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주택 수→가액’ 전환·실거주 공제 강화 쟁점
보유세 인상론에 “매물 잠김·월세 전가 우려” 신중론도
양도세 중과 완화 놓고 전문가 대립…정부 “결론 열어두고 경청”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부동산 세제 국민 의견 경청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을 주택 수에서 보유 주택 가액 중심으로 전환하고, 장기 보유보다는 실제 거주 여부에 따라 세제 혜택을 차등하는 방안을 본격적인 공론의 장에 올렸다. 고가·비거주 주택에 대한 보유세 부담은 높이되 실거주 1주택자는 보호하겠다는 방향이 제시된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급격한 세 부담 증가가 거래 위축과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재정경제부는 16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학계·연구기관·금융업계·시민단체 관계자, 국민 패널 등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동산 세제 국민 의견 경청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주택 공급과 주택 금융에 이어 사흘째 열린 분야별 경청 토론회다. 정부는 다음 주 공급·금융·세제를 아우르는 부동산 대토론회를 열고 정책 방향을 종합할 예정이다.
구 부총리는 모두발언에서 주택을 '사는 곳'과 '사는 것'으로 구분하며 실거주 주택에 대한 지원은 강화하되, 거주 목적이 아닌 다주택 보유를 정부 정책으로 지원하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거주하는 주택은 정부가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주택이 없는 분들이 집을 마련하는 데 장애가 없도록 공급과 금융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살지 않으면서 여러 주택을 보유한 경우까지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종부세와 양도소득세 개편의 주요 쟁점으로 △주택 수와 주택 가액 중 과세 기준 선택 △실거주·비거주 주택 차등 과세 △초고가 주택 기준과 세 부담 △고령·장기 보유 공제 조정 △보유세와 거래세 간 균형 등을 제시했다.
특히 종부세를 보유 주택 수가 아닌 합산 가액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방안이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현행 제도에서는 같은 금액의 부동산을 보유했더라도 고가주택 한 채를 가진 경우보다 중저가주택 여러 채를 가진 사람이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어 '똘똘한 한 채' 선호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부동산 세제 국민 의견 경청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발제를 맡은 강성훈 한양대 교수는 “과세표준이 같은 30억원 상당의 주택을 보유하더라도 30억원짜리 한 채를 가진 경우와 10억원짜리 세 채를 가진 경우에 적용 세율이 달라진다"며 “과세 형평성 측면에서 주택 수 기준이 타당한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종부세 개편의 핵심을 △보유세 부담의 적정 수준 △주택 수에서 가액 기준으로의 전환 △초고가 1주택 과세 △시장 충격과 조세 저항 최소화로 정리했다. 양도세에 대해서도 실거주 보호와 과세 형평성, 거래 정상화가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가액 중심 과세와 실거주 요건 강화에 비교적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오종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실거주 주택의 세 부담은 유지하거나 낮추고 비거주 주택은 높이는 방향을 고려할 수 있다"며 “주택 수보다 주택 가액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것이 형평성에 더 부합한다"고 말했다. 초고가 주택 역시 별도의 기준을 만들기보다 가액 기준 누진세율 안에 포함하고, 실거주 공제에 상한을 두는 방식으로 다룰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도 종부세를 주택 수가 아닌 공시가격 합계액에 따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가격의 부동산을 보유하더라도 주택 수에 따라 세액이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구조가 지방 중저가주택보다 수도권 고가주택 한 채에 수요를 집중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함 랩장은 장기 보유 공제를 실거주 공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보유세를 급격히 높일 경우 매물 잠김과 거래 감소, 전월세 매물 부족, 세 부담의 임대료 전가가 나타날 수 있다며 공정시장가액비율 등을 활용한 제한적·단계적 인상을 제안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부동산 세제 국민 의견 경청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유세를 보다 적극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은 “부동산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데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 보유세"라며 종부세뿐 아니라 재산세도 장기적으로 함께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령자·장기 보유자에게 최대 80%를 공제하는 현행 제도가 고가주택 장기 보유와 '똘똘한 한 채' 현상을 부추긴다며 1주택 공제의 축소 또는 폐지를 제안했다.
이광수 광수네복덕방 대표는 초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보유세 실효세율을 대폭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모든 주택의 보유세를 한꺼번에 올릴 경우 정권 교체 때마다 세제가 다시 뒤집힐 가능성이 큰 만큼, 시가 40억~50억원 이상 초고가 주택부터 강화해야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진창하 한양대 교수는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가 국내총생산 대비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낮지 않고 거래세는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일률적인 보유세 강화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도권 집값 문제의 근본 원인은 주택 부족과 지역 불균형에 있다며 공급 확대와 '5극3특' 중심의 균형 발전을 중장기 해법으로 제시했다.
양도소득세 개편을 두고는 보유세를 높이는 대신 거래세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과 1주택자에게 과도한 양도차익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맞섰다.
함 랩장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로 서울 아파트 매물이 감소하고 임대차 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며, 조정대상지역의 다주택자 중과세율을 현행 20~30%포인트에서 10~20%포인트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제안했다. 한시적 중과 배제 조치를 반복하기보다 세율 체계 자체를 조정해 정책의 일관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남 소장은 실거주 1주택자에게 주어지는 양도세 비과세와 장기보유특별공제가 지나치게 크다며 양도차익에 대한 실효세율이 근로소득보다 낮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기 보유 공제를 거주 공제로 바꾸더라도 혜택을 과도하게 확대하면 초고가 1주택 선호와 불로소득을 더욱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 패널들은 잦은 규제 변경으로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기존 주택의 거래가 막히는 문제를 지적했다. 강영훈 네이버 부동산스터디 카페 운영자는 규제지역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여부를 매도 시점이 아니라 주택 매입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규제 지정 이전에 취득한 주택까지 매도 시점의 규제를 적용하면서 매물이 잠기고 정책 신뢰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이날 토론회에서 특정 개편안을 확정하지 않고 종부세와 양도세, 재산세 간 균형과 시장 파급 효과를 추가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구 부총리는 “오늘은 결론을 정해 놓고 온 자리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최종 결정에 반영하기 위해 경청하러 왔다"며 “정부는 길을 열어 놓고 국민 목소리가 바람직한 방향이라면 언제든 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