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호 시민발전이종협동조합연합회 정책위원장(전 한전경제경영연구원장)
▲정은호 시민발전이종협동조합연합회 정책위원장(전 한전경제경영연구원장)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재생에너지 보급전망에 대한 정책토론회는 한마디로 썰렁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부 장관은 물론 전기본 수립 총괄위원장조차 오지 않았다. 삼사백 명을 너끈히 수용할 대형강당에는 겨우 90명도 안 되는 청중만 듬성듬성 자리하였을 뿐이다.
재생에너지 보급전망은 석 달도 훨씬 전에 발표된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의 재탕이었을 뿐이다. 어느 하나 새로운 것도 없었고, 희망사항만 잔뜩 늘어놓았을 뿐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솔직히 판을 짜고 수치로 꿰맞추는 것이야 쉬운 일이다. 속된 말로 누구나 할 수 있고, 그렇기에 누구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 그렇다 보니 자그마치 열 명의 토론자가 제시한 의견도, 청중의 질문도 미적지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흥행의 실패였을까. 정부의 권능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정책토론회의 썰렁한 분위기는, 의도됐든 또는 의도되지 않았든, 정부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정부의 관심이 재생에너지 확산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어서다. 실제 재생에너지 중심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강화하며 에너지전환의 큰 걸음을 내딛었다고 믿었던 정부가 에너지전환을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이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다.
기후부장관은 8월 18일 제12차 전기본과 관련해 '불가피하게 가스발전이 일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전면 폐쇄하겠다는 공약을 사실상 철회하였던 지난 4월의 에너지전환추진계획은 8월 20일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및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 제정으로 구체화되었다.
심지어 5월 20일, 대통령은 정부출범 1주년을 맞아 열린 국정성과보고회에서 “일정한 기간까지는 화석연료 의존을 피하기 어렵다"며 “너무 급격하게 (탈탄소를) 하느라고 산업 발전에 장애가 되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잘 균형을 맞춰 달라"고 탄소중립 속도조절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6월 29일 3대 메가프로젝트가 발표됐다. 온갖 무리와 편법 속에 추진됐던 용인국가산단 지정을 취소하기는커녕 서남권 반도체 산단, 반도체 산단보다 훨씬 불확실한 대대적인 AI 데이터센터까지 보태 속도전과 전격전으로 밀어붙이겠다고 한다. 전력공급을 위해 원전도 더 지어야 하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도 더 지어야 한다. 제12차 전기본의 2040년 전력수요 전망이 4개월만에 폐기처분되는 것은 당연하다. 메가프로젝트로 자그마치 29%나 늘어난 2040년의 전력소비량 재전망을 충족시키려면 어쩔 수 없다.
솔직히 재생에너지 중심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한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모처럼 벅찬 희망을 품게 하였다. 세 걸음, 열 걸음이 아니라 겨우 한 걸음 내딛는 게 아쉬웠으나 그것이 어디인가. 결코 내칠 일은 아니었다.
직접 전력구매계약(PPA)를 추진하는 발전사업자의 설비용량 제약을 완화하고, 농어촌의 햇빛소득마을을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제주지역에 그쳤으나 계통관리변전소 지정을 해제하고, 협동조합을 비롯한 1 메가와트(MW) 이하 공익 목적의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전력계통 우선접속을 허용했다.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소규모 분산형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떠넘겼단 가격변동 리스크를 완화한 것은 분명 반길 일이다. 조금 뜬금없으나 기후부의 올해 하반기 업무보고에서 2030년까지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ESS)를 12기가와트(GW)까지 늘리겠다는 것도 더 공격적인 목표가 아쉽지만 그래도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일보전진 이보후퇴란 말이 있다. 한 걸음 전진했으나 두 걸음 물러섰다면 결국 퇴보한 것이다. 모든 일에 우여곡절이 있다지만 한 걸음 전진에 혹해서도, 그것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을 용납해서도 안 될 일이다. 모름지기 진정한 국민주권정부라면 약속할 때도, 약속을 철회할 때도 신중해야 한다. 국민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말의 성찬이 아니라 행동과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갈짓자로 제멋대로인 듯하여 속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