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조사처, 미·이란 전쟁 후 韓 자원 공급망 진단
조달·생산·계약구조 고착화에 ‘구조적 락인 효과’
법제 정비와 조기경보 통합으로 안보 체계 재편
▲호르무즈 해협.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자원 수입선 다변화를 넘어 '완충자산'과 '전환옵션'을 확충하고, 비축·설비·계약·조기경보·국제협력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에너지 안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1일 '호르무즈 위기가 드러낸 한국의 에너지 공급망 한계와 과제: 수입선 다변화에서 공급망 회복탄력성으로' 현안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에너지 공급망 취약성은 수입 규모 자체보다 도입 구조에 있다. 중동산 의존도가 높은 데다 다른 원산지 또는 원료 대체가 제한돼 외부 충격이 유가를 넘어 산업원쇼 수급 전반으로 빠르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정부의 다변화 정책으로 2015년 82.3%에서 2021년 59.8%까지 낮아졌지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최근 3년간은 70% 내외를 유지해왔다. 아울러 중동산 원유의 9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국내 원유 정제설비와 석유화학 산업이 중동산에 최적화돼 있다.
LNG는 원유에 비해 수급처가 분산돼 중동 위기에 대한 직접 노출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현물가격 급등과 선복·액화설비 제약에는 취약하다. 석유화학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의 경우 국내 정유 공정의 나프타 수율이 20%가량에 불과해 내수의 약 45%를 수입산에 의존한다. 지난해 기준 수입량의 약 77%가 중동산이고, 전체 수입량의 약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한다.
이 같은 수급 구조에 관해 보고서는 “한국의 원유·LNG 공급망은 인프라, 계약, 지리적 경직성이 만드는 '구조적 락인(Lock-in)'에 갇혀있다"고 진단했다.
▲호르무즈 위기 관련 주요 공급 리스크 품목의 대중동 의존 현황. 사진=국회입법조사처
한국 정유사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도화 설비에 저렴한 중동산 중질·고유황 원유를 투입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구조로 경쟁력을 키워왔다. 중동산 원유 수급에 위기가 생겨 미주산 경질·저유황 원유로 대체하면 설비 최대 가동률을 유지하기 어려워 경제성이 낮아질 수 있다.
LNG의 경우 장기계약 중심 구조가 위기대응 경직성을 키운다는 설명이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안정적 물량 확보의 필요성 때문에 LNG는 10~20년 단위의 장기계약 비중이 높다. 장기계약은 평시 공급 안정성을 높이지만, 의무인수 조항과 도착지 변경 금지 조항을 포함하는 관행 때문에 조달 유연성이 떨어지고, 위기 때 추가 확보하는 한계물량에는 조달 비용(프리미엄)이 붙는다.
원유·석유제품·LNG의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높은 지리적 한계도 있다. 지난해 기준 세계 해상 원유·석유제품 교역량의 약 25%, LNG 교역량의 약 19%가 호르무즈 해협에 집중됐다. 사우디 동서부 파이프라인이나 아부다비 합샨-푸자이라 송유관(ADCOP) 같은 우회 경로의 합상 수송 능력은 호르무즈 해협의 18~28% 수준이다. 공급 국가를 다변화해도 특정 경로의 의존도가 높으면 위험 분산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보고서는 수입선 다변화를 넘어 공급망 회복탄력성을 강화하기 위해 원유와 나프타 등 전략 산업원료의 비축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시행령과 고시를 개정하고 국가자원안보 특별법과 연계하는 방법이 있다. 품목별 대외 의존도와 산업 파급 효과를 고려해 비축 목표를 원료별로 차등해 수립하고, 위기 시 평시보다 더 비축하는 식으로 단계적 비축 체계를 구축하자는 주장도 했다.
아울러 비중동산 초중질유 처리·원료 전환 설비에 정유업계가 투자하면 신성장·원천기술 사업화시설에 준하는 우대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정유사의 원료 전환 능력을 국가 공급망 안보 역량으로 인정해 실질적인 설비 유연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기존의 유가 중심 경보 체계를 나프타 스프레드, LNG 현물가, 해상운임지수, 정유·석유화학 가동률 같은 실물 공급망 지표를 반영한 통합 조기경보 시스템으로 고도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실물 위기 징후 발생 시 비축유 방출과 긴급 수송 지원 등이 단계적으로 발동되는 사전 매뉴얼 정비도 주문했다.
자원 통상 외교를 강화해 계약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동아시아 수입국 간 국제 협력을 확대할 것도 주문했다. 원유와 LNG 계약 시 재판매권, 스와프권 등 유연성 조항을 확보하고, 한·일 위탁정제 비축유 스와프 상시화나 한·아세안 비축 협력 등 지역 차원의 수급 완충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전환과 공급망 안보의 통합적 설계를 당부했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탈탄소 이행기의 '징검다리 전환자원'으로, 나프타는 첨단 후방산업을 지키는 '전략적 산업원료'로 재정의하여 공급망 관리, 재생에너지 확대, 핵심광물 안보를 하나의 통합 틀에서 다루는 거시적 전략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