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경제학부생 450명 대상 특강…4년 반 만
“저성장·부채로 기초체력 약화…전통 경제모형만으론 한계”
AI 네이티브·한일 경제연대·뉴 캐피탈리즘·인센티브 제안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5일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인공지능(AI) 시대, 세계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대한민국의 비전'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한국 경제가 저성장과 부채 증가라는 내부 문제에 미국·중국 패권경쟁과 인공지능(AI) 혁명, 글로벌 자본전쟁까지 겹친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AI 네이티브 국가'와 한일 경제연대, 뉴 캐피탈리즘, 새로운 인센티브 시스템을 제시했다.
최 회장은 5일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재학생 등 450여명을 대상으로 'AI 시대, 세계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대한민국의 비전'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최 회장이 서울대 경제학부 학생들과 만난 것은 2022년 4월 '시장의 변화, 미래의 기업' 특강 이후 약 4년 반 만이다.
최 회장은 "30년 넘게 기업을 경영하며 '변화'에 익숙하지만 그 속도와 크기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AI 시대에는 전통적인 경제학의 시장원리와 모형만으로 경제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수가 늘어났다고 진단했다. 과거 수요와 공급을 중심으로 시장을 이해했다면 디지털 경제에서는 개별 고객과의 관계가 중요해지는 등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 “美 투자 요구·中 기술 추격 사이 놓인 한국"
글로벌 경제질서 변화에 대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에 주목했다.
최 회장은 지난 30년간 미국의 소비와 중국의 제조를 중심으로 유지돼 온 글로벌 분업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며 한국이 미국의 투자 요구와 중국의 기술 추격이라는 이중의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AI를 둘러싼 대규모 투자 경쟁까지 가세했다. AI를 중심으로 여러 산업에서 혁신이 동시에 진행되고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과거 산업혁명과는 다른 규모와 속도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저성장, 부채 증가 등으로 내부의 기초체력이 약해진 가운데 G2 패권과 AI 혁명, 자본전쟁에 의한 외부 위협까지 더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개별 현안에 대응하는 방식만으로는 복합적인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내부와 외부 변화를 함께 고려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이 제시한 해법은 △사회문제 해결 자체가 경제활동이 되는 '뉴 캐피탈리즘' △지능 수출국을 지향하는 'AI 네이티브 국가' △한일 경제연대를 통한 '확장 옵션' △기업 성장을 촉진하는 '인센티브 시스템' 등 네 가지다.
◇ “韓 2조달러·日 4조달러 경제 묶이면 그 이상 효과"
AI 분야에서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제시한 에너지·반도체·AI 데이터센터·거대언어모델(LLM)·애플리케이션 등 'AI 5대 층'을 언급했다.
최 회장은 이들 분야가 "'AI 네이티브 국가'로 가기 위해 경쟁력을 키워야 할 분야“라며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한국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경쟁 속 한국 경제의 외연을 넓히기 위한 방안으로는 최근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한일 경제연대를 다시 꺼냈다.
최 회장은 "자유무역체제가 옅어지는 가운데 GDP 2조달러의 한국과 4조달러인 일본의 경제가 묶이면 그 파급력은 단순히 3배가 아닌 그 이상 커질 것“이라며 "양국이 겪는 저출산과 고령화 등 사회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제도적 요인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적용되는 규제 때문에 기업이 스스로 성장을 포기하지 않도록 성장에 대한 인센티브 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뉴 캐피탈리즘에 대해서는 기업과 민간이 사회문제를 해결해 만들어낸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이에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 AI 시대 인재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
최 회장은 강연 후 학생들과 AI와 반도체, 에너지 등 산업 현안에 대한 질의응답도 진행했다.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 육성 방향을 묻는 질문에는 '경험'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어디서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 직접 새로운 것을 자유롭게 설계하며 경험하는 게 'AI 네이티브 국가'로 가는 기초가 될 것“이라며 "이전의 시도가 실패해도 그걸 경험으로 삼고 도전을 계속하면 '시스템'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학부장은 "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운 경제학 개념을 실제 경제현장에 접목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