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너지] OPEC '감산연장 합의' 순항할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7.11.14 11:30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도 감산 연장엔 합의할 듯
-투기세력들, 순매수 포지션 늘어나
-높아진 기대치 가격정당화 이목 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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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 (사진=AFP/연합)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전 세계 유가를 움직이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례회의가 약 2주 앞으로 다가왔다. 10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최근의 유가 상승세 속에서 무난하게 감산 연장에 합의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이달 들어 사우디 아라비아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가 대내외적으로 정치적 모험을 감행하면서 중동 정세가 요동치자, 회동에 대한 주목도는 높아지는 모습이다.

OPEC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세력은 세계 최대 원유생산량을 자랑하는 사우디 아라비아다. 감산이 유가를 부양할 수 있었던 것 역시 OPEC의 맹주 사우디의 양보가 컸다는 분석이다.

높은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도 빈 살만 왕세자의 사회경제적 개혁을 위해선 더 높은 유가가 필요한 만큼, 일단 감산 합의는 이뤄질 것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그러나 사우디 당국이 지난 주말 예멘 반군에 대한 추가 폭격을 단행하고, 이란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할 조짐을 보이면서 OPEC 앞에 놓인 불안정성은 한층 두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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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 변화 추이. (표=네이버 금융)


지난해 11월 30일(현지시간) OPEC은 감산에 성공했다. 미국 셰일업계의 점유율이 늘어나면서 약해진 OPEC의 카르텔 탓에 감산이 유가를 부양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컸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유가는 배럴당 46.67달러에서 56.74달러로 20% 이상 상승했다. 점유율을 포기하면서까지 밀어붙인 감산 정책이 결국 효과를 거둔 셈이다.

회동을 코앞에 두고 이제 유가를 끌어올릴 수 있을 지보다는 지난 3개월 간의 가격 상승 추세를 정당화할 수 있을 지에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리는 모습이다.

가장 달라진 점은 기대치다. 1년 전 11월 모든 것이 짙은 안개 속에 가려진 상황에서 회의론과 혼란, 아주 약간의 낙관론이 OPEC에 팽배했다. 때문에 OPEC과 러시아 사이의 감산 협약 체결이 성공하자 시장은 기뻐했고 유가는 깜짝 반등했다.

그러나 이젠 감산 여부 자체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은 드물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기대치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 속에서 OPEC이 재고를 줄여 가격을 정당화할 수 있을 지에 주목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 2016년 벼랑 끝 원유시장 뒤흔들 OPEC 감산…올해는?

2016년 몇 차례의 실패 끝에 성공한 OPEC의 감산은 2년 간 깊은 무기력 상태에 빠져있던 원유시장을 뒤흔들었다.

1년 사이 런던 시장의 브렌트유는 한 바탕 변동성 장세를 펼치긴 했으나, 6월 중순 이후 다섯 달 가까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들어 브렌트유는 2015년 7월 이래 처음으로 배럴당 60달러를 돌파했다.

OPEC의 감산으로 인해 세계 원유재고 소진 속도가 빨라졌고, 허리케인 하비로 인한 공급 감소, 세계 경제의 견고한 성장세 등이 맞물리면서 나타난 유가의 추세적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OPEC 정례회의는 원유시장에 대한 낙관론이 점차 힘을 얻는 가운데 개최되지만, 산유국들은 단순히 협약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년 말까지 감산을 연장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러시아를 비롯해 여타 비회원국들 역시 산유량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거나 감산할 것이라는 게 월가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다만 사우디 아라비아가 예멘을 폭격하고 정정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감산폭을 추가적으로 늘릴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미 유가가 많이 오른데다, 러시아 등 비회원국은 감산 확대에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탓이다.


◇ 펀더멘털?...투자자들은 일단 ‘장밋빛 낙관론’

산유국들 사이의 셈법은 복잡하지만, 투자자들은 전반적으로 낙관론을 이어가고 있다. 헤지펀들은 처음에 감산이 이뤄졌던 1년 전보다 유가 강세 베팅을 늘리고 있고, 상승폭도 훨씬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석유탐사&개발(E&P) 기업들의 상황 역시 1년 전과 확연히 다르다. OPEC이 감산을 연장하면서 원유 선물 가격을 끌어올렸고, E&P 섹터에 생명줄을 던져줬다는 평가다. 미국 E&P 기업들은 원유 선물 가격에 힘입어 2017년 생산량을 헤지하고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 OPEC發 유가상승, 헤지펀드 순매수 촉발

