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PS 환자가 요구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장애 평가
▲이용우 한국복합부위통증증후군환우회 회장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은 외상이나 수술 이후 특정 신체 부위에 극심한 통증이 지속되는 질환이다. 가벼운 접촉에도 견디기 어려운 통증을 느끼고, 피부 온도와 색의 변화, 부종, 감각 이상, 운동 기능 저하 등을 겪을 수 있다. 환자에 따라서는 걷거나 물건을 잡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동작조차 큰 고통이 된다. 직장생활과 경제활동이 제한되고, 사회적 관계와 삶의 질까지 무너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CRPS 환자들이 겪는 고통이 곧바로 장애 인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질환으로 인한 실질적인 기능 제한이 크더라도 현행 장애 판정 기준에서 요구하는 신체적 변화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으면 장애를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삶을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살펴야 할 문제가 있다. 장애 판정은 눈에 보이는 신체 변화만으로 충분한가? 환자가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도 함께 평가하고 있는가.
현행 보건복지부의 장애정도 판정기준은 CRPS 환자에 대해 진단 후 2년 이상 지속적이고 충분한 치료를 받았음에도 이영양성 변화에 따른 근위축이나 관절구축 등이 뚜렷하게 확인되는 경우 지체장애를 판정하도록 하고 있다. 근위축은 근육의 부피가 줄어드는 현상이며, 관절구축은 관절이 굳어 움직임이 제한되는 상태다.
이러한 기준은 객관적인 신체 변화를 확인한다는 취지가 있다. 장애 판정의 일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증상의 정도를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객관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객관성의 기준이 특정한 신체 변화에 지나치게 집중될 경우 발생한다. 극심한 통증 때문에 팔이나 다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일상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더라도 근위축이나 관절구축이 기준에 부합할 만큼 뚜렷하지 않으면 장애를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
통증이 환자의 기능을 제한하는 방식은 모두 같지 않다. 어떤 환자는 장기간 움직이지 못해 근육이 위축되거나 관절이 굳을 수 있지만, 다른 환자는 그러한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더라도 통증 때문에 신체를 사용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질환의 경과와 치료 과정, 개인별 증상에 따라 기능 제한의 양상도 달라진다.
이러한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같은 질환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환자 사이에서도 장애 인정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환자가 겪는 실제 기능 제한보다 특정한 신체 변화의 유무가 더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되는 것이다.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최종범 교수도 이러한 문제를 지적했다. 최 교수는 통증이 극심하더라도 마비나 근위축, 관절구축이 없으면 장애를 인정받지 못하는 반면, 통증이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더라도 근위축이나 관절구축이 있으면 장애 판정을 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통증의 정도만으로 장애를 판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통증의 주관성을 고려하더라도 환자의 신체 기능과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방법을 더 폭넓게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장애 판정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 최 교수는 CRPS를 진단한 전문가가 장애 기준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환자 가운데서도 장애 심사 과정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관절운동 범위와 근력 약화 등을 측정해 기준에 부합한다고 판단했음에도 최종 심사에서 인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의의 진단이 곧바로 장애 판정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질환의 진단과 장애 정도의 판정은 목적과 기준이 다를 수 있다. 다만 전문적인 진찰과 객관적인 검사 결과를 토대로 장애 인정 여부를 판단했다면, 그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에는 환자가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와 설명이 필요하다. 심사 과정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일은 환자뿐 아니라 제도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오늘날에는 CRPS의 진단과 평가를 위해 다양한 임상 소견과 검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체열촬영, 삼상골스캔, 골밀도검사, 엑스레이, 자기공명영상(MRI), 정량감각검사(QST), 정량발한축삭반사검사(QSART) 등이 진단과 감별에 참고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검사들이 모든 환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거나 개별 검사 하나만으로 CRPS 또는 장애 여부를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환자의 병력과 진찰 소견, 검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 판정기준 역시 이러한 의학적 특성을 반영해 발전해야 한다. 특정한 신체 변화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통증으로 인해 관절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 신체 부위를 실제로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는지, 보행과 일상생활 수행에 어떤 제한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평가 방법은 의학적 근거와 검증 절차를 토대로 마련하고, 허위·과장된 증상을 구분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심사 체계도 함께 갖춰야 한다.
장애 인정은 단순히 명칭 하나를 부여하는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복지제도와 각종 지원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 경제적 부담을 완화할 가능성, 사회 구성원으로서 생활을 이어갈 기반과 연결된다. 특히 장기간의 치료와 소득 감소를 함께 겪는 환자에게는 장애 인정 여부가 삶의 안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장애 판정에서는 신체적 기능 제한뿐 아니라 환자가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도 정책적으로 살펴야 한다. 다만 경제적 여건은 장애 여부 자체를 결정하는 기준과 구분해, 복지 지원의 필요성과 우선순위를 판단할 때 적절히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애 평가의 객관성과 복지 지원의 형평성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복합부위통증증후군환우회는 CRPS 환자에게 무조건 장애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의학적 근거에 기반한 공정한 평가를 통해 질환으로 인한 실질적인 기능 제한이 제도에서 합리적으로 반영되기를 바란다.
보건복지부는 CRPS 환자의 장애 판정 기준이 현재의 의학적 지식과 실제 환자들의 기능 제한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재검토해야 한다. 관련 전문가와 환자단체가 참여하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기능 평가 방법의 개선과 심사 결과에 대한 설명 책임 강화, 판정 절차의 투명성 제고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겉으로 보이는 신체 변화가 적다고 해서 환자의 고통과 생활의 제약까지 작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는 이유만으로 장애를 판정할 수도 없다.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평가 체계다.
CRPS 환자가 요구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질환으로 인해 실제로 제한된 기능과 무너진 일상이 장애 판정 과정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을 기회다. 통증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환자의 어려움까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장애 판정의 기준을 환자의 실제 삶과 연결해 살펴봐야 한다.
*글=이용우 한국복합부위통증증후군환우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