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신 산업부장(부국장)
최고의 기술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는다. 국내 산업계가 차세대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시장 경쟁력까지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연구실에서 성능이 입증된 기술을 양산과 매출, 시장 점유율로 연결하는 과정은 또 다른 과제다.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는 이미 막대하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연구개발에 투입한 비용은 37조7548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정부의 2026년 연구개발(R&D) 예산도 35조3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기업과 정부 모두 기술 확보에 이례적인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이렇게 개발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로도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나노미터(㎚) 공정을 앞세웠지만, 올해 2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9%로 대만 TSMC의 72.5%와 큰 격차를 보였다. 지난 9월 퀄컴과의 차세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위탁생산 협의에서도 수율과 가격, 설계 최적화가 주요 변수로 꼽혔다. 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시장 지위를 바꾸기는 어렵다. 수율과 생산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고객사가 요구하는 가격과 품질을 맞춰야 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우주항공청과 함께 2029년까지 4500파운드급 민·군 겸용 무인기용 터보팬 엔진을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독자 엔진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항공 분야의 기술 자립을 위한 중요한 단계다. 다만 개발 이후에는 성능 검증과 양산 체계 구축이 남는다. 장시간 작동 신뢰성과 내구성을 검증하고, 핵심 소재·부품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며, 반복 생산이 가능한 공정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도 기술 개발 이후의 사업화 장벽을 줄이기 위한 지원책을 확대하고 있다. 산업통상부의 2026년 10대 메가프로젝트 기술산업화 사업은 기술이전을 바탕으로 후속 연구개발(R&D), 시제품 제작, 실증·검증, 인증, 양산과 수출을 패키지로 지원한다. 이를 위해 기술 보유기관과 사업화 기업, 최종 수요기관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도록 해 개발 단계부터 실제 구매와 적용을 염두에 두도록 설계했다.
대기업과 협력업체를 연결하는 정책도 마련됐다. 산업부는 지난 8월 정부와 앵커기업이 5년간 5조원을 공동 투자하는 '산업생태계 함께성장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026년 정부 1500억원과 민간 3500억원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정부 1조8000억원, 앵커기업 2조8000억원을 투자한다. 앵커기업과 협력업체의 공동 기술개발, 실증, 구매 확약을 지원해 기술력 있는 기업이 실제 공급망에 진입하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기술과 정책의 존재보다 실제 성과다. 기술 개발이 경쟁력 확보의 출발점이라면 정책은 그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예컨대 기술 실증을 마친 기업이 양산 설비 투자와 고객사 확보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까지 살펴 지원 체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 성공 건수나 특허, 시제품 제작 실적에 매몰되지 않고, 실제 구매 계약과 반복 발주, 양산 수율 개선, 매출과 수출로 이어졌는지를 성과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세계 최초, 최고의 기술을 확보하는 것과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다르다. 결국 기술 우위를 실제 생산 물량과 수익으로 바꾸는 역량이 시장을 지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