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흔히 자전거를 친환경적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자전거만 사면 연료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만일 자전거가 아껴주는 연료보다 자전거용 전용도로를 까는 과정에서 환경훼손이 더 심하게 발생한다면 자전거는 친환경적이라 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너무 고가의 자전거를 사용하다가 보니 운행하면서 발생하는 감가상각이 그것이 아껴주는 연료의 값을 상회한다면 이 또한 친환경적이라 하기는 어렵다.
도심에서 자동차와 자전거가 같은 도로를 나눠 쓰면서 자전거로 인해 자동차의 전체적 운행속도가 낮아지고 연비가 나빠질 수 있다. 이 경우 자전거 자체는 연료를 소모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다른 자동차가 더 많은 연료를 사용하게 되었다면 이 또한 친환경적이지 않다.
비오는 날 자전거 이용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여 대중교통을 자전거 이용자의 몫까지 평상시에도 확보해야 한다면 이것도 비용을 초래하게 된다.
자전거를 비판하려거나 궤변을 늘어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자전거는 연료를 요하지 않으므로 일반적으로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에 접목돼 전체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에 따라서 그 환경적 가치는 달라진다.
나는 친환경성을 논할 때에는 단순히 자전거에 내재돼 있는 본질이 아니라 자전거가 운영되는 방식까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자전거는 친환경적이라 전제하고 이를 위한 전용도로의 건설, 자동차와의 공존 등 모든 지원을 정당화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친환경적이라고 여기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다. 전기자동차, 수소자동차,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 자체로는 친환경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운영되는지까지 고려해서 친환경성이 논의되고 사회에 도입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좋다. 지금은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미래에 기술개발을 통해서 친환경적으로 변화 될 거라면 또 저렴해질 거라면 그 때 도입하면 된다.
지금 도입한 태양광이 2030년이 되면 원자력발전만큼 저렴해지는 것이 아니라 2030년에 보급될 태양광 패널의 전기가 저렴해질 것이라면 그 때 도입하는 것이 맞다. 풍력발전도 마찬가지고….
전기자동차도 전기를 어떻게 공급할지, 수소자동차도 수소를 어떻게 공급할지를 잘 생각해 보고 도입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좋다. 배터리의 용량 때문에 시속 80 킬로미터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전기자동차가 다른 차들의 연료소모를 얼마나 더 유발하는지도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따져보지도 않고 어떤 것은 친환경적이고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여기면 이미 과학은 떠난 것이다. 합리(合理)는 떠난 것이다. 조리 정연함은 떠난 것이다. 종교가 된 것이다. 이런 편협한 환경적 사고는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멍들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재활용 제품은 다소 비싸도 사준다. 그런데 비싼 것이 어떻게 친환경적일 수 있을까? 동일한 재화를 생산하는데 자원의 투입이 더 많은 것을 어떻게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재활용하지 않은 제품이 그 생산으로 인한 환경파괴의 비용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것이라면 경우가 다르다. 그러나 요즈음엔 그것까지도 다 고려한다.
나무를 벌목할 때, 그 만큼을 다시 심도록 의무화를 하는 것이 그런 경우이다. 이 경우의 종이와 재활용한 종이를 비교할 때 재활용 종이가 만일 더 비싸다면 재활용 종이를 살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친환경적인 것과 지속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합리적으로 추구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