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품 무단 판매·매장 콘셉트까지 ‘노골적 베끼기’
커지는 자본력·유통망 격차…인디 브랜드 양극화
나라마다 규제 제각각…인디 브랜드는 ‘여력 부족’
C-뷰티 공세…색조 중심·규모의 경제로 밀어부치기
기업 ‘단속’·플랫폼 ‘신고’·정부 ‘육성법’ 삼각 대응
한국 화장품이 세계 시장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인 단체관광객과 따이공(보따리상)에 기대어 성장하던 시대를 지나 미국·유럽·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K-뷰티'를 직접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 대기업뿐 아니라 국내에서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중소·인디 브랜드가 아마존과 틱톡에서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어낸다.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과 용기업체, 상품을 세계 각지로 실어 나르는 유통기업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수출 지형과 인기 브랜드, 제조 경쟁력, 해외 유통망, 소비 현장 등을 통해 K-뷰티 열풍의 현재를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진격의 K-뷰티①] 화장품이 제2의 반도체? 글로벌 영토 확장 '가속 페달'
[진격의 K-뷰티②] 한류 열풍에 트렌디한 마케팅까지…'인기몰이' 이유 있었다
[진격의 K-뷰티③] '인기 브랜드' 면면 살펴보니…기초부터 헤어케어까지 '각양각색'
[진격의 K-뷰티④] ODM의 힘…韓 기업들 '글로벌 열풍' 이끈다
[진격의 K-뷰티⑤] 외국인 心 잡은 한국 화장품…관광객들 '장바구니' 살펴보니
[진격의 K-뷰티⑥] 韓 넘어 세계로···CJ올리브영 '질주' 무섭다
[진격의 K-뷰티⑦] 수출 지도 바꾼 한국…글로벌 트렌드 변화 속도도 빠르다
[진격의 K-뷰티⑧] 잘나가니 짝퉁도 기승…브랜드 지키기 “방심은 금물"
[진격의 K-뷰티⑨] “단순 유행 넘어 원천 기술력 및 R&D 고도화 역량 쌓아야"
[진격의 K-뷰티⑩] “정부 인프라 지원 절실…해외 규격 인증도 적극 지원해야"
▲'수단레드 논란'에 휩싸인 에이피알 뷰티 브랜드 '메디큐브'의 'PDRN 핑크 콜라겐 캡슐크림'. 사진=에이피알
K-뷰티가 수출 호조·글로벌 인기 날개를 달고 화려한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그 이면에 '메이드 인 코리아' 경쟁력을 갉아먹는 위험 요인들이 쌓이고 있다. 국내외에서 K-뷰티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노린 위조품 유통 문제가 심화되면서 한국 화장품의 브랜드 가치를 깎아먹는 분위기다.
더구나 인디·중소 브랜드 약진에도 개별 기업 간 역량 차이로 양극화마저 벌어지고 있다. 갈수록 미국·유럽 연합(EU) 등 주요 지역들이 성분·안전 규제를 강화하며 K-뷰티 브랜드의 해외 진출 문턱도 높아지는 추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본·트렌드 대응력을 갖춘 중국 화장품(C-뷰티) 공세까지 더해지자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의 입지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가짜 화장품에 멍 드는 '메이드 인 코리아' 브랜드 가치
위조품 유통은 K-뷰티 브랜드 입장에서 브랜드 신뢰도 훼손은 물론, 재구매율 감소 등 치명적인 부작용이 우려되는 중차대한 문제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갈수록 적발 사례가 늘면서 K-뷰티 산업에 얼룩을 남기고 있다. 지식재산처에 따르면, 2023년 1만6774건이었던 해외 온라인 플랫폼에서 차단된 K-브랜드 위조 화장품은 이듬해 2만3494건, 지난해 3만6116건으로 2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눈여겨 볼 지점은 위조품 유통 방식의 변천사다. 과거에는 한글 표기·패키지 등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정도였다. 최근에는 용기·제형뿐 아니라 제조번호까지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복사하는 치밀한 수법까지 진화했다.
이 같은 위조 제품은 국내외 주요 소비자 접점에서 정품 브랜드 상품으로 둔갑돼 은밀히 유통된다. 국내 주요 온라인 오픈마켓마저도 유통 브로커가 불법 판매하는 해외에서 제조된 가짜 화장품의 유통망으로 활용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지식재산처가 최근 공조 수사를 벌인 결과, 중국 제조산 가짜 화장품·건강기능식품 등을 국내에 불법 반입해 판매한 유통 브로커 A씨를 적발해 검찰에 송치했다. A씨는 2024년 10월~2025년 11월까지 국내 온라인 오픈마켓에서 화장품·건기식 등 61종, 약 45억원 상당의 제품을 판매했다.
