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쿠리 선거’ 전적 선관위, 또 도마위…국민 신뢰 훼손 우려
“투표율 높아져서” 선관위 궤변에 정치권 “황당하다” 난색
국힘, ‘참정권 침해’ 개표 중단-재선거 요구…법적 공방 시사
민주당, “선관위 관리 부실 유감…국힘 주장 일고의 가치 無”
▲4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 시간이 오후 10시까지 연장됐던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 '부정선거' 등 손팻말을 든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3 지방선거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바닥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태의 심각성이 커지면서 선거 공정성까지 도마에 오르자, 여야 간 공방전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4일 정치권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책임을 지적하며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질책하는 한편, 일각에서 제기되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시민 공분…부정선거 방지 시위대와 마찰도
▲장동혁 국민의힘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를 방문해 항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선관위가 3일 밤 9시 본투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고, “개표 종료 투표용지 부족 원인을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입장을 밝혔지만, 좀처럼 논란이 수습되지 않고 있다.
중앙선관위 설명대로라면, 본투표 당일 오후 6시 20분 기준 서울 소재 투표소 14곳(강남구 1곳, 송파구 12곳, 광진구 1곳)에서 투표용지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추가 사례 발생 여부에 대해선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에 대한 비판적 여론은 당초 '투표용지 부족'을 초래한 선관위의 미흡한 준비 체계에 초점이 맞춰졌다. 사고가 터진 직후 내놓은 '수요 예측 실패' 등 설득력 없는 해명에 비판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선관위 측에선 “직전 지선 대비 투표율이 높아져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했는데, 송파구의 경우 투표용지 물량이 전체 유권자의 50%만 인쇄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선거를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닌데 그러한 선관위의 주장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종근 정치평론가 역시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며 “유권자 수만큼 투표용지를 100% 확보했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일부 투표소에서 실시한 긴급 조치 과정 중 잡음마저 발생해 질타를 받는 분위기다. 대기표를 발부한 유권자에 한해 밤 10시까지 마감 시간을 늘려 투표권을 보장하도록 조치했으나, 대기표가 부족해 임시 용지까지 투입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잠실7동 제2투표소의 경우, “개표 중단", “부정 선거"를 외치며 투표함 반출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선거관리원 간 밤샘 대치까지 벌어지면서 현장 혼란이 가중됐다. 해당 투표소 투표함은 4일 오전 11시까지 여전히 이송이 지연됐다.
공직선거법 제115조 제1항에 의거, 투표소는 오전 6시에 개소해 오후 6시에 닫는다. 투표를 위해 마감 시각에 대기 중인 선거인에게는 번호표를 발급해 투표하게 한 뒤 닫게끔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평론가는 “고육지책이긴 하다"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대선 당시에도 마감 전까지 도착한 유권자들에 한해 그 이후로 투표할 수 있게끔 조치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근본적 문제점은 투표용지 부족"이라며 선관위의 준비 부족이 사태의 발단이 된 점을 꼬집었다.
정치권에서는 “선관위 관료들의 행태가 말도 안 된다"고 일갈하며 관련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정의당·진보당 등 범진보 정당에서는 3~4일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문을 각각 발표했다.
이 평론가는 “문제가 된 선거구의 판단 착오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선관위가 전적으로 잘못한 것은 맞다"고 전했다. 최 평론가는 “해당 선거구 관리자 차원을 넘어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교체해야 한다"며 고강도 쇄신을 촉구했다.
재선거 선긋는 선관위…국힘 “선거 무효 소송" vs 민주당 “선관위 책임 물어야"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 3일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 국민의힘의 서울 선거 개표 중단 요구 등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앙선관위는 대국민 사과에 나선 지 3시간 반 만인 4일 0시 긴급 회의를 열어 “공직선거법상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국민의힘에서 요구한 재선거·선거 연기 가능성을 일축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선관위 결정에 대해 선거 무효 소송과 헌법 소원을 착수하는 등 향후 법적 분쟁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날 새벽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과 면담을 나눈 뒤 기자들과 만나 “유권자의 참정권이 침해됐다면 당연히 선거 무효 사유"라며 선거 불복 의지를 드러냈다. 전날 송언석 원내대표도 “중대한 투표권·참정권 침해"라며 관련 공직선거법 조항을 거론하며 선거 연기를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입장문을 내고 “선관위 관리 부실에 유감"이라며 반드시 책임을 물겠다고 경고했다. 다만, 국민의힘의 개표 중단·재선거 요구 등에 대해선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선관위가 공직선거법을 근거로 원칙적 입장을 밝혔지만, 선거권 침해·선거 정당성 문제 등 선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다시 키운 만큼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사태가 확산되자 청와대도 언론 공지를 통해 “중앙선관위가 대응해야 할 문제"라며 선을 그었지만, 재차 입장문을 통해 “엄정 주시하겠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일부 극우층을 중심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되던 상황에서 선관위가 이번 사태를 통해 추가적인 빌미를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과거 선거철에도 선관위는 관리 소홀 문제로 국민적 신뢰를 잃은 전적이 있어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2022년 대통령선거 사전 투표 때 선관위는 소쿠리에 코로나19 격리자의 투표용지를 담아 투표함에 옮기는 안일함을 보여 전 국민적인 질타를 받았다. 이후 선관위는 자체 감사를 거쳐 책임자에 정직 징계 처분을 내리기도 했지만, 재차 관리 부실 문제가 불거져 여전히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국민적 관심이 큰 선거철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휴직자가 늘어난 점도 선관위의 내부 관리 역량에 의구심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 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는 17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새 두 번째로 많은 규모다. 지난해 중앙선관위가 시·도 선관위별로 '불필요한 휴직 자제' 공문까지 보냈으나, 실질적인 효과로 연결되지 않은 점에서 비판을 받는 지점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부정선거론의 연관성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 평론가는 “당연히 선거 이후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한동안 시끄러울 것"이라며 “하지만 부정선거 음모론까지 나가는 것은 다소 과한 추측"이라며 '과대 해석'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반면 최 평론가는 “투표소가 위치한 송파 지역의 경우 국민의힘이 우세하다가 12·3 내란 사태 이후 민주당에게 넘어가는 미묘한 지역이었다"면서 “이곳에서 그런 사태가 벌어지니 부정선거론자들 입장에선 기회를 잡은 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국 단위로 전수 조사를 해달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며 “심하게는 선거 무효 등 불복종 선거 운동까지 번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