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환경정책의 제1원칙은 ‘오염자 부담원칙’이다. 오염원인 제공자가 자신의 오염행위에 상응하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환경정책 수립의 또 다른 원칙으로는 ‘사전예방의 원칙’이 있다. 환경 문제는 대체로 발생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 어려운 불가역성을 지니고 있고 예방적 투자가 오히려 경제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염이 발생한 후에 이를 처리하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방식이 아니라 환경오염 발생을 사전에 방지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치명적 영향은 이미 알려진 상황이기에 마땅히 사전예방의 원칙이 중요하게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 대책은 이런 가장 초보적인 원칙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있다.
올해 6월 정부 발표를 통해 미세먼지의 핵심 진원지가 경유차와 석탄화력발전소란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고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된 상태다. 사전예방의 원칙과 오염자 부담원칙에 따를 경우 이 진원지를 줄여가면서 미세먼지 배출에 대해선 이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책 방향이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수요 관리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대중교통을 확충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노후’ 설비에만 관심을 보인다.
가령 노후 경유차를 폐차한 후 신차를 구매할 경우 개별소비세를 대당 100만원 한도에서 6개월간 70% 감면해 준다고 한다. 환경부는 6월 클린디젤을 내건 경유승용차정책이 실패였음을 인정했다. 노후 경유차가 문제가 더 많은 건 사실이지만 신규 경유차 또한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는데도 폐차 후 신규 경유차를 구입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지원을 해준다는 것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국민건강보다 자동차 제조사를 더 염두에 두는 게 아니라면 이런 정책이 가능한 걸까?
더구나 폐차 지원 대상이 2006년 말 이전 등록 차량을 말하기에 현재 운행 중인 경유차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가 없다면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서울시는 그나마 7년 이상 노후 경유차에 대해 조기폐차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정부의 지원 대상은 그보다 더 좁아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석탄화력발전소 역시 마찬가지다. 30년 넘은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 10기의 처리방안을 7월 중 확정하고 20년 이상 된 발전소의 오염물질 설비의 대대적 교체방안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와 건설 중인 발전소는 논의 대상에서 빠져있다.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10기 용량은 3345MW이지만, 건설 중인 11기 발전소 용량은 9680MW이며 계획 중인 9기 용량은 8425MW이라 미세먼지 배출원은 더 늘어날 전망인데 말이다.
또한 전기를 무엇으로 생산할는지에 대해 논의하지 않고 전기차와 충전인프라 늘리는 데만 골몰하면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 확대로 연결될 수 있기에 좀 더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많은 인구가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대도시는 경유차, 특히 경유승용차가 심각한 미세원지 배출원이다. 생활환경 안에서 미세먼지가 배출되기에 인체 유해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정부는 에너지 상대가격의 합리적 조정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범부처 TF를 구성해 4개 국책연구기관이 공동 연구에 착수할 계획임을 밝혔다. 교통·에너지·환경세가 2018년 일몰시점을 맞이하는 만큼 그 이전에 제대로 된 안이 나오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잘못된 시장 신호가 바로 잡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교통인프라 구축에 주로 쓰이는 교통세가 80%나 차지하는 구조도 바뀌길 기대한다. 얼마나 더 걷고 어디에서 얼마를 걷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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