이 가운데 화장품에서는 셀라딕스·웰라쥬·가히·코스알엑스·조선미녀·아누아 등 국내 브랜드 제품과 에스티로더·SK-Ⅱ·랑콤 등 해외 브랜드 제품 28종이 포함됐다. 식약처가 압수한 기능성 화장품 12종·건기식을 검사한 기능성 성분·지표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
가품 문제뿐 아니라 잘 나가는 K-뷰티 브랜드 상품에 유해 물질이 검출됐다며 찬 물을 붓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최근 에이피알은 싱가포르에 불법 유통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체 브랜드 '메디큐브'의 특정 제품에 대한 성분 논란이 불거지며 몸살을 앓았다.
앞서 싱가포르 보건과학청(HSA)은 메디큐브의 'PDRN 핑크 콜라겐 캡슐크림' 일부 배치 제품에서 발암 유발 가능성이 있는 수단레드가 미량 검출됐다고 밝혔다. 다만, 에이피알 측은 국내 공인시험기관에 의뢰해 해당 배치군을 재검사한 결과 문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으며, 당초 해당 제품을 싱가포르에 수출한 적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에이피알 측은 “HSA가 검출 사실을 밝힌 샘플 판매처로 언급한 업체는 당사가 해당 제품을 공급한 공식 유통업체가 아니다"라며 “해당 배치도 당사의 싱가포르 공식 수출 이력에서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입장을 드러냈다.
개별 제품이 아닌 브랜드 공간 자체를 통째로 모방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올 초 중국 후난성 창사시·리우양시에서는 국내 뷰티 편집숍 올리브영을 본뜬 듯한 '온리영(ONLY YOUNG)'이라는 상호의 매장이 등장해 충격을 안겼다.
이 매장은 상호명·브랜드 색상·로고·제품 진열 방식 등까지 올리브영과 흡사한 방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해당 매장은 더우인 등 현지 SNS를 통해 K-팝을 배경음악으로 깐 홍보 영상을 게재하는 등 한국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취했다.
▲올리브영에서 쇼핑을 즐기고 있는 외국인 모습. 사진=CJ올리브영
◇양극화 심화, 규제 장벽, C-뷰티 공세…K-뷰티 '삼중고'
고공행진 중인 K-뷰티 제동을 거는 것은 가품·무단 판매 문제만이 아니다. 업계는 인디 브랜드 위주로 글로벌 뷰티 시장이 재편되면서 그 존재감이 여느 때보다 커졌다는 데 공감한다. 다만, 상위 브랜드 위주로 매출이 집중돼 성장의 결실이 고루 확산되지 않은 가운데, 자본력이 부족해 ODM(제조자개발생산) 비용마저 대기 어려운 곳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브랜드 인큐베이터로서 유통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과도한 입점 경쟁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올리브영은 '인디·중소 뷰티 브랜드와의 동반 성장'을 목표로 다양한 지원을 펼쳐왔다. 2020년 36개였던 올리브영의 연매출 100억원 이상 브랜드 수는 지난해 116개로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 그 방증이다. 토리든·메디힐·닥터지·클리오·달바·라운드랩 6개 브랜드는 지난해 올리브영에서만 연매출 1000억원을 넘었고, 이는 전년 대비 2배인 수치다.
플랫폼 입점 기회를 놓치면 사실상 마케팅·유통 역량이 부족한 브랜드는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특히, 최근에는 해외 바이어들이 올리브영 입점 여부·판매 순위 등을 고려해 브랜드 경쟁력을 판단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판로 확장 기회 측면에서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업계 분석이다.
K-뷰티의 발목을 붙잡는 또 다른 리스크 요인은 글로벌 규제 장벽이다. 각 나라마다 허용하는 성분·제품 등록 절차·표시 기재 규정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한 제품이더라도 수출국 규제에 맞춰 성분 처방·패키징을 달리하는 등 업계 부담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예컨대 미국은 '화장품규제현대화법(MoCRA)' 시행에 따라 제조시절 등록·성분 안전성 입증·부작용 보고 의무 등이 적용된다. 지난 8월 중순부터 유럽연합(EU)도 포장 폐기물 감축·재활용 확대를 골자로 새로운 '포장재 및 포장 폐기물 규정(PPWR)'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국내 뷰티 기업들도 제품·포장 전략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성분 재검증·패키지 재정비·현지 인증 획득 등 규제 대응에 소요되는 시간·비용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내부 전담 조직·법무팀 등을 별도로 갖춰 비교적 여유가 있는 반면, 대다수 중소·인디 브랜드는 그럴만한 여력이 없다. 결국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시장임에도 진출 자체를 포기하거나, 기진출한 국가마저 발을 빼는 사례까지 포착된다는 업계 설명이다.
