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신 산업부장(부국장)
산업은 원래 죽는다.
석탄을 태우며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끊임없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냈다. 낡은 산업은 역사 뒤편으로 밀려났다. 기술 발전, 소비 문화, 정치와 외교, 국제 질서 등 산업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은 산업의 탄생과 소멸을 예외적 사건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리로 만들었다.
불과 반 세기 만에 산업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은 더욱 그렇다. 섬유에서 철강, 조선, 자동차로. 다시 반도체와 IT로. 한때 미래 먹거리로 불렸던 산업은 금세 주력 산업이 되고, 다른 산업이 그 자리를 넘겨받으며 압축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새 산업의 등장에 환호하는 동안, 기존 산업의 생태계는 조용히 사라졌다.
사라지는 순간의 산업은 어떤 모습인가.
제조업은 연일 피지컬 AI를 외친다. 완성차 업체들은 로봇과 AI를 앞세워 생산공장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한국은 이미 제조업 로봇 밀도 세계 1위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제조업 근로자 1만 명당 로봇 대수는 1220대로 세계 평균의 9배를 웃돈다.
반면 중소 제조업의 AI 전환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 조사를 보면, 중소 제조기업 가운데 실제 생산 현장에 AI를 적용한 곳은 1.5%에 그쳤다. AI 도입의 가장 큰 걸림돌로는 초기 비용 부담과 인력 부족이 꼽혔다.
현대자동차는 2028년부터 아틀라스 로봇을 국내 제조 현장에 투입하고, 2030년에는 조립 등 더 복잡한 공정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전무후무한 생산성 향상과 막대한 비용 절감이 예상된다.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은 그저 승승장구할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 토대를 촘촘하게 만들어온 중소 협력사들이다. 한국의 중소 제조기업은 6만9807개, 종사자는 199만 명에 달한다. 이들 공장이 같은 미래를 맞을 리 없다. 자본과 기술을 가진 곳은 앞서가고, 그렇지 못한 곳은 뒤쳐진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조차 모른 채, 어떻게 바꿔야 할지도 찾지 못한 채 사라진다.
정부는 올해 첫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2030년까지 100만 명 이상에게 AI 직업훈련을 지원하고, 산업전환 충격이 집중되는 지역에 대한 대응책도 담았다. 지난 7일, 중기부와 과기정통부는 중소 제조기업의 피지컬 AI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내놨다. 기술 공급기업과 제조 수요기업을 연결하고, 기술개발부터 실증과 현장 적용, 확산까지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여기서 우리는 정책의 숫자가 아니라, 그 사이의 빈틈을 봐야 한다. 기술을 도입할 여력이 없는 기업, 무엇을 바꿔야 할지 모르는 기업은 그 빈틈에서 뒤처진다. 산업의 이름은 남는다. 성과도 남는다. 그러나 그 안의 생태계까지 그대로 남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일자리, 기술과 공급망은 산업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다시 짜인다.
죽은 산업을 위한 나라는 없다. 모든 기업을 살릴 수도, 모든 일자리를 지킬 수도 없다. 산업은 죽을 수 있다. 산업의 이름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그 산업을 떠받쳐온 생태계까지 함께 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필요한 것은 과거의 산업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그 산업이 남긴 기업과 기술이 다음 산업으로 건너갈 길을 만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