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미국과 OPEC 탈퇴 방안 논의
트럼프 행정부, 베네수엘라 유전 확보 추진
OPEC 창설국 이탈 땐 산유국 카르텔 균열 심화
美·베네수엘라 ‘석유동맹’ 구상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로이터/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베네수엘라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탈퇴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유전의 대규모 지분 확보를 추진하는 가운데 OPEC 창설국인 베네수엘라까지 이탈할 경우 글로벌 원유시장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2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들을 인용해 베네수엘라가 OPEC 탈퇴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OPEC 탈퇴가 미국 당국자들과 논의됐으며 아직 최종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다. 백악관과 베네수엘라 공보부는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OPEC 탈퇴가 현실화할 경우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대적인 정치적 재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1월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강제 축출하고 석유 판매권을 장악한 가운데 나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가 보유한 막대한 유전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정부와 거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재 양국 정부는 해당 사안을 놓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부 유전에 대해 100년 장기 임대권을 설정하는 방안도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다른 국가의 경제에 이처럼 직접 개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서반구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돈로주의'(19세기 먼로주의의 트럼프 버전)를 구현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델시 로드리게스 대통령 권한대행이 집권한 이후 미국과 베네수엘라 관계는 적대에서 협력 관계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미국은 제재 완화와 국제 금융시장 접근권, 원유 판매 수입에 대한 통제 등을 복합적으로 활용해 베네수엘라의 정책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51번째 주'라고 표현해왔으며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원유를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OPEC 로고(사진=EPA/연합)
◇ OPEC 창설국까지 이탈하나…산유국 카르텔 '균열'
베네수엘라가 미국과의 논의 끝에 OPEC 탈퇴를 최종 결정할 경우 글로벌 원유시장에도 상당한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베네수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와 함께 1960년 OPEC을 창설한 5개 산유국 가운데 하나이자 남미의 유일한 회원국이다. 실제 탈퇴할 경우 생산량을 조절하며 60년 넘게 글로벌 원유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산유국 카르텔 체제의 균열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OPEC은 잇따른 탈퇴로 현재 회원국이 11개국으로 줄었다. 2016년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2019년 카타르, 2020년 에콰도르, 2024년 앙골라가 OPEC을 떠났다. 지난 4월 말에는 산유량 3위인 아랍에미리트(UAE)가 생산량 쿼터제에 대한 불만 등을 이유로 OPEC 탈퇴를 발표했고, 이라크도 비슷한 문제를 이유로 지난 6월 탈퇴 가능성을 시사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재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만큼 탈퇴 자체가 당장 국제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조사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지난 7월 원유 생산량은 하루 116만배럴로 집계됐다. 이는 10년 전 생산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현재 글로벌 원유시장은 이란 전쟁과 이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탈퇴를 계기로 OPEC의 결속력이 추가로 무너질 경우 산유국들이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한 생산 경쟁에 나서면서 2020년 벌어졌던 '유가 전쟁'이 재현될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이때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수요 급감까지 겹쳐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 쿼터 족쇄 풀리면 증산…美·베네수엘라 '석유동맹' 구상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이 다시 급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최근 수년간 산유량이 크게 감소한 탓에 OPEC의 생산량 제한을 적용받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한 소식통은 베네수엘라가 OPEC을 탈퇴해 향후 적용될 수 있는 생산 쿼터에서까지 완전히 벗어날 경우 장기적으로 원유 생산량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으며, 이는 국제유가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통은 미국 역시 OPEC이라는 산유국 협의체의 제약 없이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에 대한 자체 계획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미국 석유공룡 셰브론은 지난 4월 베네수엘라에서 사업을 대폭 확대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PDVSA와 자산 교환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셰브론은 베네수엘라 오리노코 오일벨트에 위치한 대형 유전의 지분율을 49%까지 확대하고 다른 지역에 대한 추가 개발권도 확보하게 됐다.
일부 미국 당국자들은 미국과 베네수엘라 간 동맹을 토대로 새로운 '석유 강국'을 구축해 OPEC의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구상까지 갖고 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