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다시 닫겠다는 이란
종전 MOU 발효 초반부터 균열
美·이란 대표단 스위스 집결하지만
“트럼프, 스스로 美 약점 노출” 지적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로이터/연합)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를 선언하면서 미국과 이란 간 종전 양해각서(MOU)가 체결 직후부터 흔들리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MOU 체결 배경으로 '세계 경제 붕괴'를 언급한 점이 오히려 미국의 핵심 약점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향후 협상 과정에서 이란이 미국의 경제적 부담을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지난 17일 종전 MOU에 각각 서명하며 양국 간 합의를 공식 발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 직후 기자회견에서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은 경제적 재앙"이라며 “이 상황이 계속됐다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14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번 MOU는 지난 4월 체결된 휴전을 추가로 60일 연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휴전 적용 범위에는 레바논도 포함됐으며, 양측은 이 기간 동안 핵 문제와 제재 해제 등을 포함한 최종 종전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합의문에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료 없는 전면 개방, 미국의 해상 봉쇄 해제, 대이란 제재 및 동결자산 일부 해제, 재건을 위한 3000억달러 규모 투자기금 조성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20일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레바논 남부 도시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사진=로이터/연합)
◇ 레바논 변수에 흔들리는 종전 MOU
그러나 MOU 발효 직후부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 19일 스위스에서 첫 실무 협상을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충돌이 이어지면서 일정이 연기됐다.
여기에 이란은 레바논 상황과 관련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MOU 내용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를 선언했다.
그럼에도 양국은 후속 협상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다. 스티브 윗코프 중동특사와 재러드 쿠슈너 전 백악관 선임고문 등 미국 대표단은 이미 스위스에 도착했고 JD 밴스 부통령도 이날 스위스로 향했다.
밴스 부통령은 출국 전 기자들과 만나 “이틀 정도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핵 문제와 레바논 휴전 문제에서 진전을 이루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이 이끄는 이란 대표단도 이날 스위스에 도착했다고 스위스 외무부가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 선언과 레바논 충돌에도 불구하고 양측이 모두 협상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장 합의가 파기되거나 군사적 충돌이 재개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서명된 종전 MOU를 들고 있는 미국과 이란 대통령(사진=AFP/연합)
◇ “MOU는 이란에 유리"…美 압박카드 약해졌나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적 재앙' 발언이 후속 협상에서 미국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속 협상이 불발될 경우 군사작전을 재개할 가능성을 언급한 상태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협상을 마무리할 시간이 있다"며 “그렇지 않다면 이란이 좋아하지 않을 일들을 할 것이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매우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미국이 추가 군사작전에 나설 경우 시장에 다시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이란도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강경책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부담도 안고 있다. 미 메릴랜드대학교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56%는 이번 전쟁이 미국 국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이러한 정치·경제적 부담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어서 상대적으로 이란에 유리한 조건의 MOU를 받아들이게 만든 배경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크리스 케네디 경제안보 담당 책임자는 “14개 조항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이번 합의는 핵 문제 협상 과정에서 이란을 매우 유리한 위치에 올려놓았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가 MOU 조항을 분석한 결과 14개 조항 가운데 10개는 이란에 유리한 것으로 평가됐고, 미국에 유리한 조항은 단 1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3개는 중립적인 조항으로 분류됐다.
특히 이란의 가장 큰 양보는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수준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이는 2015년 핵합의(JCPOA) 당시 이미 약속했던 내용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MOU 체결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이라는 성과를 얻었지만 이 해협은 이란전쟁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개방돼 있었다.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미아드 말레키 선임연구원은 MOU 제3조에 포함된 '연장 가능' 조항을 언급하며 “협상이 장기화될수록 상대적으로 이란에 유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여전히 군사적 압박 수단을 보유하고 있지만, 가장 필요한 시점에 경제적 지렛대를 스스로 약화시켰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번 MOU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상당한 만큼 이란 역시 협상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다니엘 샤피로 선임연구원은 “이란이 해협 폐쇄를 발표했지만, 그것이 단순한 수사적 발언을 넘어선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며 “이란은 협상단을 스위스로 보내고 있다. 이는 그들이 이번 MOU를 통해 약속받은 혜택을 잃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