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초과이윤 논쟁, 전문가에게 듣다]
▲경제학자 6인 '반도체 초과이윤 사회적 재분배'에 대한 평가. 그래픽=김하나 기자
성과급은 한국 기업의 새로운 경영 화두로 떠올랐다.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이익을 낸 가운데, 고용노동부는 14일 서울 용산 피스앤파크에서 'AI기술혁신에 발맞춘 새로운 사회혁신의 길' 토론회를 열고 대기업 초과이윤을 누가,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본격 공론화한다. 반도체 초과이익 공유, N% 성과급 산정 기준, 원하청 임금 격차, AI 전환기 기업 혁신 투자까지 아우르는 첫 논의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토론회를 앞두고 국내 경제학자 6인에게 초과이윤 재분배를 둘러싼 쟁점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초과이윤에 외부에서 '빨대를 꽂아서 공유하자'고 하는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발상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대기업 초과이윤 재분배 논의에 대해 이 같이 잘라 말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역대급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초과이익을 사회와 나눠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경제학계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본지는 박주헌 동덕여대, 조동근 명지대, 김광두 서강대, 김상봉 한성대, 김정식 연세대,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부) 교수 등 6명에게 ▲특정 업종 초과이익의 사회적 재분배 방안 찬성 여부 ▲정부의 재분배 압박이 기업 투자 의지를 위축시킬지 여부 ▲과거 이익공유제·횡재세와 달리 이번엔 현실화 가능성이 있는지 ▲초과이익 재분배가 청년 일자리·상생에 기여할 지 ▲이번 사안을 공론화 절차로 확대할 만한 지를 물었다.
“초과이윤 아닌 초과세수를 봐야"
▲경제학자 6명을 대상으로 '반도체 초과이윤 사회적 재분배'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6명 모두 재분배에 반대했다. 전문가들은 초과이윤보다 법인세 증가로 발생한 '초과세수'를 활용해 국가가 인프라·청년지원 등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래픽=김하나 기자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초과이윤'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김정식 교수는 “적정이윤의 바운더리가 어디까지인지 그 기준을 정하는 것 자체가 매우 주관적"이라고 했고, 강인수 교수도 “경제학적으로 명확하게 합의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주헌 교수는 “반도체처럼 업황 변동이 큰 산업에서는 초과이익과 정상이익을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2~3년 전 삼성전자가 적자를 내며 법인세를 '0원' 냈을 때 사회가 그 손실을 보전해 주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대신 주목한 것은 '초과세수'였다. 강인수 교수는 “정부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상보다 대규모로 걷힌 법인세, 즉 초과세수의 처분 문제이지 기업의 이윤 자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정식 교수는 국가재정법상 세계잉여금의 법정 배분 비율(지방교부금 20%, 지방교육교부금 20%, 공적자금상환기금 30%, 국채 상환 30%)을 거론하며 “이 틀 안에서 추가경정예산 편성 여부를 다루면 될 정책적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김광두 교수 역시 “초과세수랑 초과이윤은 다르다"며 “자기자본 대비 이윤율이 일정 수준을 넘을 때 법인세를 누적적으로 더 걷는 제도적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투자 여력 위축은 공통 우려"
▲5월 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안에 서명한 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개념을 바라보는 결은 조금씩 달랐지만, 정부의 재분배 압박이 기업 투자 의지를 꺾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김광두 교수는 “미국의 마이크론, 대만의 TSMC는 정부의 파격적 지원을 받는데 한국만 이익을 환수해 투자 여력을 깎으면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동근 교수는 “삼성은 HBM을 제외하면 레거시 반도체 비중이 크고, 중국이 빠르게 추격하는 상황에서 이익을 빼앗기면 투자 여력이 소진돼 생존이 어려워진다"고 했다.
성과급을 둘러싼 노사 갈등도 도마에 올랐다. 강인수 교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노사가 영업이익을 기반으로 10% 안팎의 높은 성과급에 합의했는데, 이것이 비반도체 업종으로 파급돼 연쇄 파업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400만 명에 달하는 삼성전자 소액주주는 이 합의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정식 교수도 “노동계는 이익을 더 나눠주라 하고 경영계는 반대하면서 노사 간 극심한 갈등이 유발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익공유제·횡재세 재판" 회의론
▲삼성전자·SK하이닉스. 사진=연합뉴스
과거 2021년 이익공유제, 2023년 횡재세 논의와 달리 이번엔 현실화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전문가들은 일제히 부정적이었다. 박주헌 교수는 “두 논의 모두 같은 맥락의 잘못된 접근"이라며 “'횡재'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조차 모호하다"고 했다. 김광두 교수는 “반도체는 혹독한 적자 기간을 견뎌야 하는 사이클 산업으로, 아무 노력 없이 자산 가치가 오른 것과는 다르다"며 횡재라는 용어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상봉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기업 이익에 초과이윤세를 매기는 것은 부가가치세·법인세에 이은 '삼중과세'로 명백한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거론되는 대형 AI 기업 지분 강제 이전 논의도 비판 대상이 됐다. 김광두 교수는 “현금을 걷는 세금이 아니라 지분을 강제로 이전시키는 방식은 사실상 국유화에 가깝다"고 했고, 김상봉 교수는 “정부가 아니라 집권자 개인에게 기업 권력을 쥐여주는 꼴"이라며 권력 사유화 우려를 제기했다.
“청년 일자리는 국가 재정으로"
▲삼성전자의 가전·TV·스마트폰 등을 담당하는 DX(디바이스경험) 부문 직원들이 18일 경기 수원 본사에 검은 옷 또는 검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출근하는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삼성전자 동행노조에 따르면, 노사 간 성과급 합의 후에도 다른 부문과의 성과급 격차에 대해 DX 부문을 중심으로 불만이 이어지면서 10일부터 서울 강동을 시작으로 전국 사업장에서 캠페인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초과이익 재분배가 청년 일자리와 원하청 상생에 실질적으로 기여할지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이 우세했다. 조동근 교수는 “반도체는 부가가치에 비해 직접 고용 유발 인원이 적어 관련 분야 사람만 돈을 버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전문가들은 재원의 방향을 '초과세수'로 돌릴 것을 주문했다. 강인수 교수는 “정부가 초과세수로 반도체 산업에 필수적인 전력·용수 인프라와 3대 메가프로젝트를 구축해 주는 것이 실질적 기여"라고 했고, 박주헌 교수는 “정부는 초과세수를 활용해 철강, 석유화학 등 어려움을 겪는 다른 기간산업을 지원하고 청년 고용정책을 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론화 대상 자체가 아니다"
전문가 6인은 이번 사안을 국민 여론조사나 공론화 절차로 확대하는 것에도 모두 선을 그었다. 김광두 교수는 “돈을 잘 버는 민간 기업을 사실상 국유화하겠다는 발상은 헌법을 바꿔야 할 정도의 중대 사안"이라고 했고, 조동근 교수는 “지금 필요한 것은 두 기업의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량기업을 하나 더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정부의 문제의식 자체에는 공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강인수 교수는 “고용노동부 장관 주도로 토론회를 열어 논의를 조망해보는 자리 자체는 만들 수 있다"면서도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초과이윤을 어떻게 강제로 써야 한다'는 틀을 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