전방위적 추격에 나선 C-뷰티의 거센 공세도 리스크로 작용한다. 당장에 품질·신뢰도 측면에서 K-뷰티를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지만, 대규모 자본·물량을 쏟아 붓는 C-뷰티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업계는 진단한다.
최근 들어 C뷰티는 화려한 디자인을 앞세워 색조 화장품 카테고리를 집중 공략하는 행보가 두드러진다. 색조 화장품은 기초 화장품 대비 브랜드 충성도가 낮다. 더구나 트렌드·가격대에 따라 쉽게 수요가 움직이는 특징이 있다.
동화풍 디자인을 내세운 중국 화장품 브랜드 '플라워 노즈'가 대표 사례다. 해당 브랜드는 틱톡·유튜브 등을 통해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 앞서 일본·한국 유통 채널에 공식 입점한 데 이어, 최근 미국에서도 팝업 매장을 선보이며 사업 영토까지 확장 중이다.
빠른 해외 진출 속도만큼 실적 성장세도 가파르다. 올 1분기 플라워 노즈 매출은 6억7500만 위안으로, 단 1분기 만에 지난해 연매출(17억 위안)의 약 40%에 이르는 성적을 거뒀다.
최근 중국 최대 뷰티기업인 '프로야'가 플라워 노즈에 지분 추가 투자를 단행해 최대 주주로 올라선 점도, 이 같은 실적 신장세와 무관치 않다. 끊임없는 인수·합병(M&A) 전략으로 글로벌 뷰티 공룡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로레알' 사업 모델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아니냐는 업계 분석이다.
▲지난 10일 열린 화장품 브랜드 보호 세미나에서 조희경 쿠팡 IP법무팀 이사가 쿠팡의 브랜드 보호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쿠팡
◇단속·신고·인증·연구개발…K-뷰티 지키기 나선 시장·정부
단순히 수출 실적 등 수치적으로 보면 K-뷰티 성장세는 여전히 상승 곡선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위조품 유통·무단 판매 등 신뢰 리스크와 함께, 인디 브랜드 양극화·해외 규제 강화·C-뷰티 공세 등 각종 위험 요인이 한 번에 조여 오는 구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물론 시장 차원에서도 자구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당장에 보호막이 시급한 위조품 유통 문제만 봐도 에이피알·구다이글로벌·아모레퍼시픽 등 주요 뷰티 업체 일제히 위조 상품 색출·지식재산권 보호에 집중하고 있다. 내부 인력을 활용하거나 외부 업체와 협력해 온라인 판매처 위주로 실시간 단속을 강화하는 것이 주된 방식이다.
온라인 플랫폼들도 가품 판매 창구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가품 대응 수위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쿠팡은 기존 AI 기반의 가품 탐지 시스템에 더해 가품 신고 전용 핫라인 시범 운영한다고 밝혔다. 위조 상품에 대한 신속한 신고 체계를 갖추는 것이 골자로 평일뿐 아니라 주말·공휴일 늦은 시간에도 신고 접수가 가능해졌다.
정부도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앞서 6월 지식재산처·식약처·관세청·대한화장품협회는 업무 협약을 체결해 위조 화장품 대응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지식재산처의 경우, 올 7월부터 '가짜 K-브랜드 신고센터'도 운영 중이다. 오는 10월부터는 국가인증상표를 현지 수사·단속·통관 보류 등과 연계하는 'K-브랜드 정부인증제도'도 도입한다고 예고했다.
나아가 정부는 K-뷰티 생태계의 체질 전환을 앞당길 범부처 차원의 전략도 수립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 18일 보건복지부는 주요 화장품 업계 관계자들을 모아 산업 육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앞서 15일 공포된 '화장품 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기반으로 기존 규제 중심에서 벗어나, 연구개발(R&D)·해외 진출 지원 확대에 무게를 싣는 것이 핵심이다. 연내 관련 계획 발표 후 내년 산업 실태조사를 단행한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김주덕 서울사이버대 뷰티산업학과 석좌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수출 기업 가운데 중소·인디 브랜드들은 정책적인 부분을 모르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 부처 차원에서 정부가 수출 관련 정보를 먼저 제공하는 등 협력하는 지점은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김 교수는 “화장품 업종이 수출 호조로 매출은 높게 잡히지만 타 산업 대비 연구개발비가 굉장히 적다"면서 “타 업종과 마찬가지로 연구개발 비용을 많이 지원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현재 화장품 관련 식약처 규제가 심한 편인데, 이를 완화해준다면 수출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