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장
[전문가기고] 근로시간 단축, 안일한 진단 잘못된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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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 실장 |
사람이 아프면 아픈 원인을 찾아 치료해야 한다. 그런데 더 이상 치료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면 겉으로 드러난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만 해준다.
요즘 우리 경제를 보면 마치 치료불능의 상태에 이른 것처럼 증상만 보고 처방하는 대증요법(對症療法)이 판을 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4당 의원들이 주당(週當) 근로시간을 현재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문득 든 생각이다.
법을 통해 근로시간을 줄이면 장시간 근로의 관행도 없어지고 근로자의 삶의 질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란 생각은 경제학자인 필자의 눈에는 무책임할 정도로 순진하고 잘못되어도 너무나 잘못된 접근방식으로 밖에 안 보인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면 우선 왜 우리나라에서 장시간 근로가 관행이 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치유할 생각을 해야 한다. 마치 의사들이 환자가 아픈 원인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과 동일한 이유에서이다.
아픈 원인을 치유해야 최소한의 부작용으로 통증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왜 장시간 근로가 관행이 되었을까? 제일 중요한 원인은 몇 가지 잘못된 노동시장 제도이다.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정규직을 쓰는 것이 두렵다고 할 정도로 정규직 고용을 기피한다. 특히 강성노조가 있는 생산직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노동법에 의한 고용보호도 과도하지만 노조가 있는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는 여기에 더해 단체협약을 통한 중층적인 고용보호를 누린다.
그래서 일손이 모자랄 때 신규로 정규직을 뽑는 것보다는 기존 정규직의 근로시간을 늘려 대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기업들은 생각한다. 장시간 근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뿐만 아니라 연장근로에 대한 과다한 할증률도 장시간 근로를 부추기는 잘못된 제도 중 하나이다. 국제노동기구에서는 대략 25% 정도의 할증률을 권고한다.
일본의 경우 연장근로에 대해 35%의 할증이 붙고 휴일에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연장근로에 휴일근로 가산금이 중복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연장근로가 야간에 행해질 경우에는 야간근로 할증임금 25%만 추가로 지급하면 되기 때문에 휴일 야간에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최대 60%의 할증만 추가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휴일 야간에 연장근로를 하게 되면 휴일근로 할증 50%에 더해 야간할증 50%를 지급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 상당수 하급심 판례에서 등장한 휴일근로와 연장근로의 중복할증 사례를 대법원마저 수용한다면 추가로 50%의 할증이 붙어 휴일, 야간에 연장근로를 할 경우 최대 150%의 할증이 붙게 된다. 누구라도 장시간 근로를 하고 싶도록 만드는 제도다.
잘못된 제도는 잘못된 근로태도를 만든다. 일감을 주말 야간으로 몰면 평소보다 1.5배 추가로 보상을 받으니 주중에는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
필자는 해외 자동차 생산라인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작업 개시 시간 10분 전이면 모든 근로자들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생산라인에서 작업을 개시할 준비를 끝낸다.
작업 개시 시간이 정말로 생산라인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뿐만 아니라 생산라인에서는 스마트폰이나 신문은 상상도 못한다. 심지어 노조의 요청으로 출근길에 무작위로 음주 여부를 측정해 전날 과음한 근로자는 출근도 못하게 한다.
생산성을 갉아먹는 근로자와는 함께 일하기 싫다는 의지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생산라인에서 스마트폰과 신문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작업 개시 시간은 작업복 갈아입는 시간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잘못된 제도가 생산성을 갉아먹고 장시간 근로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장시간 근로에 큰 매력이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추가로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두렵지 않도록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존 근로자에게 장시간 근로를 시키는 것보다는 근로자를 신규로 고용하는 것이 유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장시간 근로를 부추기는 과도한 할증률도 손봐야 한다.
프랑스는 지난 1998년 오브리(Aubry)법을 통해 1주 35시간으로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했다. 여기에 더해 과거에 받던 임금을 35시간제에서도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법률도 만들었다.
당연히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실패했고 2005년에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정책을 사실상 포기했다.
법으로 강제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란 생각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발상이다. 또한 증상만 보고 처방하는 대증요법은 성공할 수가 없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쳐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는 지혜를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너무 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