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성 태평양 수출입규제대응센터장(전문 위원). 사진=법무법인 태평양 제공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소재 법무법인 태평양의 본사 25층 세미나실에서는 태평양 수출입규제대응센터 주최로 '항공·우주·방산 분야 수출 통제 이슈와 기업의 대응 전략'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행사 직후 무역안보관리원·삼성종합기술원을 거쳐 세미나를 총괄한 황호성 태평양 수출입규제대응센터장(전문 위원), 방위사업청 방산수출심의위원을 역임한 최다미 변호사, 김지이나 변호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장 최전선에서 뛰는 이들은 K-방산 생태계의 실상과 글로벌 스탠다드와의 간극에 대해 뼈있는 진단을 내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답변자는 각자 성에 따라 황, 김, 최로 구분)
― 자문 현장에서 수출 통제 리스크를 간과해 다 된 계약이 엎어지거나 글로벌 페널티를 맞을 뻔한 아찔한 위기 사례가 자주 발생하나? 방산업계가 간과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김) 사전 단계에서 철저히 체크해야 하는데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하는 통제 대상 품목임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덜컥 수출 계약부터 체결하는 경우가 가장 뼈아픈 문제다. 나중에 이를 뒤늦게 인지하게 되면 허가가 안 나와 상대국에 제품을 넘기지도 못하고, 막대한 글로벌 위약금 때문에 마음대로 해지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로펌을 찾아오는 경우가 꽤 있다.
▲(최) 방위사업청의 '예비 수출 승인' 제도를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방사청으로부터 예비 승인을 받고 나면 '본허가'가 무조건 나올 것이라 굳게 믿고 깊은 검토 없이 계약부터 무리하게 추진하는 기업들이 있다. 하지만 그사이 세계 정세가 급변하거나 해당 기술이 국익상 민감하다고 재판단돼 본허가가 전격 반려되는 사태가 발생해 기업들이 당혹스러워하곤 한다.
▲(황) 실무적으로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곤혹스러워하는 진짜 뇌관은 미국의 '수출 통제(EAR/ITAR)'다. 미국의 규제 산식 자체가 극도로 복잡할뿐더러, 한국 제도가 아닌 타국의 법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개입해 도와주거나 가이드해 줄 채널 자체가 원천적으로 없다. 수출하는 한국 기업이 오롯이 스스로 돌파하고 입증해야 하는 외로운 싸움이다.
― 체계 종합 업체(대기업)와 달리, 방산 생태계를 이루는 중소 협력사들은 수출통제 개념조차 희박하다. 하위 업체의 부품 하나가 발목을 잡는 '공급망 연쇄 리스크' 실태와 취약성은?
▲(황) 정확한 지적이다. 체계 업체들은 본인들이 다루는 무기 체계가 '주요 방산 물자'로 명확히 지정돼 있어 자연스럽게 제도권의 큰 틀 안에서 관리가 된다. 반면 공급망 하위에 있는 협력사들로 내려가면 본인들이 납품하는 부품이나 가공 장비가 통제 목록에 해당하는지조차 아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실제로 꽤 많다. 사전에 리스크를 꼼꼼히 챙기기보다는 일단 무언가 대형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수습하려는 한국 특유의 기업 문화도 우리 방산 공급망 생태계가 가진 근본적인 취약점 중 하나다.
― 글로벌 규제가 갈수록 깐깐해지는 가운데 역외 적용과 관련해 한국 기업들이 가장 예의주시해야 할 미국의 제재 타깃 변화 기조는?
▲(황) 최근 글로벌 수출 통제 제도가 가장 빠르고 촘촘하게 바뀌고 있는 핵심 타깃은 전통적인 재래식 무기 방산 자체가 아니라 바로 '반도체와 인공 지능(AI)' 분야다. 첨단 반도체 부품과 통신 센서가 항공우주와 방산 무기체계에 필수적으로 접목되다 보니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의 제재망 강화와 까다로운 규제 잣대가 방산 업계에까지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타격을 주고 있다.
― 상업용으로 수출한 이중용도 품목이 제3국을 거쳐 우크라이나 등 분쟁 지역에서 군사용으로 발견되는 이른바 '우회 전용' 리스크가 크다. 기업이 어디까지 실사를 해야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있나?
▲(황) 수출기업이 탐정도 아니고서야 현지에 직접 날아가 구매자가 진짜 상업용으로만 쓰는지 일일이 심문한 뒤에 수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국과 실무에서 요구하는 현실적 기준은 '기업이 할 수 있는 합리적 수준의 충분한 확인(Due Diligence) 절차를 거쳤느냐'다. 최종 사용자 증명서(EUC)를 철저히 챙기고, 의심스러운 징후가 없는지 점검하는 등 기업이 할 도리를 다했다는 '문서화된 증빙'을 명확히 남겨야 한다. 이 전제 조건만 충족됐다면 이후 수입자의 무단 전용이나 고의적 기망으로 우려 국가로 넘어갔더라도 원 수출 기업은 면책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실사의 충실성과 꼼꼼한 문서화가 수출 기업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다.
― 평소 수많은 기업을 만날 텐데, 사내 컴플라이언스를 구축할 때 행정 지연이나 가이드라인 부재 등 '정부나 제도가 좀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하는 가장 큰 현실적 장벽이나 불만은 무엇인가?
▲(황) 의외일 수 있지만 방산·항공우주 기업들은 우리 정부의 수출 통제 제도 자체를 원망하거나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이 첨단 물자와 기술이 테러 단체나 우려 국가로 흘러갔을 때의 안보적 파장과 통제의 당위성을 기업들 스스로 너무나 잘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진짜 고민은 불만이 아니라, '이렇게 복잡하고 엄격한 글로벌 규제 틀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위법 리스크를 피하고 합법적이고 효율적으로 수출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그 구체적인 실무 해법을 찾는 데 온전히 집중돼 있다.
― 강력한 통제 권한을 가진 미국 등 선진국 기업과 비교할 때, 한국 방산 기업들의 전반적인 내부 통제 시스템 수준을 1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면? 시급히 보완해야 할 내부 인프라는?
▲(황) 기업마다 처한 환경과 자원 규모가 워낙 달라 일률적으로 특정 점수를 매기긴 조심스럽다. 다만 컴플라이언스의 필요성에 대한 경영진과 실무진의 '인지도와 실행 의지' 측면에서만 본다면 미국을 10점으로 뒀을 때 한국은 7~8점 수준까지는 충분히 올라왔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실행의 영역은 다르다. 가장 시급히 보완해야 할 점은 거듭 강조하지만 '사전 예방 중심의 문화' 정착이다. 사건이 터진 뒤에 법무팀이 수습을 하는 사후약방문식 관행을 버려야 한다. 제품 R&D 기획과 계약 논의의 가장 초기 단계부터 전사적 차원에서 수출 통제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매핑하고 방어하는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글로벌 스탠다드에 완벽히 부합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