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이후 처음으로 162엔대
국제유가 하락에도 미·일 금리차 영향 커
전문가들 “164~165엔도 가능”
원·달러 환율도 상방 압력 전망
▲엔/달러 환율(사진=로이터/연합)
미국 달러화 대비 일본 엔화 환율이 40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으면서 엔저(円低)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과 일본 정부의 대규모 시장 개입에도 엔화 약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자 엔/달러 환율이 내년까지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 원화가 엔화와 동조화 흐름을 보이고 있는 만큼 원/달러 환율에도 상방 압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30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이날 새벽 4시께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61.98엔까지 오르며 1986년 12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엔/달러 환율은 이날 오전 9시 55분에는 달러당 162.39엔까지 치솟으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1986년 당시 엔화 환율은 미국이 주도한 플라자합의 이후 하락세(엔화 강셰)로 접어들던 시기였지만 현재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엔화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면서 엔/달러 환율이 40년 만의 고점을 다시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엔/달러 환율은 올 2분기에만 약 2% 오르며 4개 분기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환율이 4분기 이상 연속 상승한 것은 2022년 3분기까지 7개 분기 연속 오름세를 보인 이후 처음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 엔화 매수·금리 인상도 못 막는 엔저
일본은행이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선 이후에도 엔화 약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목을 받는다. 일본은행은 2024년 3월 17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했다. 이어 지난 16일에는 기준금리를 1%로 올렸다. 이는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일본 정부도 사상 최대 규모의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지만 엔화 가치를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60엔을 넘어서자 일본 당국은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27일까지 한 달 동안 11조7300억엔(약 111조 9600억원)을 투입해 엔화를 매수했다.
이때 엔/달러 환율은 155엔대로 급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이 부각되자 엔화는 다시 약세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선물시장은 올해 말 미국 기준금리가 현 수준에서 동결될 가능성을 19.8%로 반영하고 있다. 시장이 연내 최소 한 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로 국제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하락했지만 엔/달러 환율 상승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미·일 금리차와 같은 구조적인 요인이 엔화 가치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설명했다.
특히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간 금리차 확대는 투자자들의 '엔캐리 트레이드'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최신 주간 자료에 따르면 투기 세력의 엔화 순매도 포지션은 113억달러(약 17조 4900억원) 규모로, 최근 2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에 근접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차입하거나 매도해 금리가 높은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으로, 엔화 약세가 지속될 때 투자 매력도가 커진다.
▲1986년~2026년 엔/달러 환율 추이(사진=트레이딩뷰)
◇일본 정부도 추가 금리 인상 견제
여기에 일본 정부가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은 오는 7월 발표 예정인 '경제·재정운영 및 개혁의 기본방침'에 통화정책과 관련해 '적절한' 통화 운영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일본은행이 추가 금리 인상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도록 압박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또 일본의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장기적인 성장 전망을 약화시키고 있는 데다, 급증한 국가부채 역시 일본은행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일본 당국이 추가 개입에 나설지 여부다.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은 지난 19일 “외환시장에서 과도한 투기적 움직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조처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다만 당국의 개입만으로 엔저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톤엑스의 매트 심슨 선임 애널리스트는 “일본 재무성은 필요하다면 시장에 개입할 수는 있겠지만 연준의 매파적인 기조에 역행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에 개입을 쉽게 단행할 수 없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호주 커먼웰스 은행의 캐롤 콩 외환 전략가는 “어떤 형태의 개입이 이뤄지더라도 엔/달러 환율의 큰 상승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2027년 초까지 164엔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블룸버그의 마크 크랜필드 전략가는 “엔/달러 환율이 상징적인 기준선이었던 1986년 수준을 넘어선 만큼, 당시 가격 흐름을 감안하면 다음 목표 구간은 달러당 164~165엔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환율이 빠르게 오를 경우 투자자들은 당국의 개입을 예상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지난 1년간 엔/달러 환율과 원/달러 환율 상승률(사진=트레이딩뷰)
엔/달러 환율 상승 전망은 원/달러 환율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원화가 엔화와 동조화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엔화 약세가 심화할 경우 원화도 함께 약세 압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도 지난해 6월 말 달러당 1350원 수준에서 현재 1540원대로 올라서 4개 분기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올 2분기에만 2% 넘게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