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상품은 부국으로, 오염은 빈국으로”…국제 무역이 낳은 ‘건강 불평등’[환경포커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6.06.08 11:04

美 일리노이대 연구팀, 세계 대기오염 사망 분석
‘조기 사망’ 부담 국가간 재분배
생명가치 장소 무관하게 계산해야
오염방지기술 협력도 중요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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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도시의 대기오염. (사진=세계보건기구(WHO))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의류·가전제품·철강제품 등은 어디에서 만들어질까.


세계화 시대의 소비자는 국경을 초월해 상품을 구매하지만, 그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과 건강 피해는 결코 공평하게 나뉘지 않는다.


올들어 발표된 두 편의 국제 연구는 국제 무역이 단순히 부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오염과 조기 사망의 부담까지 국가 간에 재분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부유한 국가가 누리는 깨끗한 공기와 값싼 상품 뒤에는 저소득 국가 주민들의 건강 악화와 조기 사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무역이 초래한 '보이지 않는 사망'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어배너-섐페인 캠퍼스의 시위안 왕 연구원과 크리스토퍼 테섬 교수 연구팀은 지난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에서 국제 무역이 전 세계 대기오염 사망을 어떻게 재분배하는지 분석했다.


연구진은 약 200개국의 무역·배출·건강 자료를 통합 분석해 초미세먼지(PM2.5)로 인한 전 세계 조기 사망의 약 14~18%가 국가 간 소득 격차를 가로지르는 무역과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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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세먼지(PM2.5) 농도의 세계적 교역과 그로 인한 사망자 수. A–H는 사망자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A–D)와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E–H)의 소비 관련 PM2.5 농도와 생산 관련 PM2.5 농도의 차이를 나타낸다. 주황색은 소비로 인한 농도가 생산으로 인한 농도보다 높음을 나타내고, 파란색은 그 반대를 나타낸다. 괄호 안의 숫자는 사망자 순 수출량을 나타낸다. I는 인구 백만 명당 사망자 순 수출량을 나타낸다. 화살표는 주요 양자 간 오염 사망자 교역 상대국을 나타내며, 화살표의 방향과 굵기는 각각 순 수출 방향과 규모를 나타낸다. (자료=Nature Communications, 2026)

쉽게 말해 미국·유럽·한국·일본과 같은 고소득 국가가 소비하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오염을 감수하고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 피해 역시 생산국 주민들이 떠안고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이를 '사망 수출(export of mortalities)'이라고 표현했다. 소비는 부유한 국가에서 이루어지지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과 조기 사망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에서 발생하는 구조다. 과거 '오염 수출'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글로벌 공급망 구조 때문이다.


고소득 국가는 금융·정보기술·연구개발·서비스업 등 상대적으로 오염이 적은 산업에 집중하는 반면, 에너지 집약적 제조업과 원자재 생산은 저소득 국가에 의존한다. 값싼 노동력과 느슨한 환경 규제를 찾아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대기오염도 함께 이동한다.


결과적으로 소비국은 깨끗한 공기를 유지하면서도 값싼 상품을 얻고, 생산국은 경제성장의 대가로 오염과 건강 피해를 감수하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약 80%의 국가에서 소비로 인해 발생하는 대기오염 사망의 상당 부분이 국경 밖에서 일어난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국제 무역은 상품뿐 아니라 건강 위험까지 함께 거래하는 구조, 돈으로 떠넘기는 구조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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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오염 관련 사망자 순 수출량 대 인구(A) 및 GDP(국내총생산)(B). A에서 사각형 면적은 총 순 사망자 수출량에 비례하며, 그 순위에 따라 정렬했다. B에서 원형 영역은 총 인구에 비례한다. 한국은 사망자 수출에 기여하는 국가로 표시돼 있다. (자료=Nature Communications, 2026)


Indonesia Natural Resources

▲2022년 12월 20일 인도네시아 동칼리만탄 쿠타이 카르타네가라에서 석탄을 싣고 있는 바지선의 밧줄을 점검하는 작업자들. (AP 자료사진/연합뉴스)

◇석탄 공급망이 만든 또 다른 건강 불평등


이 같은 문제는 석탄 무역을 분석한 또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중국 난징대학교의 웬신 자오 교수와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크리스 닐슨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지난달 미국화학회 학술지 '환경 과학 기술 (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 에 '석탄 관련 CO₂ 배출 및 환경 보건 부담의 글로벌 무역 경로 추적'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1992년부터 2020년까지 국제 석탄 무역과 상품 무역을 추적해 석탄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과 건강 피해를 분석했다.


