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초기부터 AI강국 내세웠지만 가시적 성과 안 나와
과기부·산업부 “가스발전 필수” vs 기후부 “탄소중립·재생에너지 우선”
산업계 현실상 가스 선택했지만 RE100·CF100 등 기후 규제로 이중 부담
CCUS로 가스발전 탄소 문제 해결…원전 확대와 재생에너지 조합이면 충분
“지금 필요한 것은 이념적 접근이 아니라 현실적 에너지 믹스와 전략”

현재 한국 에너지정책 딜레마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이 갈림길에 섰다. 정부는 'AI 3대 강국'을 선언하며 초대형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전력 공급 전략은 갈수록 불확실해지고 있다. 단기간 내에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발전원은 현재로선 천연가스(LNG)밖에 없는데, 정부는 탄소중립 목표도 지향하고 있어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 단계에서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솔루션은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우선 순위를 정해 목표를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초기부터 AI 3대 강국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웠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또 다른 국정과제에 발목이 잡힌 영향이 크다는 평가가 많다. AI 강국을 위해선 탄소 배출 증가가 불가피한데, 탄소중립 목표를 동시에 좇다 보니 정책에서부터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제12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전기본)과 제16차 장기천연가스(LNG) 수급계획이 동시에 표류하는 최근 상황은 이러한 충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전력 수급계획을 정하는 전기본이 정리되지 않으니 장기 가스계획이 못 수립되고, LNG 수요 전망 자체가 불확실해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내부 시각차도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부는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제조업 확대를 감안하면 중장기적으로도 LNG 역할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탄소중립 기조에 따라 LNG 축소와 재생에너지 확대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신규 LNG 발전 가동연한 제한과 수소 혼소·전소 옵션 축소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어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흐름에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산업계는 현실적 판단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신규 공장 전력 공급 방안으로 LNG 열병합발전을 적극 추진 및 검토하고 있다. SK그룹과 아마존이 100MW급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울산은 분산에너지특구 지정을 통해 300MW급 가스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는 대규모의 전력을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 단기간 내에 이를 공급할 수 있는 발전원은 현재로선 LNG밖에 없다.
원전은 건설 기간과 입지 규제 문제로 평균 건설기간이 16년 걸린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장치(ESS) 조합은 계통 제약과 간헐성 한계가 있다. 소형모듈원전(SMR)은 유력한 미래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상용화까지는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화석연료인 LNG 사용이 늘면 탄소중립 목표는 후퇴하고 만다. 또한 반도체와 배터리 기업들은 글로벌 RE100(재생에너지 100%)·CF100(무탄소 에너지 100%) 흐름 속에서 글로벌 바이어들의 탄소 규제 기준까지 고려해야 한다. 전력은 LNG로 공급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탄소 배출은 줄여야 하는 이중 압박 구조가 한국 산업계에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모순되면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순위 실행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당장 급한 것은 AI 3대 강국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앞다퉈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경쟁에서 뒤처질 순 없다. 여기에 단기간 내 공급할 수 있는 대규모 전력은 현재로선 LNG밖에 없다는 점에서 LNG발전 허용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나오는 탄소는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기술로 해결 가능하다. 다만 아직 CCUS의 경제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기술 고도화와 정부 지원책이 필요하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AI 3대 강국은 단기 목표이고, 탄소중립은 중장기 목표이다. 우선 단기 목표부터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CCUS 기술은 어느 정도 확보는 됐지만, 탄소 단가가 톤당 160달러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를 경제성 확보 수준까지 내리기 위해 기술 고도화 및 정부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탄소배출권 거래가격이 톤당 2만원으로, 160달러(약 24만원)와는 아직 큰 격차가 있다.
무탄소 전원인 원전+재생에너지+ESS 조합을 대폭 늘리면 LNG를 늘리지 않고도 AI 3대 강국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초기 천연가스발전의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중장기적으로 기존 원전과 신규 대형원전을 최대한 활용하고 SMR 상용화를 앞당기는 동시에 재생에너지와 ESS 조합으로 간다면 나중에는 AI 강국과 탄소중립이 동시 달성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위해선 이재명 정부가 원전 비중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지층인 환경단체들의 상당한 반발을 살 수가 있다.
AI 3대 강국 목표를 우선 달성해 국가 경쟁력을 강건히 하고, 이후 AI를 통해 에너지 절감 및 탄소중립 기술을 고도화하면 후반부에는 탄소중립까지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견하고 있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에너지원을 둘러싼 이념적 접근이 아니라, AI 강국과 탄소중립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에너지 믹스와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