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 이익으로’ 원칙 훼손 논란
오락가락 명태균 진술, 재판부가 이례적 법리 활용
형사재판, 엄격한 증거주의 원칙 적용돼야
“개연성만으로 유죄 인정…민사재판인 줄”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로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보고 후원자에게 비용을 대납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오세훈 서울시장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 참석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1심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일부 정치자금 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일부 혐의는 정황증거만으로 유죄가 인정되고, 다른 부분은 증거 부족으로 배척되면서 재판부가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해 유죄의 근거로 삼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여론조사 실무를 주도한 명태균씨 진술의 신빙성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명씨의 진술에 대해 “일관되지 않은 점이 있고, 다소 과장되거나 경험칙에 비춰 수긍하기 어려운 진술도 나타난다"며 한계를 명확히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명씨가 다른 사건의 피고인 신분이라는 점과 진술이 여러 차례 달라진 점, “오세훈이 울면서 전화했다"거나 “김영선에게 SH공사 사장 자리를 약속했다"는 등의 진술은 객관적 자료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카카오톡 대화나 자금 흐름 등 객관적 자료와 부합하는 부분은 별도로 신빙성을 인정해 사실 인정의 근거로 삼았다.
또한 재판부는 2100만원 상당의 여론조사 비용은 정치자금 대납으로 인정했지만, 2월 23일 입금된 700만원과 3월 26일 입금된 500만원에 대해서는 “명확한 의뢰 사실을 특정할 자료가 부족하다"며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형사소송법상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엄격한 증거'에 의해야 한다. 직접증거 없이도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지만, 그 증명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에 이르렀는지가 중요하다.
법조계에서는 1심 법원이 결론을 먼저 세워두고 그에 맞는 진술만 골라낸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명태균씨 진술이 번복됐다는 것은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는 데 있어 상당히 치명적인 흠결"이라며 “재판부가 그중 일부는 부인하고 일부만 인정했다는 것은 매우 일관적이지 않은 태도이며, 이러한 판단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판결문 전반에 깔린 정황 기반의 추론 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재판부는 오 시장이나 강철원 전 비서실장의 직접적인 여론조사 지시나 대납을 요구하는 명시적 증거(녹취록·문서 등)가 없음에도, 인물 간의 연락 시점과 주변 정황을 토대로 “의뢰했을 개연성이 상당하다", “대납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판단을 내렸다.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민사재판의 증명 기준을 형사재판에 무리하게 끌어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민사재판에서는 어떤 정황 증거상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개연성만으로 사실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형사재판은 엄격한 증거주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명백한 증거 없이는 함부로 유죄를 인정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률적 판단에서 '가능성'보다 더 큰 개념이 '개연성'인데, 개연성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민사법원의 몫"이라며 “형사법원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정확도가 필요한데, 이번 재판부가 정황상 가능성만으로 유죄를 인정했다는 것은 의아하다. 민사 재판부처럼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1심 판결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피고인 측이 비용을 대납했다는 조사의 결과가 오히려 경쟁 후보보다 열세로 나오는 등 '정치자금 수수' 목적을 의심케 하는 상식 밖의 정황이 존재함에도, 재판부는 이를 범죄 성립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오 시장은 1심 판단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시장직을 상실한다. 향후 예정된 항소심에서 검찰의 객관적 물증 입증 책임과 재판부의 증거주의 원칙 준수 여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유죄와 무죄 모두 직접증거보다는 간접증거가 중심이었던 만큼, 논증이 상급심에서 다시 검증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