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태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원장
“기본인증제·분야별 인증제 도입, 저변 넓히고 전문성 강화"
▲오태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원장
필자가 최근에 겪은 일이다. 지방대도시에 거주하는 노모께서 버스에서 하차도중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다. 걱정을 끼칠까봐 아들인 필자에게 연락하지 않고 인근에서 잘 본다고 소문이 난 병원을 방문하였다.
응급실에서 기본적인 검사 후 원무과 상담을 받았는데, 실비보험 가입여부를 먼저 확인하고는 대뜸 슬개골 골절이 의심된다며 전신마취 수술이 필요할 수 있고 전체적으로 비용이 약 삼백만원 정도 들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서야 큰일이다 싶어서 필자에게 연락, 어찌할 바를 물으셨다. 확인해보니 처음 방문한 병원은 '인증'을 받지않은 병원으로, 근처 인증을 받은 병원을 다시 방문, 진료를 받도록 안내해드렸다.
인증을 받은 2차 종합병원에서의 진단은 슬개골에 실금이 간 정도의 외상으로 수술과 입원까지도 필요치 않고 간단한 고정처치와 약물치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른 치료를 통해 현재 노모께서는 다시 무릎 건강을 회복하셨다.
급격한 고령화와 만성질환의 증가, 지역의료의 중요성 부각, 그리고 의료서비스의 고도화된 전문화는 의료기관에 이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합적인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파고 속에서 의료의 질과 환자안전을 담보하는 '의료기관 인증제도' 역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는 모든 의료기관에 동일한 잣대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기관의 규모와 기능, 그리고 전문성을 정밀하게 반영한 '수요자 중심의 유연한 인증 체계'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2010년 도입된 의료기관 인증제도는 그동안 환자안전의 파수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인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의료기관은 환자 확인부터 감염관리, 투약 안전에 이르기까지 환자안전을 위한 전방위적인 관리 체계를 구축했으며, 이는 단순한 지표 개선을 넘어 현장의 조직문화를 혁신하고 의료 서비스의 질적 도약을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숙제가 남아 있다. 인력과 재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병원들에게 수백 개의 엄격한 인증 기준은 여전히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환자안전의 가치에는 깊이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인증의 울타리 밖에서 망설이는 기관들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더 많은 의료기관을 안전의 범주 안으로 포용하기 위해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올해부터 '기본 인증제'를 본격 도입한다. 기본 인증제는 환자안전과 직결되는 핵심지표를 중심으로 구성된 새로운 모델로, 이는 단순히 기준을 완화한 것이 아니라 중소병원들이 단계적으로 의료 질 향상 체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성장의 사다리가 될 것이다.
기본 인증제가 인증의 저변을 넓히는 든든한 토대라면, '분야별 인증제'는 그 위에서 각 의료기관의 전문성을 깊게 다지는 제도다. 이러한 방향성 아래 전문 영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분야별 인증제 도입을 정교하게 기획 중이다. 질환별, 부서별 특성에 맞춘 맞춤형 인증 모델을 구축하여 의료기관이 자신의 전문 기능에 따라 필요한 분야를 선택적으로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일률적 규제로서의 인증이 아닌, 각 의료기관의 강점을 살리는 맞춤형 품질 관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인증제도는 의료기관을 줄 세우기 위한 평가도구가 아니다. 국민이 안심하고 병원을 찾을 수 있는 신뢰의 기반을 닦고, 의료기관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과정이다. 또한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국민의 신뢰로 이어지고 다시 국가 보건의료 체계의 경쟁력으로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의료 환경은 멈추지 않고 변한다. 인증제도 역시 현장의 목소리를 자양분 삼아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앞으로도 더 많은 병원을 건강하게 만들고, 국민의 삶을 안전하게 지키는 든든한 동반자로서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
*글=오태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원장(강북삼성병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