그렇다고 해서 OPEC 감산이 모두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OPEC이 자국 내 생산량을 줄이면, 미국의 E&P기업들이 원유시장 내 점유율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점유율을 포기하면서까지 감산에 나선 것은 OPEC 입장에서 그만큼 유가 상승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OPEC이 감산을 나서면서 미국 E&P기업들은 헤징을 폭발적으로 늘렸고, 지난 7월부터 유가가 상승흐름을 타자 다시 헤징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E&P 업계 역시 화수분(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은 아니다. 몇몇 대형 미국 E&P 기업들은 투자자들의 압박으로 인해 현금흐름을 줄여아하는 상황에 놓였다. 월가의 풍부한 자금에 힘입어 성장 일변도를 이어가던 셰일업계도 이제 한계점에 부딪친 것이다.

2015년과 2016년 원유시장이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시기 급증했던 정크본드는 유가가 안정세를 찾아가자 1월부터 발행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완전히 마음을 놓을 때는 아니다. 정크본드 발행은 이어지고 있고, E&P 섹터에서 지난 몇 주간 최고의 성적을 거둔 기업은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캘리포니아 리소시스(California Resources Corp.)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암 데닝 블룸버그개드플라이 칼럼니스트는 낙관론을 견지했다. "E&P 기업들은 지난 3년간의 저유가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고, OPEC은 지난 주 발행한 보고서를 통해 원유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 2년간 맷집 키운 미국 E&P 기업…유가 상승 속에서도 현금흐름 유지

데닝의 발언대로 E&P 기업들은 변하고 있다.

미국 최대 셰일 기업인 콘티넨털 리소시스(Continental Resources Inc. )는 최근 실적 발표 자리에서 내년도 배럴당 50∼55달러의 유가 수준에서 현금흐름을 늘리지 않고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달성할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같은 날 코노코필립스(ConocoPhillips) 역시 비슷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코노코필립스의 라이언 랜스 최고경영자(CEO)는 "효율성이 아직 완전히 달성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2,3,4년 전과 비교했을 때 순익이 현저히 낮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데이터를 분석해 기술적인 측면을 고려했을 때, 자사의 포트폴리오 상 성장 여력은 충분하다. 아직 채굴 가능한 매장량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유가가 배럴당 30∼40달러에 머무를 때는 도전적인 상황이었지만, 배럴당 60∼70달러선까지 원유가격이 상승한다면 성장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힘주어 말했다.

데닝 칼럼니스트는 "E&P기업들이 내년 포트폴리오에서 낮은 수준의 유가를 상정하는 이유는 최근의 유가(브렌트유 기준)가 60달러를 넘어서는 등 랠리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2020년 유가 선물이 배럴당 40달러 후반선에서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현재와 2018년 유가 사이의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세력들이 처한 가장 큰 리스크"라고 해석했다. 사우디·베네수엘라·이란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전년대비 훨씬 높아진 점도 투기세력들의 우려를 키우는 부분이라고 데닝은 덧붙였다.


◇ 유가 강세 이어질 듯…재고 줄고 수요 탄탄


데닝은 "지난해 11월과 가장 달라진 점은 정치적 상황이나 가격이 아니라, 머니매니저들과 헤지펀드들의 포지셔닝"이라며 "지난해 투기세력들은 상승, 하락 베팅 모두 관망세를 보였지만, 이제 양방향 모두에 포지션을 쌓고 있다. 즉, 지난해 OPEC의 임무는 낙관론을 불러오는 데 있었다면, 이번 연도의 과제는 어떻게 20% 이상 상승한 가격을 정당화할 것인 지에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계 투자은행 HSBC의 프레드릭 뉴먼 아시아 이코노믹스 리서치 매니징 디렉터 역시 낙관론에 힘을 보탰다.

뉴먼 디렉터는 "지난주에 브렌트유가 60달러를 상회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강력한 수요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지, 단순히 공급곡선이나 11월 30일 OPEC 회의를 둘러싼 루머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강력한 수요가 유가 상승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유가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전세계 어느 곳을 보더라도 경기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수요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중국의 경우에는 하반기에 훨씬 더 좋은 성장세를 보였고 미국의 경제지표 역시 여전히 견고한 모습이고 유럽과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디를 보더라도 수요가 탄탄한 모습이고 느슨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GDP가 깜짝 성장세를 유지하고 유가 역시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뉴먼 디렉터는 "사우디의 상황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 지 예측하는 건 어렵지만 당분간 원유 시장은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어떠한 한계 리스크라도 가격에 즉각적으로 반영된다. 시장에서는 지난 몇 년간 유가 상승을 가로막았던 공급과잉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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