 경우 주가 하방 압력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제3회 전환사채(CB) 최대 전환주식 338만주, 제4회 영구 CB 전환 시 1096만주의 잠재주식이 추가될 가능성도 있어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 우려도 남아 있다.
LB세미콘 측은 라피스반도체의 지분 매각 여부에 대해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 매각 여부를 회사가 알 수 있는 상황도, 알아서도 안 되는 부분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다만 매각이 이뤄질 경우 “그 목적을 파악해 주주들에게 알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라피스반도체를 제외한 LB 측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에 대해서는 “100% 청약에 참여했듯 지분을 계속 보유할 것이며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DDI는 구조적 둔화…Non-DDI는 AI 수혜
관건은 Non-DDI 전환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느냐다. 업황만 놓고 보면 방향은 맞다. AI 수요 확대를 등에 업은 Non-DDI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반면, 주력인 DDI 시장은 구조적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LB세미콘이 사업 전환에 사활을 거는 배경이다.
DDI 업황은 녹록지 않다. 중국 BOE·CSOT 등 주요 패널 업체들이 자국산 DDI 채택을 확대하며 공급망 내재화를 강화하고 있어서다. 국내 DDI 팹리스 업체들의 발주 감소 흐름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LG디스플레이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중심으로 실적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DDI 후공정 업황 개선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LB세미콘은 특정 고객사 의존도가 높은 구조인 만큼 고객사의 발주 축소나 내재화 움직임이 나타날 경우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반면 Non-DDI 시장 전망은 상대적으로 밝다. AI 서버 수요 급증으로 PMIC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AI 서버 한 대당 최대 3000개 수준의 PMIC가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모도르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PMIC 시장 규모는 2025년 412억달러(한화 약 62조원)에서 2031년 637억달러(96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7.33% 수준이다.
공급 측면에서도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TSMC와 삼성전자가 8인치 생산능력을 축소하면서 글로벌 8인치 파운드리 가동률은 90% 수준까지 올라온 상태다. 트렌드포스는 PMIC와 전력반도체가 주로 사용하는 8인치 공정 가동률이 2027년 상반기까지 80%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면서 OSAT 수요 역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결국 이번 유증의 성패는 두 가지에 달린것으로 보인다. 내년 말까지 Non-DDI 설비투자를 계획대로 마무리한 뒤 2028년 상반기 양산 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느냐, 그리고 그 시점까지 재무 부담을 견뎌낼 수 있느냐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기술력이 충분한지, 수율이 나오는지는 결과를 봐야 알 수 있는 문제"라며 “결국 이번 투자가 호재였는지 여부도 추후 양산 성과가 나온 뒤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