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톤 면제에 안심할 때가 아니다 [이창언의 지속가능성 나침반]

송민규 기자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6.09.08 19:34

CBAM, 탄소가격에서 탄소데이터 경쟁으로

이창언 우석대학교 ESG 국가정책연구소 소장

▲이창언 우석대학교 ESG 국가정책연구소 소장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CBAM)가 올해 1월 1일부터 본 시행체계(definitive regime)에 들어갔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50톤 이하면 괜찮다", “인증서 구매는 내년부터다"라는 말이 들린다. 숫자만 보면 숨을 돌릴 시간이 생긴 듯하다.


그러나 EU의 최근 움직임은 다른 신호를 보낸다. 8월 10일 일부 기본값 수정치를 공개했고, 14일에는 비EU 생산자를 위한 10종의 가이드를, 24일에는 검증인과 국가인정기관을 위한 별도 지침을 내놓았다. CBAM의 초점이 제도 도입에서 배출량을 어떻게 계산하고 검증하며 증명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 50톤은 '후퇴'보다 '선별'에 가깝다



지난해 Regulation (EU) 2025/2083으로 개정된 CBAM 기본규정은 제도를 간소화하면서도 핵심 배출은 제도 안에 남기는 방향으로 손질됐다. 철강·알루미늄·비료·시멘트 네 부문의 대상 상품을 합산해 EU 수입자별 연간 누적 순중량이 50톤을 넘지 않으면 소규모 수입 면제를 받을 수 있다. 전력과 수소는 이 질량기준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50톤을 넘으면 초과분만이 아니라 그해 수입한 관련 상품 전체가 CBAM 의무 대상이 된다. EU가 이 기준을 두면서도 내재배출량의 최소 99%를 제도 안에 남기도록 설계한 이유다. '50톤 면제=규제 완화'라고만 보면 절반만 본 셈이다.



본 시행기에는 실제값이나 EU 기본값을 사용할 수 있다. 실제값을 쓰려면 공인 검증을 거쳐야 하고, 복합상품은 선행재의 탄소정보까지 이어져야 한다. 협력업체에서 데이터가 끊기면 실제 배출이 낮아도 그 사실을 충분히 보여주기 어렵다.


기본값도 중립적인 숫자가 아니다. 시멘트·철강·알루미늄·수소에는 2026년 10%, 2027년 20%, 2028년부터 30%의 가산율이 붙고 비료는 1%다. 탄소를 적게 배출해도 입증하지 못하면 더 불리한 값이 적용될 수 있다. 데이터의 부재가 비용으로 바뀌는 구조다.


철강은 이 문제가 특히 선명하다. 생산방식과 선행재가 달라 제품별 탄소정보의 연결이 중요하다. 다수 철강제품은 직접배출을 중심으로 산정하지만 일부 관련 품목은 간접배출도 반영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회사 전체 배출량 하나가 아니라 제품-공정-선행재를 잇는 측정·보고·검증(MRV) 체계다.


◇ K-ETS도 '있느냐'보다 '얼마를 실제 냈느냐'다



K-ETS 제4차 계획기간에는 철강 등 수출 비중이 높은 대부분의 업종에 100% 무상할당 방식이 유지된다. 그렇다고 기업의 실제 탄소비용이 언제나 0이라는 뜻은 아니다.


CBAM이 따지는 것은 한국에 배출권거래제가 있느냐가 아니라 탄소가격이 실제로 얼마나 지불됐느냐다. K-ETS 시장가격, 기업이 실제 부담한 탄소비용, CBAM에서 인정되는 공제액은 같은 숫자가 아니다.


CBAM 인증서 구매는 2027년 2월부터 시작되고, 2026년 수입분의 첫 신고와 인증서 제출 마감은 2027년 9월 30일이다. 그러나 그 비용을 좌우할 데이터는 이미 올해 공장과 공급망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데이터는 많이 쌓는다고 경쟁력이 되지 않는다. 연결되고 검증되고 신뢰받을 때 비로소 자산이 된다. CBAM이 기업에 묻는 것은 결국 두 가지다. 얼마나 탄소를 줄였는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가. 탄소를 줄이는 능력만큼 탄소를 증명하는 능력이 수출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시작됐다.


* 이창언 우석대학교 미래융합대학 창업컨설팅학과 교수 / 우석대 일반대학원 ESG·공공정책학과 주임 교수 / 우석대 ESG 국가정책연구소 소장



송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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