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오 에너지부장
1학년 땐 기숙사. 2학년 땐 하숙. 대학교 3학년 딸이 최근 원룸으로 옮겼다. 기숙과 하숙에 이어 자취에 나섰다. 5층짜리 건물이었다. 학교 앞이다 보니 대부분 학생들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딸의 원룸은 2층이었다. 원룸으로 이사하던 날. 짐을 모두 옮기고 안전점검에 나섰다. 도어락(doorlock)은 잘 돼 있는지 살폈다. 전에 살던 사람이 나갔으니 비밀번호를 바꿔야 했다. 무엇보다 보일러 안전장치를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도시가스를 쓰는데 보일러는 외부에 있었다. 연통도 안전하게 갖춰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화재에 대비한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었다. 연립이든, 빌라든 좁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기 마련이다. 주방은 가스를 쓰지 않고 전기를 사용하는 인덕션이었다. 비상시에 탈출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했다. 2층이다 보니 최악의 경우 창문을 통해 뛰어내릴 수 있었다. 탈출용 밧줄도 하나 구매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체크 리스트를 통해 하나하나 점검한 결과 해당 건물의 안전장치는 갖출 것은 다 있는 것 같았다. 3.5평 남짓한 조그마한 곳에서도 이렇게 점검할 것은 많았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에너지 관련 안전사고가 많았다. 일산 백석역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열수송관이 터졌다. 1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이들이 추위에 고통을 받았다. 20년 이상 노후화된 수송관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압력과 온도이상을 감지할 제어장치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다는 게 밝혀졌다. 급기야 긴급점검에 나섰고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한국서부발전에서는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노동자, 김용균 씨가 숨졌다. 2인1조가 함께 점검해야 함에도 규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고(故) 김용균 씨는 컨베이어벨트 낙탄 제거작업을 맡고 있었다. 비정규직이었다. 정부는 사고 이후 운전 중인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벨트 등 위험설비를 점검할 때 ‘2인1조’ 근무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낙탄 제거 등 위험 작업은 해당 설비가 정지한 상태에서 하도록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위험시설에 대한 비상정지 스위치 작동 상태도 일제히 점검하겠다고 했다.
서울 대성고 학생 10명이 강릉의 한 펜션에 ‘우정여행’을 떠났다. 행복해야 할 여행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비극이 되고 말았다. 이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끝내고 오붓한 휴식의 시간을 갖기 위해 펜션을 찾았다. 10명 중 3명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7명은 치료받고 퇴원했거나 아직 병원에 입원 중이다. 경찰이 발표한 사고 원인은 ‘보일러 배기관 연통 이탈에 따른 가스 중독’이었다. 무자격업체가 설치한 연통에서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당국은 이번 사건으로 농어촌 민박에 대한 가스안전관리 규정, 가스공급자 보일러 안전점검 항목 등 미흡한 점 등에 대해 일제 점검에 나섰다.
열수송관 파열, 서부발전 노동자 사망, 강릉 펜션 일산화탄소 중독.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사후약방문 나라’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사람이 사망한 뒤 약을 처방한다는 의미이다. 서부발전이 노동자를 자식처럼 생각했다면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사전에 안전점검을 철저히 하지 않았을까. 강릉 펜션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펜션에 숙박하는 이들을 내 자식, 내 어머니, 내 가족이라고 생각했다면 사전에 꼼꼼히 여러 군데를 살폈을 것이다. 노동자를, 숙박하는 이들을 한낱 ‘돈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 안전사고가 많았던 탓인지 발전, 가스 등 에너지업계는 올해 시무식을 통해 ‘안전’을 유독 강조했다.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다. 에너지시설에 대한 점검은 자주 있을수록, 정기적으로, 꼼꼼하게, 입체적으로 실시하는 ‘정성 안전시스템’이 필요하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에너지는 안전이 지켜진다면 편안함과 안락함을 준다.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에너지는 생명을 위협하는 ‘무질서와 혼돈’으로 치달을 것이다. 에너지를 쓰지 않을 수 없으니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다. ‘정성 안전시스템’을 만들어 ‘사전약방문’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