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새 해결과제 ‘2등 정규직’(상)] 국민은행 '딜레마 L0직군' 해결 실마리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19.01.28 16:59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서 탄생…급여 정규직의 60%밖에 못받아
19년만의 총파업 촉발 원인…개선안 마련 TF 구성 5년간 논의 돌입

▲KB국민은행 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제공=연합)



[에너지경제신문=송두리 기자] 19년 만에 총파업을 단행한 KB국민은행 노조. 이번 총파업 배경에는 'L0(엘제로)'직군이 등장한다. 은행 내 최하위 직군으로 알려진 이들은 정규직이지만 기존 정규직과 업무가 다르고 임금도 낮은 수준이다. 과거에 이른바 '창구직원'으로 여겨지던 이들은 2014년께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국민은행뿐 아니라 주요 시중은행에서도 '2등 정규직'으로 불리며 각기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여성이 대거 포진됐다는 쏠림 현상이 해결되지 못해 아직 은행권에서 봉합하지 못한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 국민은행 총파업 배경에 등장한 'L0직 경력인정' 

국민은행

▲지난 9일 KB국민은행 여의도본점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사진제공=연합)

지난 8일 2000년 이후 19년 만에 총파업을 단행한 국민은행 노조는 최하위 직군인 L0직군의 경력 인정도 요구사항 중 하나로 내세웠다. 2014년 국민은행은 영업점의 이른바 '빠른 창구'에서 입출금을 맡았던 무기계약직 직원 4000여명 이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최대 36개월까지 근무경력을 인정했다. 이후 2014년 임금단체협상에서 이를 최대 60개월로 확대했다. 이번 임단협에서는 경력 인정 기간을 더욱 늘려달라고 주장했다. 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2014년 이전 경력은 1년 경력이 3개월 경력으로 인정된다"며 "경력이 10년이라면 25%인 2년 6개월이 인정되는데 이번에는 50%(5년)으로 이를 늘려달라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노조의 주장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국민은행 측은 그동안 조금씩 개선이 되고 있다고 반박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 당시 무기계약직 직원들의 경력을 인정하고 계약직으로 있을지, 경력을 일부만 인정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할 지 선택하도록 했는데 다수가 후자의 조건으로 정규직 전환을 선택했다"며 "근무 인정은 올해 갑자기 나온 이슈가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으며, 이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인정 경력을 36개월에서 60개월로 늘렸다"고 말했다.

문제는 경력 인정이 점점 더 확대되면 L0직군과 공개채용 시험을 뚫고 들어온 L1직군 간 급여 역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은행에선 평직원 직급 체계는 L0을 포함해 대리(L1), 과·차장(L2), 수석차장·팀장 및 부지점장(L3), 고참급 지점장·지역 본부장(L4)으로 이뤄진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L1직군의 입장에서는 L0직군의 급여 역전에 불만이 생길 수 있다"며 "경력 인정에 따라 사내 갈등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예민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민은행의 L0직군의 경우 일반 정규직보다 급여 수준이 약 60%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국민은행의 L0직군은 평균 근속연수는 일반직의 9년 보다 1년 짧은 8년으로 나타났으나, 연봉은 일반직(6800만원)의 60% 수준인 4100만원에 머물렀다.

최근에는 직군간 업무 범위가 비슷해지고 있는 만큼 급여 수준이 개선돼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은행권 관계자는 "L0직군의 경우 과거에는 주로 창구 업무를 맡았지만 최근에는 업무에 제한을 두지 않을 뿐 아니라 승진에도 큰 제약이 없도록 바꾸고 있다"며 "이같은 분위기를 고려해 임단협에서 하위직군의 임금상승률을 조금 더 높게 해 임금차를 줄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의 경우 이번 임단협에서 임금 인상률을 일반직은 2.6%, L0직은 5.2%로 결정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L0직의 임금 상승비율이 높긴 하지만 현 임금의 절대 수준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금액의 상승폭이 반드시 크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 여성 쏠림 현상은 여전…국민은행 TF구성 ‘답 찾을까’


L0의 문제로 또다시 지목되는 한 가지는 여성 쏠림 현상이다. 여성 차별 문제가 거론될 때 각 은행에서는 약 50%가 여성 임직원이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인원이 2등 정규직에 포함돼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김병욱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국민은행 총인원은 1만7717명으로 이중 여성비율은 49%(8681명)에 이른다. 이중 L0직군의 총인원은 전체의 15%를 차지하는 2593명인데 이중 95%인 2463명이 여성이다. 사무지원 등의 인원을 무시하더라도 정규직 여성은 6000여명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정규직인 대리, 책임자, 부지점장, 지점장, 본부장, 부행장 등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 비율은 69%, 45%, 17%, 10%, 8%, 5% 수준으로 급격히 감소한다. 눈에 보이는 수치 이면에 아직 유리천장이 공고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최근에는 종합창구로 전환되면서 빠른창구가 거의 사라졌는데, 당시 빠른창구를 보던 직원들이 거의 여성이었다"며 "업무특성상 여성 지원자들이 많은 게 사실이며 지원자가 많다보니 여성들의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L0직군은 약 70명 정도를 뽑았는데 이 때도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여성이 하위직군에 많은 것은 회사에서 특별한 차별을 둔다기 보다는 여성 지원자가 많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이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 처우를 어떻게 개선해나갈 지가 은행들의 주요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총파업에서 쟁점이 된 L0직군 경력인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국민은행 노사는 노사와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인사제도 태스크포스(TF) 팀을 구성해 5년간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TF에서 L0직원 근속년수 인정과 합리적인 급여체계 개선 방안 등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경력이 일부만 인정되는 지금의 근무 경력 인정 구조는 퇴직할 때 퇴직소득세 발생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국가 인권위원회의 권고안 등에 따라 개선해야 하는 점이 분명히 있다"며 "TF를 운영하면서 반드시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국민은행 노사와 전문가가 함께 TF를 구성해 좋은 방향을 이끌어 낸다면 은행권의 최하위 직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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