그 결과 국제 석탄 무역(ICT)은 연평균 약 7만4700명의 조기 사망과 관련이 있었고, 석탄을 사용해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의 국제 무역(IGST)은 연평균 약 16만6600명의 조기 사망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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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관련 CO2 배출량의 상위 10개 지역 간 흐름과 ICT(석탄국제무역) 및 IGST(석탄 사용 관련 상품 서비스 국제무역)로 인한 PM2.5 사망 위험. (a, b) 1992~2020년 동안 석탄 관련 ICT(a) 및 IGST(b)로 인한 지역별 누적 순 CO2 배출량. (c, d) 1992~2020년 동안 석탄 관련 ICT(c) 및 IGST(d)로 인한 지역별 연평균 PM2.5 관련 순 사망자 수. 모든 패널의 화살표는 상위 10개 지역 간 흐름을 나타내며, 화살표의 너비는 흐름의 규모를 나타낸다. (c)와 (d)의 범위는 95% 신뢰구간을 나타낸다. (자료=Environmental Science and Technology, 2026)

특히 연구는 석탄을 수출하는 국가와 이를 이용해 생산한 상품을 소비하는 국가 사이의 책임 분리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호주와 인도네시아는 대표적인 석탄 수출국이고, 미국과 서유럽은 석탄을 이용해 생산된 제품을 대량 소비하는 지역이다. 반면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과 건강 피해를 직접 감내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연구에서 한국 역시 자유롭지 않다.


석탄 무역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독일 등과 함께 국제 석탄 무역에 의해 발생한 이산화탄소 배출과 건강 부담이 큰 국가로 분류됐다. 특히 한국은 석탄 수입과 소비 규모가 큰 국가이고,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생산된 제품을 대량 소비하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또한 한국 기업들이 사용하는 원자재와 중간재 상당수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석탄 기반 전력에 의존해 생산된다. 따라서 한국이 소비하는 상품의 환경 비용 일부는 생산국 주민들의 건강 피해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동남아시아는 특히 취약하다. 연구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지역은 국제 석탄 무역과 관련된 건강 부담이 가장 크게 집중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로 나타났다. 인구가 많고 환경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불평등이 계속될까. 문제의 핵심은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통계적 생명가치(VSL·Value of Statistical Life)'에 있다.


현재 많은 경제 분석은 국가 소득 수준에 따라 사람의 생명 가치를 다르게 평가한다. 소득이 높은 나라 국민의 생명은 더 높은 가치로 계산되고, 저소득 국가 국민의 생명은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오염 산업을 저소득 국가로 이전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다. 환경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비용 계산상 손실이 작게 잡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런 방식이 결과적으로 오염 산업의 해외 이전을 부추기고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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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중국 동부 장쑤성 롄윈강 항구의 석탄 터미널에서 선박에서 하역된 수입 석탄 더미가 보인다. (사진=AFP/연합뉴스)

◇새로운 대안, '오염에 대한 공정무역'


이번 연구들은 국제 무역이 단순히 상품과 자본의 이동이 아니라 건강과 생명의 이동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늘날 부유한 국가의 깨끗한 하늘과 값싼 소비재 뒤에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폐와 심장이 놓여 있을 수 있다.


20세기 세계화의 핵심 질문은 '누가 더 많은 이익을 얻는가'였다면 21세기에는 '누가 그 대가를 치르는가'라는 질문이 추가됐다. 연구진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오염에 대한 공정무역(Fair Trade in Pollution)'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했다.


핵심은 생산국 주민의 생명 가치를 소비국 주민과 동등하게 평가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기업이 저소득 국가에 공장을 건설할 경우, 오염 피해 비용을 현지 주민의 낮은 소득 수준이 아니라 미국인의 생명 가치 기준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방식이 투자자와 기업이 오염 산업을 저소득 국가로 이전하려는 유인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석탄 무역 연구는 또 다른 해결책도 제시했다. 연구진은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오염방지 기술과 제조 기술이 미국과 서유럽 수준으로 향상될 경우 무역과 연계된 건강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위해서는 고소득 국가들의 기술 이전과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제 탄소세, 공급망 환경정보 공개, 친환경 무역협정, 기업의 공급망 책임 강화 같은 정책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결국 지속가능한 무역이란 단순히 관세를 낮추고 거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무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과 건강 비용을 공정하게 나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 무역의 진정한 성공은 GDP(국내총생산) 증가가 아니라, 누구의 건강도 희생시키지 않는 번영을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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