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술 고도화로 기체결함 아닌 ‘조종사 인적오류’ 사고율 80%
“과거 사고 사례 기반 훈련 의존, 예측불가 사고 대응 한계” 지적
ICAO·美·유럽, 조종사훈련 실효성 제고 ‘역량기반훈련평가’ 권고
동체착륙·조류충돌·이착륙 엔진고장 등 극한상황 ‘필수훈련’ 명시
국토부 “조종사 위기대응력 고도화…연내 훈련평가·심사안 제시”
▲이스타항공이 보유한 보잉 737-8 기종 모의 비행 훈련 장치(FTD). 사진=박규빈 기자
여객 항공기 성능의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전체 항공사고의 대부분이 조종사의 상황 인식 오류 등 '인적 요인'에서 발생하자 정부가 국적항공사 조종사들의 훈련·심사 체계를 전면 개편한다.
사전 각본에 맞춘 과거의 요건 위주 훈련에서 벗어나 조종사의 실제 위기대응 능력을 극대화하는 '역량 기반 훈련' 체계가 국내 항공 규정에 본격 도입된다.
아울러 이착륙 과정에서 버드 스트라이킹(Bird Striking: 비행기 동체와 조류(새)의 충돌 현상)이나 랜딩기어 고장에 따른 동체착륙 등 예측불가능한 비상 상황에 대비한 훈련도 조종사 필수 이수과목으로 법제화된다.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적 항공사 조종사 훈련·심사 체계 개선 방안 연구' 용역을 이달 발주하고 본격적인 제도 개편에 들어간 것으로 10일 본지 취재 결과 확인됐다.
국토부가 조종사 훈련 체계에 대수술의 칼을 빼든 배경에는 급변하는 항공운항 환경이 있다. 첨단기술의 발달로 항공기 시스템이 고도화되면서 기체 결함보다는 복잡한 시스템 상황 속에서 조종사의 의사결정 미비나 인적 오류(Human Error)에 의한 사고가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고 사례를 바탕으로 짜인 고정 시나리오 중심의 훈련(Task Based Training)만으로는 현대 운항 환경에서 발생하는 예측불가능한 돌발사고를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를 비롯해 미국 연방항공청(FAA), 유럽항공안전청(EASA) 등 주요 항공 선진국들은 조종사 훈련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역량기반훈련평가(CBTA, Competency-Based Training and Assessment)' 도입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CBTA는 조종사 개인별 취약점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비상대응 능력 위주로 맞춤형 훈련을 진행하는 선진교육 방식이다.
▲정상 운항 중인 모습(좌)과 기체가 왼쪽으로 쏠린 상황. 사진=박규빈 기자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극한의 비정상 상황에 대한 훈련 의무화다. 현재 국토부 고시로 운영 중인 '고정익 항공기를 위한 운항기술 기준'에는 조종사들의 기량 심사와 비행 훈련 기준이 엄격히 규정돼 있으나 일부 치명적인 비정상 상황에 대한 명시적 훈련 과목은 누락돼 있다.
이에 국토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랜딩기어 고장에 따른 동체착륙 △조류 충돌 △이륙 시 모든 엔진 고장 △착륙 시 모든 엔진 고장 등 4대 비정상 상황을 '운항기술기준' 내 필수 훈련과목으로 명시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갓 자격을 취득한 훈련 경험 부족의 '초기 부기장'의 운항 경험 훈련(OE, Operating Experience)과 관련해서도 유자격 부기장 동승 탑승 등 세부 근거를 주요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강화한 개선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국토부의 이번 조종사 훈련체계 개편은 올해 3월 단행된 항공 안전망 강화 조치의 연장선에 있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3월 25일 '고정익 항공기를 위한 운항기술기준'을 개정해 비행기록장치(블랙박스) 시스템 장착 기준을 상향하고, 저시정 운항·비행장 운영 최저치 설정에 관한 기준을 최신 ICAO 기준에 맞춰 구체화하는 등 하드웨어와 시스템 중심의 안전 규정을 대폭 정비한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22년 선제적으로 도입한 비정상 자세 예방·회복 훈련(UPRT, Upset Prevention And Recovery Training)과 증거 기반 훈련(EBT, Evidence-Based Therapy)에 이어 이번 CBTA 체계의 전면 도입을 통해 이를 직접 운용하는 조종사의 역량까지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 국토부는 8000만원을 투입해 향후 5개월간 연구를 진행하며, 연말까지 ICAO 기준(DOC9868/9995)에 부합하는 CBTA 국내 승인·운영 절차와 정부 운항자격심사관 심사표를 새롭게 마련해 운항기술기준 개정안을 제시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기 성능의 비약적 발전과 더불어 조종사의 훈련 시스템도 '절차 암기'에서 '실전 위기 대처 능력' 위주로 진화해야 한다"며 “이번 연구 용역을 거쳐 새로운 운항기술기준 개정안이 확정·시행되면 국적 항공사들의 안전 경쟁력이 한층 높아져 국민들이 더욱 안심하고 항공기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